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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시대 최고의 '불온서적'이 있다"

[화제의 책] '집단지성'이 엮은 <MBC, MB氏를 부탁해>

지난 5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프레시안>에 이런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저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당시 그는 촛불 집회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수업 시간 중 경찰에 불려나간 학생을 예로 들며 나라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8월이 됐다. 이명박 정부 집권 6개월, 비슷한 감탄사가 툭하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촛불 집회를 무력 진압하는 경찰, 방송사 사장을 제멋대로 해임하는 정부, 누리꾼 수사는 물론 방송 프로그램 수사에 목을 매는 검찰…. 사람들은 자꾸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푸념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진행된 일련의 사건에 공통 분모가 보인다. 바로 국민의 자유로운 말과 글, 비판을 막으려는 정부의 '언론 봉쇄와 장악' 시도이다. 이는 독재 정부들이 정권을 잡은 뒤 가장 먼저 착수하는 작업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공영 방송인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에 대한 정권의 접수 작업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촛불 집회는 조·중·동 반대 운동으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KBS와 MBC 앞으로 '전선'을 이동했다. 경찰은 방송사 안팎을 가리지 않고 '접수 작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출간된 <MBC, MB氏를 부탁해>(집단지성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는 어쩌면 현재 국내 상황에서 가장 불온한 책인지 모른다. 공영 방송을 얘기하겠다며 정부가 지금 맹렬히 달려드는 MBC를 맨 앞에 내세우고, 그것도 이 대통령을 '부탁한다'고 했으니. 게다가 언론학자, 기자, 시민활동가, 블로거 등으로 구성된 24명의 저자는 정부가 그렇게 싫어하는, 촛불 집회 이후 유행하는 '집단지성'을 자신들의 대표 호칭으로 갖다 붙였다.

출간 기념회, 그리고 MBC의 사과 방송
▲ <MBC, MB氏를 부탁해>(집단지성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

지난 12일, <MBC, MB氏를 부탁해>의 출간 기념회가 열린 서울 서대문 필름포럼. 발간된 책을 축하하고 서로의 노고를 치하해야 할 기념회의 분위기는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같은 시간, 공교롭게도 MBC 경영진이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사과 방송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인사에 나선 박성제 MBC 노조위원장은 "회사에서 이 시간 현재 굉장히 굴욕적인 일이 진행되고 있다"며 애초 함께 오기로 했던 MBC 구성원들이 못 오게 된 상황을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했다. 그는 "MBC에 대한 기대와 채찍질 하는 목소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인신이 구속되지 않는 한 끝까지 싸우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또 그는 "이런 불의의 시대, 다시 돌아온 압제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작지만 도도한 물결이 되어서 정권을 정신차리게 하고 민주주의를 고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

이어진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정책실장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그는 "박 위원장이 압제의 시대라고 얘기했는데 내가 보기엔 독재의 시대 같다"며 "언론이 진실을 이야기했음에도 권력의 압제를 통해서 거짓이라고 자백하라는 고문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날 밤, MBC는 <뉴스데스크>가 끝난 뒤 자막을 통해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노조가 막고 있던 주조종실이 아닌 자회사를 이용하는 편법을 통해서였다. 세 달 넘게 <PD수첩> 제작진은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박했던 정부 논리를 그대로 담은 방통위의 사과문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MBC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얄팍하지만 숨막히는 공격은 계속되고

어쩌면 MBC 경영진은 정말 권력이 무서웠는지 모른다.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과 체포로 이어진 정부, 감사원, 검찰, 조·중·동, 보수 진영의 맹공은 누가 보기에도 숨이 막혔다. 그 화살이 곧 MBC로 돌려진다고 했을 때 느낀 위압감은 한편으로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이 같은 MBC 경영진의 결정은 MBC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뜻과는 정반대였다.

"심지어 MBC 카메라가 시위대 전면을 갑기 위해 달려가면 사람들은 길을 비켜주고 촬영용 사다리를 들어주려고 하면서 외친다. 'MBC다! MBC 도와줘야 돼.' 신기한 일이다. 한국의, 아니 세계의 어떤 방송사가 이런 대상이 될 것인가."

에세이스트 김현진 씨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MBC에 대해 보여준 태도는 '대책 없는 애정'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MBC에 대한 신뢰는 공영 방송 접수 시도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광화문에서 시작한 촛불이 마포대교를 가득 메우며 KBS로, MBC로 행진했던 것이다. 자신을 '백수 블로거'라고 소개한 '자그니'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이 어이없게 변했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지배 언론을 믿지 못해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집회장에 나왔다. 경찰의 채증에 맞서 시민들도 채증을 했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오마이뉴스>도 아니고, <프레시안>도 아니고, <한겨레>도 아니고, <경향신문>도 아니고, '아고라'도 아닌 KBS와 MBC를 지키겠다고 촛불을 들다니, 세상이 뭔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하게 돌아간다."

공영 방송을 지키겠다는 촛불. 그 필사적인 움직임은 <PD수첩>을 '거짓의 몽타주'로 몰아세우는 등 보수 진영과 정부의 총공세에 대한 자연스런 방어 기제였는지도 모른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를 우리나라의 '지독한 진실'이라고 꼬집었다.

"어떻게 보면 <PD수첩>이 지금처럼 영향력을 가지게 된 상황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해 추가적으로 엄청난 정보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 문제는, 광우병에 대한 이 정도의 스케치만으로도 한국이 발칵 뒤집혔고, 이 프로그램을 만든 방송국 자체를 민영화시키겠다거나 아니면 사장을 바꿔버리겠다는 논의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 이 정도의 스케치도 참을 수 없어하는 정치권력과 보수세력의 얄팍함이 진실의 '지독함'을 잘 보여준다."

촛불에게 내놓는, 진지하지만 발랄한 제안서

이외에도 책에는 다양한 필자의 구성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PD수첩> '광우병' 편의 제작을 맡았던 김보슬 PD는 광우병 보도 과정을 재구성한 픽션을 썼다. 전국미디어활동가네트워크 허경 활동가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 긴 편지를 썼다. <한겨레21> 최성진 기자는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문서를 통해 현 정부의 대국민 홍보 정책을 추적하고,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MBC를 비롯한 공영 방송 민영화 담론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렇게 이 책을 조금만 더 들여다본다면, 책 제목과 달리 MBC에 대한, MBC를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들은 MBC를 화두로 공영 방송을 이야기하며, 촛불 집회로 인해 촉발된 공영 방송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급속하게 후퇴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처한 현실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영 방송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촛불은 지금도 거리에서 계속 밝혀지고 있다. 책의 필자들도 인정하는 것처럼 거리를 지키는 '집단지성'의 목소리는 촛불의 수만큼 훨씬 많고, 또 크다. 이 책은 그렇게 촛불을 든 집단지성에 대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방송의 공공성을 양보하지 말자는 결의를 담아 내놓는 제안서이기도 하다. 내용은 진지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책의 분위기는 상쾌하고 발랄하다.

촛불을 들었던, 혹은 집단지성을 자처하는 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들을 믿었던 이들의 애정과 신뢰에 눈을 감고 사과 방송을 내보낸 MBC 경영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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