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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권오름] 노인건강,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전체 국민 중 노인인구의 비중은 2000년 7.2%로서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하였다. 2018년 14.3%, 2026년 20.0%로 각각 고령사회(aged society),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로의 진입도 예상되고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고령화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뉴스에서는 심심치 않게 통계자료를 들먹이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고령화될 것인지,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얼마나 커질 것인지를 예측하곤 한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노인'은 더 이상 생산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가족의 수발을 받는 부담스러운 존재, '노인의 삶'은 활기 없는 무의미한 시간의 소비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노인은 하나의 계층이면서도 누구나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생의 한 시기이다. 이 점을 생각할 때,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은 우리가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보내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노인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고령화 대책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 지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고령화 대책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밑그림
  
  고령화 대책은 어떤 방향으로, 어떤 요소들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할까. 인간의 보편적 인권과 아동, 여성, 장애인의 인권 등에 비해 국제사회는 비교적 늦게 고령화의 방향에 대해 합의하고 지침들을 세워가고 있다. 1982년의 '고령화에 대한 비엔나 행동계획', 1991년의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 그리고 2002년의 '마드리드 고령화 국제행동계획'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수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노인 참여, 계속적인 교육·훈련 및 재훈련에 대한 기회 균등, 소득보장·사회보장 및 빈곤예방, 전 생애에 걸친 건강증진과 안녕, 독립성과 접근성을 고려한 주택과 주거환경, 노인에 대한 유기·학대 및 폭력 근절 등이 고령화 대책에 있어 고려해야 할 과제다. 또한 이러한 과제를 실현하는 것이 각국 정부의 일차적 책임이라는 점 역시 강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여 노인문제의 정책적·제도적 접근을 시도했으나 사회의 책임보다 가족의 책임을 우선하는 기조로 인해 노인 인권 보호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되고, 사회참여, 고용지원, 학대금지 등의 규정은 선언적인 차원에 그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의 생계 유지를 위하여 2007년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도입했으나 그 액수 면에서 상당히 취약하고 자산 조사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여전히 노인의 인권, 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대책이 미흡한 상태에서 노인의 건강과 부양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한 것이 바로 올해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짧은 준비를 거쳐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시행 초기부터 많은 비판과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가장 주된 비판은 높은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로 인해 결국 비용절감의 효과가 없다는 점에 맞춰져있다. 또한 공공성의 측면에서 국가의 재정지원 비율이 낮고 노인부양을 이윤창출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비판이 더해지고 있다.
  
  그러나 '노인건강'을 비용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인권적 관점이 결여된 것이며, 노인건강권은 '노인이라는 세대적 계층의 인권'에 대한 시각이 있어야 확보될 수 있다. 따라서 노인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를 비롯한 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인권적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변화되어야 한다.
  
  '노인이라는 세대적 계층의 인권'에 대한 시각이 있어야
  
  건강권에 대한 국제 규범을 기초로 노인의 건강권을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건강권이라 함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상태를 의미한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 아래 사회권 규약)은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모든 이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권 규약을 풍부히 하는 사회권규약 일반논평에는 보건의료서비스가 사람들에게 사용가능하고(가용성) 이용이나 내용에 차별이 없어야 하며 서비스 접근이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 서비스 질이 좋은 질이어야 하며 의료서비스가 사람들의 문화나 민족적 특성에 비추어 수용할 만한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을 노인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보건의료서비스로 바꾸어보면 다음이 필요할 것이다.
  
  노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일반 의료시설과 프로그램 외에 노인을 위한 재가, 요양 시설, 서비스, 예방, 재활 프로그램 등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 금지되며, 소득활동을 계속하지 못하여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기 쉬운 노인들도 부담 가능해야 하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접근할 수 있는 거리와 위치에, 그리고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노인의 요구와 특성을 고려하여 노인의 건강권 실현은 예방, 치유, 재활의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노인성 질환은 주로 신체 기능을 퇴행시키며 그 증상이 만성적이므로 건강검진 및 질병예방 서비스의 확충이 중요시되며, 노인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회복시키는 재활 치료 역시 중요하다. 나아가 고통스럽고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인들이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에 이르기까지 노인의 다양하고 변화하는 보건 요구에 대응하는 지속적인 보호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의료적 접근이 함께 이루어져야
  
  노인의 건강권을 확보하려면 정부의 정책을 보건의료서비스의 제공에 한정시켜서는 안 되며 다양한 비의료적 접근 역시도 요구된다. 노인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고 정서적 안정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어떠한 공간에 머무르며 어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가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필요한 것은 노인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가능한 한 가정(전통적 가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던 공간을 의미)에서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의 부양을 가족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라는 의미가 아닌 인적 네트워크와 추억이 있는 익숙한 공간에서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일상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지역사회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불필요한 시설수용을 방지할 수 있다.
  
  보호시설이나 치료시설에 거주할 때도 그들의 존엄, 신념, 욕구와 사생활을 존중받으며 인간의 권리와 기본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 직원들에게 인권과 존엄성 존중을 위한 교육과 훈련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노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보 접근권은 중요하다. 정보의 제공과 참여에 있어 노인의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각종 서비스의 이용과 선택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 교육과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고, 노인 보호와 관련된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참여할 수 있어야 위의 권리들이 더욱 실효성 있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양시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만 제공한다면, 혹은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인쇄된 책자로만 제공한다면 정보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드리드 세계고령화회의에서 채택한 정치선언문에서는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아동, 청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세대도 소외당하고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하여 그것이 우울한 미래를 상징하지 않아야 하고, 오히려 어떻게 자신의 기대와 욕구를 계속 실현시키며 더욱 인간답게 활발하게 세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고민의 바탕 위에서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를 위한 다방면의 고령화 대책이 세워질 때 노인의 '인권'은 문서 속의 활자화된 권리를 넘어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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