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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먹고 살게는 해놓고 내쫒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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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먹고 살게는 해놓고 내쫒아야지"

의정부시, 노점상 폭력 단속에 노점상인 인권위 진정

17일 오전, 한눈에 봐도 후줄근해 보이는 이들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로비에서 '악다구니' 하고 있다. 7층에 위치한 인권위 상담실에 진정을 넣기 위해 왔으나, 인권위 측은 30여명을 모두 올려보낼 수가 없다고 제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권위마저도 우리를 무시하냐"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인권위는 인권위대로 "집단으로 올려보냈다가 12번이나 점거당했다"며 "대표들만 올라가라"는 입장이다.

수차례 점거를 당했던 인권위 측으로서는 30여명이나 되는 인원을 모두 올려보내는 것은 분명 곤혼스러운 일로 보였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들에게 인권위의 태도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다. 인권위 측과 2시간 남짓 고성이 오가고 나서야 전국노점상연합 관계자의 중재 아래 7명의 대표자들만 겨우겨우 인권위 상담이 성사됐다. 나머지 인원은 로비 의자에 걸터앉아 희소식이 전해 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의정부역 앞 노점상인들. 단속앞에 생계수단 잃어**

이들은 의정부역 앞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상추, 무, 양파 등을 파는 노점상인들이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할머니들인 이들은 어떤 '억울한 사연'이 있길래 의정부에서 1시간도 더 걸리는 인권위까지 찾아왔을까.

이들은 의정부역 앞에서 길게는 10년 넘도록 노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왔다. 1평도 안되는 공간을 확보하고 고무다라이(함지) 하나, 앉은뱅이 의자 하나를 장비삼아 상추, 무, 배추 등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팔았다. 하루 8천원 남기면 많이 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10월 26일부터 의정부 시청의 대대적인 노점단속이 시작되면서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던 노점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0월26일 아침 좌판에 나가보니 전날 밤 팔고 남은 야채들을 모아뒀던 다라이가 없어졌어요.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모두들 그렇더라구요. 처음에는 도둑맞은 줄 알았더니 누군가 새벽에 노점 단속나온 용역들이 모두 들고 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게 단속이구나 싶더군요."(김기석,43)

하지만 이들에게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연례적으로 있는 단순한 단속이려니 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단속을 해도 싹쓸이는 하지 않았어요. 우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들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잠시 피해만 있으라고 귀띔해주곤 했거든요. 우리도 단속 나오면 잠시 피했다가 다시 좌판을 벌이곤 했습니다."(최현숙 44)

***용역단속반원들의 무차별 폭력...쓰러지고, 피흘리고..**

하지만 이건 이들의 착각이었다. 의정부 시청의 노점단속은 그치지 않았고, 강도는 날로 더해갔다. 급기야 손찌검은 물론 발길질까지 6-70대 할머니들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상황이 연일 계속됐다.

"어느 날은 용역깡패(이들은 서슴없이 '깡패'라고 부른다) 4백명정도가 방패, 곤봉, 대나무를 들고 무차별로 휘두르는 거에요. 우리들을 한 구석에 몰아넣고 멱살 잡고 얼굴을 수차례 때리는가 하면, 넘어지면 발로 짓밟기도 하고...주위 시민들이 말릴 정도였다니까요."(박금녀, 73)

이들이 수동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기자에게 건넸다. 수십장의 현장 사진들은 당일 있었던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었다. 한 여성 노점상인은 머리채를 잡힌채 바닥에 끌려가고 있고, 용역 단속반원들은 노점상인들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단속반원들은 안전모에 방패, 심지어 곤봉을 손에 들고 있었다. 용역 단속반원에 맞아 시퍼렇게 멍든 가슴, 짓이겨진 손가락 등 부상정도는 매우 심해 보였다. 한마디로 전시를 방불케하는 장면이었다.

"그 중에 젊어 보여서 그런지 용역깡패들이 집중적으로 괴롭히더군요. 덕분에 없는 돈 끌어모아서 20일동안이나 병원 신세 졌습니다. 허리, 등, 팔 등 사지 어디 성한데 없더군요. 병원비 1백만원 넘겨 나왔습니다. 도둑질 하다 벌을 받는 거라면 감수하겠지만, 너무 어이없습니다."(최현숙,44)

***"담당 공무원은 보고도 못본척, 경찰은 고개만 끄덕끄덕"**

이렇게 노점상인들이 무차별 폭력에 노출되었지만, 담당 의정부 시청 공무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의정부시청 담당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용역 단속반원들이 현장에 나갈 때 시 공무원이 동행하기 때문에 폭력사태가 있었다는 노점상의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단속반원들이 노점상인들의 폭력행위에 부상을 당하고 있다"며 "더 할말이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용역단속반원들이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매번 시 공무원이 함께 있었고, 이를 방조했다는 말이된다.

"용역깡패보다 더 미운게 공무원들입니다. 백주대낮에 사람을 때리는데도 제지하기는 커녕 폭력을 부추기더군요. 112신고를 해도 경찰들은 폭력을 보고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의정부 주민인데 어떻게 시청이 이럴 수 있습니까?"(김기석)

***의정부시 호소문, "불편없는 도보문화, 교통 원활 소통을 위해"**

의정부시 홈페이지에는 18일자로 '불법노점정비에 시민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 호소문'이 게재돼있다. 호소문은 "상상을 초월한 거리의 무질서를 바로잡아 교통의 원활화를 기하고 시민 여러분의 불편없는 도보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펴고 있다"며 "이 엄청난 작업은 시당국의 의지만으로 완전히 이뤄 낼 수 없는 힘겨운 일로써 시민여러분의 협조와 기대가 절대적으로 요망된다"며 단속 목적과 함께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호소문은 또 "문화 시민으로서 긍지를 갖고 불법 노점상과의 상거래를 일체 중단하고, 불법 노점으로 인해 불편을 느낀 분은 시당국이나 사직당국에 신고 또는 고발하라"며 "법질서를 존중하는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드높여 달라"고 말하고 있다.

***노점상인, "불법인지는 알지만, 달리 방도가 있어야죠"**

의정부시의 설명처럼 도로 노점은 '불법'행위라는 것은 이들도 인정하고 있다.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폭력을 당하면서도 여기를 떠날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또 노점을 놓지 않는 이유도 궁금했다.

"나이 70먹어서 노점 말고 달리 할 일이 있어야죠. 누군들 이 지저분하고 치사한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다른 방도가 없으니 하는 거죠. 70이 넘었지만 내가 노점이라도 해야지 우리 가족 입에 풀칠이라도 합니다. 55살 먹은 큰 아들녀석은 어릴 때 뇌염을 심하게 앓아 상반신을 제대로 쓸 줄 모릅니다."(박금녀)

"매번 시청 공무원들이 '불법'이라고 하는데, 우린들 노점이 불법인지 모르나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불법이지만 노점을 해야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자 양반. 달리 대책이 있으면 말해봐요."(박금녀)

가족 중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진 사람도 없고, 달리 모아놓은 재산도 없다. 대부분 오랜 세월동안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식당일, 청소일 등 갖은 저소득일을 전전하다가 흘러흘러 의정부 역 앞에 좌판을 벌였다는 얘기다.

***"노점상, 빈곤은 법 잣대로만 볼 수 없어","노점상에게는 군사정부나 참여정부나 마찬가지"**

전국노점상연합 이반의경 연대사업국장은 노점상 문제를 단순히 법의 잣대로만 두고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반의경 국장은 "IMF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빈곤층이 급증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노점상인으로 전락했고, 경기침체가 길어질수록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며 "노점상 문제는 보다 사회경제적인 문제이고, 구조적으로 파악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노점상인들이 '도덕적 해이'나 '게으름'의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장기간 경기침체가 빚어낸 구조적 산물이란 설명이다.

이 국장은 또 "사회 최하층이라고 할 수 있는 노점상인들에게는 과거 군사정권시절이나 참여정부시절이나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노점상을 불법으로 몰아 폭력 단속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이라고 말했다.

18일 현재, 일터를 빼앗긴 의정부역 앞 노점상인들은 역사 주변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 곁에는 여전히 용역단속반원들이 지키고 서 있다. 또 인권위 진정은 성사됐지만, 인권위가 조사관을 선정하고, 차별인지 인권침해인지 심사하는데만 줄잡아 2주가 걸린다고 한다. 더구나 인권위가 차별 혹은 인권침해 판정을 내린다고 해도 해당 의정부 시청에 강제성 없는 시정권고만 내릴 수밖에 없어, 노점상인들의 생존 투쟁은 한층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전국빈민집회에서 한 연사는 "가난는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고 하지만, 가난 구제못하는 나랏님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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