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먹을거리 위기가 거론되는 시대에 정작 농업·농촌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이명박 정부는 식량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농업·농촌을 살리기보다는 해외 식량 기지 건설을 대안으로 들고 나왔다. 한국의 농지는 농업 외의 다른 용도로 전용하면서, 외국의 농지를 구입해 우리 먹을거리를 마련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해법을 찾기 위해 박진도 충남대 교수(경제학·지역재단 상임이사)를 찾았다. 박 교수는 대다수 지식인이 농업·농촌 문제에 관심을 끈 상황에서 30년간 이 문제를 고집스레 붙들어 왔다. 지난 2004년부터는 지역재단 활동을 통해서 농업·농촌 살리려는 다양한 실천을 발굴·지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박진도 교수는 "단번에 농업·농촌을 살리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대신 그는 "농업·농촌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농촌의 삶으로 실현해보려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그는 "이들이 농촌의 주체가 돼 다양한 실천을 전개할 때, 비로소 '성장 동맹'에 맞선 대항 세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도 교수는 "바로 이들이 만드는 '순환'과 '공생'을 두 축으로 하는 지역이 복원될 때 비로소 농업·농촌의 회생이 가능하다"며 "이런 지역을 만들기 위한 실천이 이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농촌이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는 속내를 가진 '성장 동맹'을 더 이상 믿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실천에 나설 때"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지역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된 박진도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식량 위기,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 최근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걸쳐서 곡물 가격이 오른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가파르게 오른 최근 몇 달간의 상황은 투기 자본과 같은 외부 요인의 개입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투기가 억제되면 앞으로 곡물 가격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다만 이런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곡물 가격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우선 수요-공급 구조 자체가 예전과 다르다. 인도, 중국과 같은 나라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인구도 계속 증가한다. 반면에 공급은 이런 수요증가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해 농지의 절대 면적이 계속 줄어든 데다, 최근 들어 이상 기후로 생산량도 줄었다. 또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최근의 높은 곡물 가격은 구조적인 것이다."
- 일각에서는 옥수수 등을 이용해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바이오 연료'를 곡물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최근의 곡물 가격 폭등의 원인을 바이오 연료의 증가로 보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 물론 앞으로 이런 바이오 연료의 확대가 곡물 가격 폭등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앞으로 석유를 대체할 수송 연료로 바이오 연료를 계속 확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식량 안보'가 아닌 '식량 주권'이다"
- 이렇게 곡물 가격이 폭등하자 '식량 안보'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식량 안보(food security)'라는 개념이 여러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좁게는 각국이 국민이 필요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FAO/World Food Summit)의 정의를 살펴봐야 한다.
'사람들이 항상적으로 충분하고, 안전하며, 영양 있는 먹을거리에 물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접근해 자신의 활동적이고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 영양상의 필요와 먹을거리에 대한 선호를 충족할 수 있는 상태.'
이 정의는 양적으로 보면 먹을거리의 가용성, 안정성, 접근성 그리고 질적으로 보면 먹을거리의 질과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를 말한다. FAO의 정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굉장히 허점이 많은 주장이다."
- 그럴 듯한 정의인데, 어떤 허점이 있나?
"우선 FAO가 말하는 먹을거리의 가용성, 안정성은 기본적으로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농산물의 무역 자유화로 소농 생산이 붕괴되면서 많은 나라들이 식량 위기를 격고 있다는 점에서 먹을거리의 가용성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소수의 농산물 수출국가와 초국적 곡물 기업이 세계 농산물 시장을 지배하면서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많은 농산물 수입국의 식량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다. 또 곡물 가격이 폭등하자마자 각국이 곡물 수출을 중단하는 등의 대응을 하는 최근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무역을 통해서 먹을거리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안전성'의 측면에서 살펴봐도 문제가 많다. 무역을 통해서는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 먹을거리 안전의 국제 기준을 국제수역사무국(OIE)이나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정하도록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싫더라도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거나, 안전성이 의심되는 유전자 조작 작물(GMO)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검역주권, 생명권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접근성'의 측면에서 살펴봐도 문제가 많다. 사실 먹을거리 문제는 곧바로 빈곤 문제와 연관된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이 굶어죽고 배고픈 빈민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식량 안보'를 강조하는 이들은 정작 이 문제에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엥겔계수(가계비 중 식료품비의 비중)가 평균적으로는 25%이지만 50%가 넘는 저소득층이 적지 않다. 이들은 최근의 식품 가격 상승으로 질 좋고 안전한 식품은커녕 먹는 양조차 줄여야 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식량 안보'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식량 위기 시대를 대비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대두된 개념이 바로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이다. 나는 이것을 '먹을거리 기본권'이라고 부른다. 즉, '모든 국민은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기본권'이 있고, 국가는 이런 먹을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고 지킬 의무가 있다.
식량 주권이란 국가가 다른 나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자국민의 이러한 '먹을거리 기본권'을 실현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먹을거리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
"유럽과 한국, 정반대 길을 걸었다"
-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8% 수준이다. 유럽의 몇몇 나라를 보면 농업 국가로 분류할 수 없는 데도, 식량 자급률이 굉장히 높고, 또 정부 차원에서 농업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유럽에서는 20세기 초반에 두 차례에 걸쳐서 전쟁을 치렀다. 유럽 나라는 이 과정에서 먹을거리를 무역에 의존할 경우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지 경험을 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은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식량 자급률이 20% 이하였다. 식량 공급을 무역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국가였지만 지금은 식량을 거의 100% 자급하고 있다.
유럽은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출범하면서 농업 생산자에게 적정한 가격을 보장하는 공동의 농업 정책을 마련한다. 즉 유럽 내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유럽에서 생산된 농산물에 국제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보장해준 것이다. 이런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다보니 식량 자급률이 늘어난 건 당연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한 뒤에도 이런 농업 지원 정책은 형태를 달리해 계속되고 있다. WTO 체제 아래서 국제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보장해 주는 게 어려워지자, 이제는 농업에 직접 지원을 하는 형태로 높은 자급률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유럽의 농업 정책은 큰 틀을 유지할 것이다.
이런 유럽 각국의 농업 정책은 일종의 사회적 계약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소비자는 생산자가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소득(가격)을 보장하여 생산자를 보호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생산자는 안전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것. 일종의 먹을거리를 둘러싼 사회적 연대가 유럽의 농업 정책에 깔려 있는 것이다."
- 그런 유럽의 경우를 염두에 둔다면 한국은 거꾸로 온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럽과 정반대 방향이다. 1960년대는 식량 자급률이 90%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우리나라는 사실상 식량 자급 정책을 포기했다. 대신 주곡인 쌀은 자급하겠다, 이런 식의 정책을 폈다. 그러다보니 40년 만에 식량 자급률이 20%대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이라도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그 과정에서 유럽이 했던 방식, 즉 사회적 계약에 기반을 둔 농업 지원 정책은 참고할 만하다. 당장 쌀의 자급률이 거의 100%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쌀 농가를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추세대로라면 쌀 자급률도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해외 식량 기지, 식량 위기 대책 될 수 없다"
- 이전 정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명박 정부는 식량 자급률을 제고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렇다. 이 정부는 국내 먹을거리 생산을 늘려서 식량 자급률을 높이겠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게 여러 가지 정책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식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농지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바로 이 농지 전용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새만금 간척지만 해도 그렇다. 애초에 간척지의 70%를 농지로 쓴다더니, 이제는 30% 이하만 농지로 이용하겠단다. 그런 일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얼마나 고민이 없는지 잘 알 수 있다."
- 이명박 정부는 '해외 식량 기지' 얘기를 한다.
"엉뚱한 해법을 찾고 있다. 해외 식량 기지라는 게 먹을거리의 안정적 확보와는 거리가 먼 해법이다. 당장 곡물 가격이 폭등하자 수출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나? 더구나 해외 식량 기지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땅만 산다고, 수확해서 식량을 들여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적응 기간이 필요할 텐데,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있다."
"'노인은 떠나라' 정책, 성공할 수 없다"
- 방금 정부 차원에서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 보면 농업·농촌 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주체의 위기'가 아닌가 싶다. 당장 농촌의 노령화 현상이 심각하지 않나?
"한 10년 전쯤 미국에서 농업을 연구하는 한 학자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그 학자에게 한국 농촌의 노령화가 심각하다고 했더니, 그 학자가 이런 얘길 하더라.
'미국도 농업 경영인의 평균 연령이 58세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냐? 원래 농사는 나이 많은 사람이 짓는 거다.'
물론 미국의 경우는 한국과 차이가 있다. 미국의 농업 생산을 담당하는 핵심은 기업과 연계된 대농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자의 말은 미국도 농촌 사회의 핵심은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얘기를 꺼낸 건 고령화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우선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농촌에서. 그런 면에서 고령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우는 건 당면한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고령화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농촌 고령화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학자의 말대로 나이 많은 사람도 농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수천 년간 그래왔고. 그런데 자꾸 규모화, 생산성 이런 얘기를 하면서 노인보고 농사에서 손을 떼라, 이런 게 최근 분위기다. 농업의 주체로서 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은데, 그 역할을 주지 않고 자꾸 뺏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고령화도 문제지만 고령화된 그들을 농촌 지역의 주체, 농업 생산 노동력으로서 위치 지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없다. '노인들은 떠나라, 여건이 되면 몇 푼 쥐어줄게', 이런 식이다. 그런데 앞으로 농촌에서 고령화는 더욱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젊은이가 늙어서 노인이 되는 것 아닌가. 반면에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대량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당분간 거의 없다. 그럼,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요약하자면, 노령화가 사회 전체적으로 또 농촌에서 아주 급속히 진행되니까,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고령화에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당장 더욱 중요한 것은 농촌에 살고 있는 노인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그 분들을 어떻게 사회, 경제적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느냐,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도 노인에게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까,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노인이 농촌의 사회, 경제 주체로 서게 되면 노인은 삶의 보람을 느끼고, 노동하면서 건강해지고, 정부는 복지 부담이 작아지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금은 말로는 떠나라고 하고, 정작 해주는 게 없어서 사실상 '사회적 죽음'을 가속하는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는 결코 고령화하는 농촌 문제를 풀 수 없다."
"농촌 문제, 자기 문제로 인식할 주체가 필요하다"
- 그렇다고, 농촌의 노인들이 농업·농촌 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주체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그렇다. 사실 그런 점이 답답한 부분이다. 지금 농촌의 노인은 대부분 농부 병을 앓고 있다. 아무나 잡고 물어보면 몸이 불편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다. 부부 두 사람이 살다가 남편이 먼저 죽고 할머니들만 남아 그런 할머니들이 자기들끼리 의지하고 사는 게 지금 한국의 많은 농촌의 풍경이다. 그 분들에게 농업의 미래를 맡기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또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이렇게 농촌 사람은 늙어가고, 도시 사람은 농촌으로 안 들어가고 이렇게 비관적인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제 더 이상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가? 사실 지금까지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로 빠져나갈 수 없었던 사람, 즉 어쩔 수 없이 농촌에 남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농촌에 남아 고향을 지키고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도 없지 않지만 그 수가 매우 적고 농촌의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농촌의 가치가 재대로 부각될 수 없다. 농촌은 도시에 지배당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농업이 치명적인 위기에 빠졌지만 여전히 농업·농촌의 역할이 없어진 건 아니다. 농업 없이 한국 사회가 존재할 수 없으니까. 더 나아가 여전히 농업의 가치를 좇는 이들이 있다. 또 도시 문명에 비판적인 사람이 늘면서 그들이 다시 농촌을 재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농업·농촌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농촌의 삶으로 실현해보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농촌의 주체가 돼야 한다. 비록 농민의 수가 줄고, 고령화가 진전된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소수일지라도 이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면, 그리고 그들이 주도해 농촌이 새로운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한다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능성을 보고 도시에서도 농촌으로 사람들이 올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난 수십 년간 깨진 농촌과 도시의 균형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균형이 좀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 지역재단이 5년째 '지역 리더 대회'를 개최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진행한 것인가?
"그렇다. 지역재단이 '지역 리더'라는 표현을 처음 만들고, 이런 행사를 5년째 진행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지금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에서 스스로 농촌의 가치를 인식하고, 실천하려는 사람이 없는 거였다. 그래서 '지역 리더', 즉 '지역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찾는 노력부터 하려고 했다.
그런 지역 리더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 만들기, 농촌 만들기를 하지 않으면 농촌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십 년간 정부가 하는 방식은 농촌을 황폐화할 뿐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입증되었으니까. 지역재단을 만든 계기도 바로 그런 지역 리더를 찾고 그들이 지역에서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할 조직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성장 동맹에 맞서 실천할 이들, 지역에서 찾자"
- 왜 중앙이 아닌 지역에 주목하게 되었나?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경제학자로서 30년간 농업·농촌 문제를 연구하면서 많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간 나를 포함해서 진보적인 학자를 포함한 많은 학자의 관심은 전부 중앙에 있었다. 국가에 변화를 요구하고, 또 그 과정에서 민주화 등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농업·농촌 쪽은 변화가 거의 없고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근본을 따져보면 성장 지상주의에 기초한 효율성과 생산성만 강조하는 농정이 바뀌지 않으니 매번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 그런 걸 보면서, 공허한 생각이 들었다. 바꿀 의사가 없는 사람보고 자꾸 바꾸라고 하고, 안 바꾼다고 성질내고, 그러다 지치고. 즉 이렇게 중앙을 바꾸려는 노력은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염두에 둘 때, 기약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원인도 분명해 보였다. 일단 중앙은 '성장 동맹'이라고 불리는 실체가 있는 아주 강고한 세력이 지배한다. 이에 반해서 농업·농촌을 변호해줄 세력은 아무도 없다. 시민·사회단체도 별 관심이 없고, 학자들도 농업·농촌의 문제는 회피한다. 이렇게 고립된 이유는 바로 지역에서 그런 문제를 푸려는 노력, 실천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에 저항 주체가 있고, 그들의 실천이 있으면, 그걸 보면서 학자, 언론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성장 동맹'에 맞서는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데, 수동적으로 당하고만 있으니, 농촌을 망가뜨리는 세력에 맞서는 대항 세력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지역이 자기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이 농업·농촌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즉 지역 리더가 얼마나 존재하느냐, 또 그들이 얼마나 새로운 농업·농촌을 만들고자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농업·농촌의 회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흐름이 축적되면 결국 중앙도 바꿀 수 있을 테고."
"'순환과 공생의 지역 만들기'가 대안"
- 지역 리더 대회를 5회째 열었는데, 성과가 있나?
"사실 지역 리더는 외롭다. 그래서 이 대회를 만든 것도 지역에서 실천을 하는 이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서, '아, 내가 개인이 아니라 전국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이들이 많구나,' 이런 걸 체험하는 기회를 주자는 거였다. 이런 지역 리더들이 만나서 서로 격려하고, 소통하게 하는 게 중요한 목적이었다.
또 다른 목적은 지역 리더에게 '지역 발전'을 고민할 계기를 주자는 것이었다. 아직은 많은 지역 리더들이 생각하는 지역 발전도 경제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만나서 얘기해보면 똑같이 '지역 발전'을 얘기해도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모여서 우리(지역재단)가 고민하는 지역 발전의 상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토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 '내발적 발전', 이런 걸 강조하고 있다.
"내발적 발전은 '외생적 개발'과 대칭되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농촌의 발전은 바로 외생적 개발에 따라서 이뤄졌다. 즉 도시에 비해서 농촌이 낙후돼 있으니, 도시처럼 개발을 시켜야 한다, 개발을 위한 물적, 인적 자원은 외부로부터 끌어오자, 이런 논리의 개발 전략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십 년을 한 결과가 어땠나?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한 적이 없다. 농촌과 도시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지역은 더 황폐해졌다. 또 외부의 자원에 의존하다보니 자원이 들어왔을 때 일시적으로 흥했다가, 자원이 빠져나가면 피폐해지는 식으로 농촌의 도시 종속만 더 심해졌다. 또 외부의 개발 주체의 관심에 따라서 지역 간 편차도 심해졌고.
이런 외생적 개발의 문제점을 직시하면서 나온 게 바로 내발적 발전이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농촌 문제의 해법의 실마리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이 자기 문제를 알아서 풀 테니까. 내발적 발전은 그들이 발전 동력을 내부에서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지역 내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라.)
물론 현재 농촌이 피폐해 있으니까, 외부 지원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외부의 지원을 내부에서 주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결국 정부의 농업·농촌 지원이 실패했듯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또 고스란히 농업·농촌의 몫이 되고. (외부의 지원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면 아예 받지 말라.)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발전 성과를 지역에 남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펜션을 보라. 지역의 환경을 훼손하면서 들어선 펜션의 성과는 대부분 외지인이 가져간다. 이런 발전은 안 하느니만 못한다. 꼭 경제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환경을 염두에 둔 통합적인 발전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경제, 사회, 문화, 환경을 함께 염두에 둔 발전을 추구하고 그 성과를 지역에 남겨라.)"
- 최근 지역재단은 '순환과 공생의 지역 만들기'를 주창했다. 방금 말한 내발적 발전의 그림을 제시한 셈인데….
"그렇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추구해온 '발전'은 단적으로 말해서 성장지상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 개발이었다. 그 결과가 뭐냐? 환경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붕괴되었다. 특히 농업·농촌은 회생 불가능하다 여길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더 늦기 전에 그동안 무너진 걸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그 구체적 내용은 원래 지역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다. 원래 지역의 모습이 어땠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면서 순환의 원리에 따라서 살아가지 않았나. 이제 지금까지 해왔던 경제 중심의 발전을 포기하고 '순환'과 '공생'을 두 축으로 지역 만들기를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하고자 이번에 큰 틀에서 순환과 공생의 지역 만들기 그림을 제시해 보았다."
"'로컬 푸드', 긍정적인 대안 중 하나"
- 최근에 '로컬 푸드(local food)', 지역 먹을거리를 농업 회생의 돌파구로 삼자, 이런 주장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컬 푸드 체계(local food system)'를 구축하자는 것인데, 이것 역시 '글로벌 푸드 체계(global food system)'에 대항해서 나왔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이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식(食)과 농(農)의 거리 즉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양자 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둘 다 손해를 본다.
생산자는 먹을거리의 가격은 올라가는데 점점 제 몫은 줄어든다. 소비자는 식탁에 오르는 먹을거리가 과연 안전한지 신뢰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득을 보는 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유통 자본이다. 이런 구조를 더욱더 확장하려는 게 바로 글로벌 푸드 체계인데, 로컬 푸드 체계는 바로 이런 흐름에 대한 반대로 탄생한 것이다.
지역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면 생산자에게는 적당한 보상이 돌아가고, 소비자는 안전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 유통 자본이 차지할 몫을 생산자가 가져가고, 대신 안전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책임을 지는 로컬 푸드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현재의 글로벌 푸드 체계보다 훨씬 더 지속 가능할 수 있다."
- 한편으로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물론 로컬 푸드 체계가 과연 글로벌 푸드 체계를 대체하는 지배적인 방식이 될 수 있을지 회의할 수는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되겠느냐, 이런 식의 의문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게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로컬 푸드 체계가 상당히 구축돼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막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이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건 시기상조다. 지금은 오히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실제로 지역에서 이런 로컬 푸드 체계를 구축할 잠재력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전국 시장보다 지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생산자, 소비자 양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역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서울의 도매 시장으로 보내고, 많은 유통 과정을 거쳐 다시 지역의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구조이다. 지역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를 기반으로 연결하면 이런 불합리한 구조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탁상공론은 그만! 실천이 중요하다"
- 지역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연결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특히 이마트와 같은 유통 자본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암담하다.
"글쎄,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항상 문제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초국적 금융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먹을거리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의 먹을거리를 지배하는 유통 자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결국 또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고….
그렇게 따지다 보면 결국 개인이 할 일은 무력감을 느끼는 일 뿐이다. 이젠 좀 다르게 접근해보자. 큰 그림을 그려놓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실천에 주목하자. 실제로 곳곳에서 의미 있는 실천이 진행되고 있고, 때로는 그런 실천이 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은 권력을 흔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자꾸 대안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지금 필요한 것은 대안 담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누가,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바로 이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학자들이 글 쓴다고 실천이 되는 게 아니다. 다른 질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방금 지적한 질문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답이 명확하다.
대형 유통 자본이 재래시장을 대체하는 바람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연결 같은 로컬 푸드 체계를 만드는 게 어렵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해법은 하나다. 어렵더라도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연결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먼저 파야지, 누가 파주길 기다리다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법이라도 제대로 지켰으면…"
- 마지막으로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이명박 정부에 제안을 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가 법을 지키면 된다. '농업 농촌 및 식품 산업 기본법'이라는 게 있다. 이 기본법에는 정부가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하고 달성하도록 돼 있다. 바로 그 법에서 명시한 대로 지키면 된다. 목표치를 한 35% 정도로 잡고, 그걸 달성하려면 농지를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등의 세부 계획을 마련해서 실천하고.
농정을 농민과 지역 주민의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소수의 농업 기업으로 한국 농업을 살리겠다는 발상은 버리고, 농민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소득도 높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농촌 개발이니 지역 개발이니 하면서 새로운 토목공사를 벌릴 것이 아니라, 농촌의 생태환경을 보존하고 농촌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교육, 의료, 복지, 환경 등 공공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그러면 끝난다. 그걸 안 하고 있으니까 답답하다.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해외 식량 기지 건설 같은 거나 추진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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