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옆 동네는 밤새 불이 꺼질 줄 몰랐다고 한다. 장사가 잘 돼서 그랬다는 옆 동네 이름은 텍사스촌. 텍사스촌을 옆에 두고 이 동네는 이제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개발이 됐다. 도로도 없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던 이곳에 도로가 뚫리고 고층 건물이 들어섰건만 골목은 더 낡아 보인다. 사방이 다 똑같이 낡았던 옛날엔 여기가 이렇게 허름했는지조차 몰랐으리라. 이제 이곳은 길음 뉴타운 옆 골목이 되었다.
길음 뉴타운 옆 골목인 이곳 성북구 하월곡동 낡은 주택가엔 지역아동센터가 하나 있다. 과거 빈민 지역에 있던 공부방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른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시간에 이곳 학생들은 여기에 모여 공부를 하고 문화생활도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지역아동센터가 방과 후 4~6시간 프로그램으로 맡는 것이다.
학생들은 방과 후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보다는 이곳에 와서 쉬고, 숙제를 지도받고, 간식도 먹으며 집단 활동을 한다. 음악, 미술, 영어 회화. 영화 보기 등 보통 집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하는 것들을 이곳에서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주로 서울교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교사 자원봉사자로 참가해 이곳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생 연령층이 다양한 이곳에는 총 29명의 학생이 소속돼 있다.
'놀거나, 혹은 자거나'…"하고 싶은 일? 없어요!"
이곳에 다니는 철훈이(14, 가명)의 하루는 아침 10시쯤 시작된다. 방학을 해서 늦잠을 실컷 자도 되기 때문이다. 단잠을 늘어지게 자고 나면 부모님은 일을 나가셨기 때문에 안 계신다. 밥을 챙겨 줄 사람도 없고, 챙겨 먹기도 귀찮아서 그냥 아침밥은 거르기 일쑤다. 일어나자마자 밥도 안 먹고 철훈이가 하는 일은 컴퓨터 게임.
게임을 조금 하고 나면 점심때다. 철훈이는 점심을 먹으러 근처 지역아동센터(이하 센터)에 온다. 점심을 먹고 이곳 센터 프로그램에 따라 영어, 수학 등을 배운다. 때론 이곳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한다.
보통 오후 3시가 되면 센터 수업은 끝나고 이때부터 친구들과 논다. '무엇을 하고 노느냐'고 물으니 철훈이는 그냥 친구들과 뛰어논다고 말한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갈 법도 한데 PC방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비싸잖아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친구들과 놀다 보면 저녁. 집에 와서 밥을 대충 먹고 나면 그 뒤부터는 쭉 TV를 본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까지 다 보고 나면 얼추 새벽 1시. 잠자리에 든다.
철훈이의 하루는 이렇게 단조롭다. '놀거나 자거나'다. 따로 공부하는 시간이 없다.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센터도 친구와 놀려고 나온다고 했다.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가 학원 대신 여기로 보냈다고 한다.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짧다. "몰라요." 더 물어보려 하자 눈길을 피한다.
철훈이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 역시 대답이 짧다. "없어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이곳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학생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다. 어떤 계획도, 어떤 꿈도 꾸고 있지 않아 보였다. 공부방에 오는 게 하루 일과 중 유일한 '계획'이었으니까.
사교육비 2만 원, 문제집은 남이 풀던 것
이곳 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는 7월 30일에 치러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사교육비 절감을 제1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이곳의 사교육비는 '0원'에 가깝다.
이곳 학생들에 따르면, 인근 학원의 학원비는 적게는 17만 원에서, 많게는 80~100만 원, 평균 30~40만 원 정도. 하지만, 이곳 센터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2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중학교 2학년인 대성이(가명)는 그나마 사교육이란 것을 받고 있다. 학원은 다니지 않지만 학습지를 받아본다고 했다. 가격은 2만 얼마쯤. 3만 원은 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학원에 다니기도 했는데, 학원비는 8만 원. 이곳엔 대성이 말고는 딱히 사교육이란 것을 받는 학생이 없었고, 그가 다닌 학원도 인근보다 훨씬 저렴했다.
'왜 학원을 다니지 않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열이면 열, 한목소리로 말했다. "비싸잖아요." 보다 못한 이곳 교사가 옆에 와서 살짝 '귀띔'을 한다. "기자님,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질문이에요."
한편, 초등학교 5학년인 하연이(가명)는 반에서 1등을 하는 똑똑한 친구다. 교수가 꿈이라는 하연이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하루 계획표대로 생활하는 야무진 학생이다. 공부를 잘하는 비결을 묻자 "책 보고, 문제집을 푼다"라며 "그런데 문제집 사기는 너무 비싸서 친척들이 미리 푼 문제집과 교과서를 구해서 본다"라고 말했다.
"사교육비 경감? 사교육 근처에도 못가는 아이들도 많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전지협·회장 박경양)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아동 빈곤율은 10%. 적지 않은 숫자다. 빈곤층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학원에 못 다닌다. 학교 교육이 전부다.
이에 대해 전지협 박경양 회장은 "교육감 후보들이 사교육비를 낮추겠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사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 빈곤 계층은 사교육을 받지 못한다. 아예 사교육을 못 받는데 무슨 사교육 경감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들을 훌륭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야겠다는 책임을 느끼는 게 교육이다"라고 강조했다.
"과외 받으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을 것 같아요"
이곳 학생들의 성적은 대부분 하위권이다. 이들은 "반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가 부럽다"라고 말한다. "그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 뭘까"라고 물었더니,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인 명진이(가명)는 "반에서 1등 하는 친구는 학원에 가서 오후 3시에서 밤 11시까지 있다. 시험 기간 때는 새벽 1시까지 붙들어 두는데 공부를 못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곳 학생들은 학원은 비싸서 다닐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과외는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성이는 "과외 받는 친구들이 많이 부럽다"라고 말했다."(과외) 받는 애들은 하기 싫다고 하는데, 나는 과외를 받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라는 게 이유다. 대성이의 부모님은 일본에서 식당을 하신다. 지금 대성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평소 혼자서 공부하는 하연이도 '혼자서 공부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엄마를 보기 힘들다"라며 "엄마는 밤에 일하고 낮에는 주무셔서 하루도 얼굴을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해야 한다고. 하연이는 현재 어머니와만 살고 있다.
편부모·조손 가정, 월수입 150만 원 미만의 차상위 계층이 대부분
이곳 아이들은 부모님과 생활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통 부모의 관심 속에서 공부하는 아이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지역아동센터의 교사인 조유선(40) 씨는 "여기 오는 아이들 80%가 대부분 편부모이거나 조손가정 학생들이다"라며 "부모가 이혼했거나 경제 사정으로 말미암아 떨어져 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지협에 따르면, 전국에 지역아동센터는 3600여 개(서울에만 250개, 미신고 50여 개 포함)가 있다. 이 센터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가족 형태는 다양하다. 부모와 동거하는 2세대 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 형태에 속한 아동이 43.3%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 모자 가족이 16.9%, 부자가족이 12.9%, 조손 가족이 10.5%, 재혼가족이 2.9%다.
이에 대해 박경양 회장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방치당했다"라며 "심리적 상처를 치료하고, 정서적 안정을 하게 해서 꿈을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의 63% 이상이 가구 내 월평균 수입 150만 원 미만의 차상위 계층에 속한다. 그리고, 전·월세에 사는 아이들이 71.4%로 조사됐다. 주거 환경이 대체로 불안한 편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먹고사는지 잘 상상이 안 돼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수근(가명) 학생은 할아버지가 상자와 폐지를 수집해 생활을 꾸린다.
지혜(가명)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 상태.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택배 배달을 하며 쪽방을 전전하고 있다. 그는 월 70여만원의 수입을 아끼려고 주말에 라면으로 끼니를 몰아서 먹는 극빈층이라고 설명한다.
이곳 아이들에게서는 흔한 경우다. 대부분 부모 둘 다 일을 하는 집이 많고, 일을 하더라도 일용직에 종사해 노는 날도 많다고 한다. 어떤 집은 한 달 수입이 70만 원인 집도 있는데, 그나마 부모가 일 할 때 얘기. 부모가 일하지 않고 있을 때는 이것조차 되지 않는다. 이곳 교사들은 "이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잘 상상이 안 될 때가 많다"라며 "형편이 매우 열악하다"라고 말한다.
교사들에 따르면, 이곳 하월곡동 센터 아이들 29명 중 기초생활 수급자는 20명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학교운영비를 제외한 학비, 일정액의 교통비와 학용품 등 교육 경비, 교복·교과서값 등을 지원받고, 담임교사의 재량에 따라 특기 적성 교육(방과 후 학교)비를 면제 받기도 한다.
"우리 애 이름을 빼 주세요"…"급식 받으면, 쌀이 안 나와요"
하지만, 이런 학생들이 받는 지원은 해당 관청마다 기준이 조금씩 달라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적인 예가 있다. 얼마 전 이 센터에 한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이곳 명단에서 아이 이름을 빼달라는 것. 학생 수에 맞춰 지원을 받던 센터로서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설명은 아이가 센터에 다니면서부터 아이 앞으로 나온 쌀 한 포와 햄 지원이 끊겼다는 것. 이 센터가 하월곡동에 있지만, 길음동에 사는 학생들도 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길음 2동사무소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아동에게 현금이 아닌 물건으로 지원하는데, 이 학부모의 아이가 지역아동센터에서도 급식을 지원받는다는 사실을 알자 일방적으로 아이 이름을 명단에서 빼버렸다.
교육과학기술부 |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 방과후학교 사업 대학생 멘토링 지원사업 저소득층 중·고생 학비 지원사업 저소득층자녀 학교급식비 지원사업 저소득층자녀 정보화 지원사업 |
청소년위원회 | 청소년 방과후아카데미 사업 청소년 방과후 공부방 사업 위기청소년 사회안전망(CYS-net) |
보건복지가족부 | 지역아동센터사업 희망스타트사업 |
문화관광체육부 | 문화예술교육 지원 |
노동부 | 청소년 직업체험 프로그램 |
이렇게 각 행정 구역별로 저소득 계층을 파악해 지원하는 기준이 공무원의 해석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또, 국가 차원에서 아동·청소년 복지를 담당하는 곳이 다양한 것도 문제다. 교육과학기술부, 청소년위원회, 보건복지부, 문화관광부, 노동부에서 아동과 청소년의 복지를 담당하고 있는데 지원되는 내용과 수혜 대상이 제각각이라 무엇을 지원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지원받는지 알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지원은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데, 자신이 저소득층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이 싫은 사람은 일부러 신청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저소득계층 학생의 담임 교사가 그 학생에게 얼마나 신경을 써주느냐에 따라서도 지원은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 개개인이 받는 지원의 정도는 제각각이고, 저소득층 학생의 복지 사각지대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박경현 회장은 "기준이 통일되고, 부처 간 담을 넘어 원활하게 지원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며 "학생이 처한 어려움을 기계적만으로 파악하다보니, 하월곡동 아동센터와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뚫어진 양말이야 꿰매주면 되지만…아픈 아이는?"
지역아동센터가 겪는 재정적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하월곡동 센터의 경우, 보건복지가족부에서 한 달에 약 220만 원을 지원받는 게 전부다.
특히 아이들이 아플 때, 그런데 부모는 집에 없고, 교사가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이곳 교사들이 가장 속상해 하는 순간이다. 이런 사연은 끝없이 쏟아졌다. 학생이 이가 아파서 밥을 못 먹고 있는데 바로 치과에 데려갈 수 없을 때, 또 학생의 머리가 너무 길어 잘라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을 때…등. 운영비만 넉넉했더라면, 겪지 않았을 답답함이다.
조유선 교사는 양말이 뚫어져 네 발가락이 다 보이는 아이의 이야기를 했다. 당시 그는 양말을 바로 벗겨서 꿰매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교사가 치료까지 해 줄수는 없다. 조 교사는 아이들을 위한 의료와 미용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가난한 아이들도 문화적 체험을 원해요"
물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무료 진료 혜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 교사 역시 이런 혜택을 위해 해당 기관에 신청한 적이 있다. 막상 신청해보니, 지원 혜택은 쥐꼬리만한데보다 제출해야 할 서류의 양은 산더미였다. 그는 "그래도 아이들에게 치과 정기 검진을 받게 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말했지만, 무료 진료 혜택을 위한 절차가 좀 더 간소화됐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는 새로 선출될 교육감이 보건소 운영 정책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제안을 곁들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양은성(30) 교사는 아이들이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캠프나 공연을 찾느라 몹시 분주하다. 아이들에게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일 수록 문화적 체험의 기회가 적다. 양 교사는 그게 영 안타깝다.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양 교사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다.
주민 직선 교육감이 들어서면 좀 달라질까. 그는 좀 회의적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문화적 배려까지 신경쓰는 교육행정가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아동센터 예산 삭감…"성적에 따른 평가? 실패 경험만 늘릴 뿐"
지난해 말, 정부는 지역아동센터의 예산을 월 20만 원씩 올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예산 삭감 얘기가 나왔다. 이 센터 운영비도 삭감될 것이란 말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정권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 '평가를 통한 차등 지원'으로 선회한다는 방침이 서고, 지원이 보류된 것이다. 한동안 센터는 이 문제를 두고 복지부와 승강이를 벌인 끝에 겨우 지난 6월이 되어서야 인상분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양 교사는 "정말 이명박 정권이 들어오면서는 불안한 게 한둘이 아니다"라면서 "'평가를 통한 차등지원'이란 말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성적을 통해 센터를 평가하겠다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지역아동센터가 아이들에게 '공부 이외의 것'도 다양하게 제공해주는 곳이 되길 바라는 그에게 현 정부의 방침은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는 "이곳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보살핌이다. 낮은 성적은 그 다음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곳 학생 대부분은 집에서 받은 상처가 많다"라며 "공부보다는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자기 확신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성적을 통해 평가하겠다는 것은 학교에서 더욱더 실패의 경험만을 늘리겠다는 말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공부를 못하면 교사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그러면 그 학생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계속 주류에서 배제된다는 악순환이다. 현 정부가 저소득층 아이들이 겪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를 잘라낸 이명박 정부
이런 예는 많다. 참여정부 시절,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이 추진됐다. 미처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지도 못한 이 사업의 명칭이 정권 교체와 함께 바뀌어 버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사업 명칭에서 '복지'라는 말이 빠져 '교육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이 됐다. 현 정부는 이 사업을 계속 유지하되 복지 아니라 투자 개념으로 사업의 내용을 바꾼 것이다. 이는 단지 단어 하나가 빠진 문제가 아니다. '복지'라는 단어에 담긴 '보살핌'의 기능을 접겠다는 뜻이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게 조금 '투자'를 해서 성적을 높여보겠다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성적이나마 올릴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다. 사교육비 월 200만 원과 월 2만 원의 격차에 고려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전문계 고교 학생들의 한숨…"우리는 늘 그림자일 뿐"
정권 교체에 따른 이런 변화는 이곳 학생들이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고등학생은 모두 전문계 고등학교(2008년 4월부터 실업계 고등학교의 명칭이 이렇게 바뀌었다)에 다닌다. 인근 상고에 다니는 이휘준(17, 가명) 학생은 "솔직히 인문계 다니는 친구들이 불쌍했다"라며 "아침 0교시에, 야간 자율 학습에 학원까지 다 다니고도 성적은 중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정권이 바뀌면서 전문계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히 인문계를 가지 않고 전문계에 온 것은 대학 특별 전형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학교에서 전문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전형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뀐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자기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요즘 그는 전문계 고등학교에 간 게 몹시 후회스럽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 인터넷 어디에서도 이런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힘들었다. 휘준이 같은 아이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언론 매체는 없었다.
이곳 하월곡동에도 교육감 선거는 포스터 곳곳에 붙어 있었다. 교육감 후보들은 특목고와 자사고 정책을 놓고, 다양한 공방을 벌였다. 서울시민 모두가 참가하는 선거에서조차,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아이들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아이들은 언제쯤 주인공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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