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두고 청소년들이 뿔 났다. 오는 30일은 주민 직선제로는 처음 서울시 교육감을 뽑는 의미 있는 날이지만, 정작 청소년들에게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청소년들은 교육의 주체가 교육 수장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모순을 지적하며, 직접 교육감에 출마하기로 했다. 17일 오후 서울특별시 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청소년직접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년' 후보의 교육 공약을 발표했다.
물론, 이들은 공식 후보는 아니다. 교육감 후보로 등록하려면, 5년 이상 교육 관련 경력을 갖춘 만 25세 이상의 주민만 교육감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청소년' 후보는 진지했다. 같은 날 유세를 시작한 '공식 후보'와 비교해도, 교육 사안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뒤지지 않아 보였다.
청소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교육감 선거…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은 투표권 없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레볼루션(17, 별칭) 학생은 "외국에서는 만 15세도 선거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청소년은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없다. 한국은 아직도 정치 후진국이다"라며 "선거 기간에만 국민은 잠시 왕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은 선거 기간에도 정치에서 배제돼 있다. 이것을 비판하고자 기자회견에 나왔다"라고 말했다.
'청소년직접행동'은 "청소년도 엄연히 교육의 주체다"라며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교육감 선거를 하면서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제쳐놓고 어른들만을 위한 교육감 선거를 하는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이날 출마를 선언한 '청소년' 후보도 출마의 변을 통해 "청소년은 유령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라며 "뻔히 알면서도 제 3자끼리 당사자는 빼놓고 선거를 하겠다니, 이게 뭐하자는 것이냐, '이명박 OUT' 하라고 했더니 애꿎은 '청소년 OUT'을 한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기호는 0번 '청소년', 서울시 교육감 출마
이날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청소년직접행동이 내놓은 기호 0번, '청소년' 후보다.
'캐발랄 젊은 후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정책과 공약을 통해 청소년으로서 진정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라며 "입으로만 청소년을 위하고, 실제로는 뽑히려고 나온 다른 후보들과는 다르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는 삶 속에서 온갖 교육문제를 직접 겪고 여기에 찌들어 있는 청소년들, 자신이 가장 잘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을 대하는 학교와 사회의 태도는 촛불을 대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똑같다"라며 "법은 '야간학습 강제 금지, 보충학습 강제 금지'여도 뒷구멍에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다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비꼬았다.
그는 "지금의 학교로는 결코 청소년이 행복해질 수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로운 학교가 필요하다"라며 "특별한 걸 주장하는 게 아니다. 행복하게 배우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마음을 존중하라는 것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청소년' 후보의 공약…0교시·강제 야간학습·우열반 금지 등
아울러 그는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그는 "교육의 반대말은 경쟁"이라며 "입시경쟁교육 폐지"를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공약은 △0교시, 강제 야간학습, 방화 후 보충수업, 우열반 절대 금지 △고교 평준화 완성 및 특목고, 자사고 폐지 △학원 영업시간 제한 및 학원비 공개제도 도입 등이다.
또 '청소년' 후보는 "교육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부모의 재산, 학력, 가족정보를 요구하는 가정환경조사서를 학생들은 학교에 내야 한다. 또 학생이라면 그 어떤 정당이나 단체에 가입도 못 한다. 심지어 집회 결사의 자유도 없는 차별적 학칙이 있고, 명찰을 의무화해 이름을 공개하고 개인을 통제하려 드는 학교가 있다"라며 "학교는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청소년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밖에도 그는 "영어 능력이 차별의 수단이 되고, 조작된 위기와 강요된 공포가 연 15조 원의 영어 사교육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며 영어몰입교육에 반대하며 영어교육정상화를 요구했다.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교육 공간 마련하라"
또 그는 "교육감 선거에서 투표권은커녕 선거운동조차 할 수 없다는 게 웬 말이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아주 당연한 한 표를 요구하겠다"라며,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세부 공약을 제시했다. △2009년 지역 교육감, 교육위원 선거부터 청소년 선거권 보장 및 자문위원회 구성 △학교운영위원회에 청소년 참여권 보장 및 법제화 △문제가 생기면 일방적 징계 대신 해결방안을 함께 논의한다는 전제 하에서 인권침해 교사에 대한 교사 소환제 시행 등이다.
그는 "모든 교육 정책은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고 사회에 있어 청소년이 아닌 '학생'일 뿐"이라며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고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며 '탈학교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공간 및 지원방안 전담 부서 신설'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청소년직접행동'은 그동안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 자율화 정책에 반대하는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앞으로도 '캐발랄 젊은 청소년' 후보를 내세워 △교육감 출마 후보자들과의 만남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과의 만남 △교육현장에서 현직 교사와의 만남 △청소년 장애, 성소수자 인권단체와의 만남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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