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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력 역시 국민에게서 나온다"

[토론] "대의정치 붕괴, 헌재 보수성 도마위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직후 행정수도 이전 예전지역인 충청권에서는 광범위한 항의 집회가 열리는 등 직접 저항이 벌어지는 한편, 헌재 위헌 결정 논리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고의 사법 권위를 가지고 있는 헌재가 이처럼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은 헌재 창립 이래 초유의 사태로, 이번 판결은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헌재의 권위와는 별개로 헌재의 정체성과 한계 등을 드러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프레시안>은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공동으로 헌재 판결에 대한 토론회를 지난 3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사회로 정태호 경희대 법학 교수, 이해영 한신대 정치학 교수, 하승수 변호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먼저 "대의정치가 몰려드는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헌재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헌재 역시 보수적 정체성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헌재의 위헌 결정은 지나치게 정치적 결정"이며 "관습헌법을 위헌 결정 논리로 끌어온 것은 헌재가 스스로 성문헌법의 법적 안정성을 무너뜨린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선임(selection)된 헌재 재판관들이 선출(election)된 국회를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에 맞지 않다"고 입을 모으면서 "헌재 구성에 대한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법권력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명확히 자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토론회 전문이다.

***하승수, "헌법소원청구, 내용과 주체가 변하고 있다"**

프레시안: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정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행정수도 이전의 정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헌재가 현실정치에 지나치게 깊이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이 사회 여론을 수렴해서 정책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법적 판단에 기대 끌려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세력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를 헌재가 결정해버리고, 그것에 기대고 있는데, 이처럼 헌재에 힘이 급격히 쏠리는 이유는 뭔가?

하승수 :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주체와 내용이 바뀌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전에는 사회적 소수자나 힘없는 시민들, 노동자들이 헌법재판을 많이 청구했고, 시민단체들이 공익소송차원에서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득권적 사고 혹은 수구·보수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재판을 청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헌법재판을 주체와 내용에서 일대 변화가 일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은 이런 현상을 한층 가속화 시킬 전망이다. 수구적·보수적 가치를 유지하려는 정치적·사회적 세력들은 헌법소원이 유효한 투쟁수단임을 이번 판결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헌재로 힘이 급격하게 쏠리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대의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화와 협의에 의한 정치가 어려운 조건이거나 정치세력들이 그런 정치를 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 대의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할 문제가 사법적 영역으로 이전된다.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면 대의정치는 당분간 정상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의정치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이 헌재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본래 기능은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헌재가 현실정치적 문제에 대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합헌판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긱각판정 등 국민의 인권보장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현실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가 현실정치적 문제에까지 개입하려고 한다면, 과연 헌재가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인지,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구성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해영, "대의정치 붕괴가 헌재 과부하 불렀다"**

이해영 : 헌재의 정체성은 정치학적으로 고찰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헌재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군부독재를 비롯 지나친 행정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사법권 강화하는 차원이었다. 즉 헌재 존재 자체가 민주화운동의 결과이고, 아래로부터 민중의 열망을 받아안은 제도개혁의 산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헌재의 구성을 비롯 민주화 진전에 있어 헌재의 역할등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로 인해 최근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한국사회를 보면 87년 이래 2차 빅뱅이 도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 어디에도 갈등을 해결할 기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사회적 갈등,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속에서 갈등 에너지가 헌재에 유입되고 있다.

대의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소화할 수용력이 없는 상태에서 헌재가 그 역할을 부담하는 형국인데, 그런 점에서 이번 헌재 판결은 대단히 유감이다. 물론 헌재는 정치적 판단을 해야할 때가 있다. 더구나 근본적으로 초 정치적인 판결은 없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보듯이 미 연방대법원이 부시의 손을 들어준 것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판결은 좀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다. 헌재의 판결은 지난 4월의 1차 탄핵에 이은 일종의 '미니' 탄핵으로 한국사회 보수기득권층의 불안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4월 탄핵은 보수적 입법권력과의 이번 위헌탄핵은 보수적 사법부와의 갈등으로 보인다.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는 고학력, 중산층 이상의 비토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메인스트림에서 보면 여전히 불쾌하고, 불안하며, 좌파로 볼 수 밖에 없는 소수정권이다.

향후 한국사회 미래를 생각해보면,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상 사회적 힘 사이의 충돌은 계속될 것이다. 이를 완충해야할 제도적 보완과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정태호, "헌재위헌판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갈등"**

프레시안 : 생각해볼 것은 여야가 합의된 사항을 헌재에 가져가 무산시키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란 부분이다. 고도의 정책적 사항에 대해 헌재가 판단한다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국회에서 결정된 사안이 헌재에서 뒤짚어 진다는 것은 보다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정태호 : 물론 민주적 정당성이 적은 헌재가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여야 국회의원들이 합의로 통과시킨 법률을 위헌으로 선언하는 것에서 법치주의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 사이의 갈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제도 자체가 민주적 결정에 대하여 그어진 헌법적 한계의 준수여부를 통제하는 제도이다. 헌법은 입법부에 법 제정권을, 헌재에는 법률의 위헌성을 판단할 권한을 주었다. 따라서 어떤 법률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더라도 그 법률에 위헌성이 있다면, 헌재가 그 법률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헌재가 이번에 법률의 합헌성 통제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명백히 정파적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동원한 논리의 핵심이 '관습헌법'이라는 괴물이다. 대한민국은 성문헌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인데, 성문헌법은 근대 이래의 '입헌주의운동'을 통해 얻어낸 역사적 쟁취물이다. 헌정질서의 명확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피어린 노력의 산물이 성문헌법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헌재 위헌 결정은 헌정질서의 안정성을 흔드는 매우 위험스런 결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결정은 헌재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하승수 : 이번 판결문을 보면, 미리 결론을 내리고 논리를 끌어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관습헌법이란 걸 들고 나옴으로써 헌재가 헌법을 변경시킬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높아졌다. 헌재가 해석을 통해 관습헌법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민들이 행사해야 할 헌법개정권한을 헌재가 행사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우리 헌법체계를 근본저긍로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기본체계를 헌법을 수호해야할 헌재가 스스로 흐트러 버린 것이다.

***정태호, "관습헌법, 판관의 주관적인 가치관이 법으로 위장됐다"**

정태호 : 많은 학자들이 관습헌법 논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관습헌법은 그 존재를 증명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재판관 개인의 주관적인 법적 표상을 마치 객관적인 법인 것처럼 위장하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관습헌법논리의 내재적 위험성이 노정된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국가가 수도를 오랫동안 서울에 두어왔던 관행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으나, 이 관행이 법적 확신의 뒷받침을 받고 있지 못하고, 또 그 관행이 성문헌법과 같은 지위를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헌재가 국민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먼저,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사실로부터 '수도는 서울이어야 한다'는 당위를 이끌어 내는 헌재의 논증과정에 무리가 많다. 그것이 관습헌법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법적 확신, 따라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지난 대선과정 이후의 우리의 정치상황만 돌이켜보더라도 도대체 이 문제에 대한 합의형성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는 것은 극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설사 한때 '수도는 서울이어야 한다'는 관습헌법이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지난 대선과정 이후 그에 대한 국민과 국가의 법적 확신은 붕괴되었고, 따라서 더 이상 그러한 관습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률의 개정으로 얼마든지 수도의 위치를 변경할 수 있다.

이해영 : 헌재가 사이버 헌법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올해의 대표 코메디다. 관습적 사실로부터 규범을 도출하는 터무니없는 인식적 오류다. 더구나 봉건시대참고서에 불가한 경국대전을 공화국 체제의 헌재가 헌법적 지위로 격상시켰다. 그러면 고려의 훈요10조, 고조선의 8조 금법도 헌재의 판단에 따라 헌법이 되겠다. 헌재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승수, "헌재, 사법관료집단의 수중에 넘어갔다"**

프레시안 : 헌재의 이번 판결에 대해 헌재 법관의 구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의견들이 있다. 헌재 구성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하승수 : 헌재는 다수의 판사출신 재판관과 소수의 검사출신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민의 인권을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수호하는 것이 헌재의 핵심 임무인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헌재 재판관 구성은 적절치 않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해왔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법원과 검찰은 엄격한 위계구조를 가진 관료조직이었다. 관료출신에게 시민의 인권수호를 맡긴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사회에서 판사와 검사는 매우 패쇄적인 엘리트 집단에 속해 있다. 이들이 시민의 인권에 대해, 시민의 삶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실정법을 적용해 온 법무실무가의 눈으로 헌법을 본다는 것은 헌법의 가치를 죽이는 일이다.

정태호 : 현재의 헌재 재판관들의 면면을 보면, 검사나 법관으로 재직할 당시에 권위주의체제를 떠받치고 있던 법률들에 의하여 기소를 했거나 유죄판결을 내렸던 전력이 있던 사람들이다. 인간이 자기 부정을 하기 힘든 동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헌재 재판관들에게 과거 자기가 내렸던 판결에 반하는 진보적 결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하승수 : 이런 상황에서 헌재재판관의 헌법관을 신뢰할 수 없고, 인권관을 신뢰할 수 없다. 또한 재판관이 어느 특정계층에, 특정한 정치적 성향에 편향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 신뢰가 결여된 재판관들이 헌법에 대한 최종 해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다. 인권이 침해당한 사람들이 믿고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해영 : 좀더 근본적으로 헌재와 입법부를 비교해보면 헌재 재판관들은 선출(election)된 것이 아니라 선출된 자에 의해 선임(selection) 혹은 임명된 사람들이다. 이는 헌재의 합법성과 별개로 헌재의 정당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임명된 자에 의한 선출된 자의 부정은 헌법 1조 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정신에 배치되는 일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의 문제만 협소하게 바라보지 말고 헌법재판소 자체의 정당성의 근거들을 마련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제도적 한계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미비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입법부 쪽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나 한다.

프레시안 : 정치적 타협과 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사안들이 사법기구인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는 이유, 헌재의 위헌 판결의 성격, 헌재 재판관 구성의 문제 등 몇가지 주요한 지점들을 짚어봤다. 마지막으로 한계를 지닌 헌법재판소를 시민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정태호, "헌법재판관, 중립적 인사가 선출되도록 제도적 보완 절실"**

정태호 : 헌법개정을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현행헌법 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나눠서 생각해봐야 한다. 헌법을 개정한다면 헌재의 중립성과 소수파 보호 가능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헌재 재판관들 모두를 국회에서 선출하되, 예컨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내지 4분의 3 이상의 지지를 받도록 해 제도적으로 중립적인 인사가 선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기를 늘리되 연임을 할 수 없도록 하여 재판관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현행헌법의 개정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도록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의 재판관들은 경력만이 아니라 가족관계, 연령 등의 면에서도 차이가 별로 없다. 오랜 법조생활을 통해 보수화된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에서 재판의 규준이 되는 헌법규범이 정치성을 강하게 띨 뿐 아니라 추상적이고, 재판의 대상도 정치적 사안들이며, 재판의 결과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에 대한 고려를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재판관 개인의 가치관이 헌법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헌재가 사회의 다원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나아가 헌법정신의 이해도와 호헌의지가 최우선적인 선임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승수 : 앞서도 말했듯이 헌재는 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다. 하지만 현재 헌재는 사법 관료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87년 헌법에서는 주로 군사독재의 부활을 막고, 행정권과 입법권의 전횡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군사독재 시절부터 문제가 되어온 사법관료들의 문제에 대해 소홀했던 것이다. 앞으로의 고민은 사법관료조직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헌재 권력을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조직으로 가져올 수 있는가란 부분이다.

일부에서는 헌법재판관 인선에서 외부 교수나 학자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외부 인사가 들어가더라도 사법관료가 헌재 재판관의 주류를 차지할 경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하고, 사법관료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이번 헌재의 위헌 판결은 헌재의 보수성을 재확인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의정치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된 사건이기도 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해소능력이 여전히 부족한 우리지만 대의정치 복원을 위해 한 말씀씩 해달라.

정태호 : 먼저, 헌재는 입법의 위헌여부만을 통제할 권한만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헌법은 정치의 궤도와 한계를 제시하고 있을 뿐 공동체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직접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정치는 헌법이 그어놓은 테두리 안에서 공동체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헌재가 스스로 정치를 함으로써 대의정치를 질식시키고 민주적 정치구조를 왜곡하려 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할 경우 헌재는 정치권의 반격에 직면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헌재는 그 재판이 독립성, 형평성, 합리성을 잃지 않을 때 형성되는 권위만이 자신의 유일한 자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헌재를 감독할 수 있는 상급법원이 없다. 따라서 헌재의 월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헌법학계와 시민사회의 분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헌법학계는 헌재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높은 헌법해석론을 활발히 공급하는 한편, 헌재가 판례를 통해 전개하는 법리를 철저하게 검증함으로써 헌재의 자의적 재판의 여지를 축소해 나가야 한다. 헌재의 판례는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말일 뿐이며 헌법해석에 대한 최종적인 말이 아니다. 헌재 판례의 법리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헌재의 기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민사회 역시 헌재의 헌법해석에 대한 냉엄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끝으로 정치권, 특히 야당은 인내를 가지고 긴 안목으로 정치를 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이제 강자에게만 유리한 형식상의 법치주의, 정당성 없는 다수의 횡포를 치장하는 사이비민주주의의 시대는 끝났다. 야당은 이제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자신이 집권여당보다 유능한 대안세력임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또 설득하는 합리적 투쟁방식을 취하여야 하고,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단상점거, 장외투쟁 등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하에서 야당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투쟁방식을 포기할 때가 되었다. 의회에서의 정치적 패배는 선거에서 집권세력의 책임을 정치적으로 추궁함으로써 만회하려고 노력하여야 하며, 헌재에서 패자부활전을 펼침으로써 자신의 패배를 만회하려는 시도를 자제하여야 한다.

***하승수, "사법권력도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나온다"**

이해영 : 어떤 경우라도 완벽한 제도, 완전한 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주권자 스스로의 영원한 자기입법행위를 통해 민주정이 부단히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할 경우 언제든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다. 시민들 스스로가 주권적 자각을 통해 선출된 자를 통제하고, 법적 규범화 시켜나갈 때 진정한 공화국이 될 수 있다.

하승수 : 국민들 중에는 스스로 피통치자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많다. 특히 사법을 보는 관점은 더욱 그러하다. 즉 사법은 시험을 통해 선발된 사람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적극적으로 이러한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법권력 역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민들 스스로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대의정치의 정상화, 사법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국민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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