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쿠바, '땀내음 배인 자유'의 나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쿠바, '땀내음 배인 자유'의 나라"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21> 쿠바 아바나 (上)

공원 벤치의 밤이 깊어간다. 우리는 여전히 부까네로(Bucanero) 맥주를 마시고 있다.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에 허우대가 큰 멋쟁이 흑인 친구 하나가 우리를 보고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친구?(남미에 가면 모두가 그냥 '친구(Amigo 혹은 Amiga)'로 불린다.)" 호구조사를 대충 마치고 우린 이 친구에게 직업을 물었다.

"호텔에서 운전사로 일해요. 그리고 관광 가이드도 하지요."

"그래요. 차가 뭔데요?"

"라다요."

"네?"

"소련제 라다 말이예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가 만약 가이드를 구한다면 얼마 정도가 들까요?"

"가만있자... 차를 일단 빌려야 되는데, 하루에 50~60 쎄우쎄 정도 하지요. 그리고 가이드는 일당으로, 하루에 100 쎄우쎄 쯤은 쳐 주셔야 해요."

"우리 예산으론 엄두가 안 나네요. 우린 보다시피..."

"하하하 걱정마세요. 저도 바쁩니다. 지금 부활절 연휴 기간이라 앞뒤로 며칠간 일정이 잡혀 있어요."

그러더니 선뜻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아시겠지만, 쿠바(Cuba)는 가난하답니다. 저희가 받는 월급은 형편없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뛰는 것이죠. 가이드 일은 그냥 제가 하는 일이예요. 저 뿐만 아니라 일을 쉬는 날엔 다들 그렇게 다른 일들을 찾아서 하죠. 집에서 채소를 기른다거나, 낚시를 합니다. 물론 팔기도 하죠. 아니면 저처럼 관광객들을 상대로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돈을 꽤 만질 수 있거든요."

나는 그 친구가 신고 있는 항공모함만한 흰색 나이키 신발에 눈이 갔다. 분명 달러 상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했을 것이다.

내친김에 이 친구에게 우리가 까라까스에서 겪었던 이야기 몇 토막을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이 친구, 웃으며 왈, "그런 곳에 뭐 하러 갔대요?"

고수가 하수를 대하는 표정이나 말투가 딱 그러할 것이다. 쉽게 말하면 베네수엘라는 진정한 혁명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혁명을 선출한 것이 아닌, 비법적인 방법으로 혁명을 만들어 낸 쿠바 사람들이 가지는 특유의 사고방식일 것이다.

이 커다란 친구는 쿠바 혁명의 역사와 자신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의 액수를 동시에 자랑스러워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알 수 없다. 여하튼 이쯤 되면 '세대가 변했다'라는 말 이외에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문장도 드물 것이다.
▲ 비 오는 아바나 구시가지 거리. 식민지풍의 축축한 분위기 위로 또 비가 내렸다. ⓒ손문상

쿠바는 환상의 섬이다. 카리브 해의 햇살 눈부신 해변에서 아륀지 한조각이 꽂힌 오색의 칵테일을 즐기거나 말레꼰(malecon) 해안 도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남선녀들의 로맨스, 혹은 시가를 물고 고풍스러운 식민지 풍의 건물 숲을 거닐며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음악을 흥얼거리는 따위의 상상이 주는 엔돌핀의 향연 같은 것이 요즘 유행하는 '쿠바'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환상들도 있다. 현대(?) 낭만주의의 정점에 올라서 있는 쿠바 혁명과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카리브해의 멋스러운 경치를 즐기기 위해 쿠바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그 만큼의 사람들이 또, 혁명의 환상을 가지고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을 낭만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쿠바를 찾는다. 이도 저도 모두 '자위'의 의미다.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여행지를 훑고 마지막 목적지로 쿠바를 택한 것은 어찌 보면 속 보이는 이유 때문이 맞기도 하다. 우리 역시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니까.

하지만 남의 나라 혁명 유적지와 기념물 앞에서 지나친 감수성이 빚어내는 환상을 걷어내야 하는 것, 그걸 우리의 미션으로 삼자고 거듭 다짐하며 쿠바의 문을 두드렸다. 이 곳에서 자본주의의 대안 따위를 보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사회주의의 몰락 따위를 보려고 노력하지도 말 것. 그러니 전국의 레드바이러스 혐오증 환우회는 우리의 경험을 그냥 보고 즐길 것.
▲ 해가 질 무렵에도 사람들이 많지만, 해가 진 후에도 그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센뜨로 아바나 풍경. ⓒ손문상

쿠바의 첫 인상은,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맡았던 담배 향기, 그리고 출입국 심사대 앞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관광객들. 세상에, 역시 담배의 나라답다. 까라까스(Caracas)에서 잔뜩 긴장했던 마음들이 연기처럼 풀어지고 있는데, 검열관 한명이 우리를 불러 세운다. 내 가방에 노트북 두 대가 들어 있던 게 화근이었다. "노트북은 일인당 한대만 허용됩니다."

나는 노트북 두개 모두가 내 것이 아니며, 하나는 내 일행이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힘들게 싸놓은 25킬로그램짜리 배낭은 철저하게 농락당해야만 했다. 그렇다. 이곳은 전 세계를 '왕따'시키고 있는 쿠바라는 나라다.
▲ 비 오는 날, 아바나 구 시가지 거리. 식민지풍의 축축한 분위기 위로 또 비가 내렸다. ⓒ손문상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쿠바 역시 이중 화폐 경제다. '달러 경제' 그리고 '내셔널 페소 경제' 쿠바에서는 달러를 쓸 수 없다. 쎄우쎄(CUC, (Cuban Conertible Peso))라는 '전환페소'로 환전을 해야 하는데, 1달러에 1쎄우쎄로 고정되어 있다.

베네수엘라와 다른 점이라면 두 부문 모두 '공식적'이라는 것이다. 쿠바에서 환전할 수 있는 화폐의 종류는 '달러', '캐나다 달러', '유로' 그리고 '엔'화다.

문제는 환전 수수료가 9%라는 것. 더 문제는 미국 달러로 환전할 때는 환전 수수료 9%에다가 '위험 수수료' 10%가 더 붙는다는 사실.

알다시피 쿠바는 미국에 의해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으며, 쿠바 소유의 해외 자산이 동결되어 있는 상태. 따라서 '적성국'의 화폐를 쓰기 위해선 위험 수수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물론 수수료에 관한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환전소 앞에서, 1000 달러 중 190달러가 눈앞에서 공중분해되는 것을 확인하면 눈물이라도 찔끔 날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미국 달러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베네수엘라서서 겨우겨우 '미국 달러'만 바꿔 온 상태.

중간에 잠깐 경유지로 들른 파나마 시티에서 유로를 구해보려 했지만, 실패.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단 100달러만 바꾼다. 그 중 20달러는 쿠바 내셔널 페소로 환전. 무려 500페소. 그리고 80달러를 약 64 쎄우쎄로 바꿨다. 눈물이 났다. 유로 가져올걸.

64쎄우쎄 중에서 10 쎄우쎄로 전화카드 구매.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료는 일 분에 10쎄우쎄. 한국돈으로 1분에 약 12000원. 세상에...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쿠바에 가신다면 유로나 캐나다 달러를 가져가시길. 대략적인 물가 가늠을 해 보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달러 상점에 들어가면 보통 한 끼 식사가 약 2.5 세우세에서, 비싼 것은 15쎄우쎄 까지 한다. 참고로 노동자 한 달 월급이 내셔널 페소로 250에서 500페소, 그러니 달러 상점은 쿠바 국민들에게 언감생심.
▲ 과거 마피아들의 '서식지' 였던 호텔 나시오날(Hotel Nacional). 지금은 물론 국영이지만, 아직까지 '고급 호텔'로써의 명성은 그대로다. ⓒ손문상

그러니 여러 부작용들이 생긴다. 이를테면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데, 택시기사와 먼저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 "20쎄우쎄에 갑시다" 쯤의 대사를 날리면 흔쾌히 오케이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미터기를 켜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1분 전에야, 비로소 미터기를 켠다.(물론 미터기 있는 택시를 잡기란 로또에 당첨되고 난 후 벼락을 맞는 것 보다는 조금 더 확률이 많다. 대부분 흥정으로 택시비를 결정한다.) 미터기에 표시된 돈은 2쎄우쎄. 그렇다면 18쎄우쎄는 고스란히 택시 기사 주머니로 골인한다. 이걸 '횡령'이라 해야 할지, '탈세'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모든 택시는 국영이니까, 반역죄?

밤이 늦었고 숙소를 잡기란 요원해 보였다. 우리는 최후의 보루로, 베네수엘라 대사관 직원이 소개해준 한국 분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밤 12시가 넘은 상황. 다행히 전화를 받으셨다.
▲ 아바나 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호텔 밀집지, 미라마르의 거리.ⓒ손문상

쿠바에 들어와 있는 한국 코트라에서 일하는 직원분이다.

"일단, '미라마르'로 가셔서 택시기사 분에게 아는 까사 빠르띠꿀라르(Casa Particular) 로 데려다달라고 이야기해 보세요. 아마 택시기사님이 알려주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우린 택시를 잡아타고 그 말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미라마르요? 거긴 제가 아는 곳은 물론이고 까사 빠르띠꿀라르 자체가 별로 없어요. 전부 호텔이죠" 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큰맘 먹고 내지르기로 했다. 호텔로 갑시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엔, 그런데, 좀 싼 호텔로 갑시다. 라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여 말해야 했다. 샤또 미라마르라는 호텔 앞에 도착.

비싸겠지? 분명히 비쌀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때 프론트에 있는 직원이 반갑게 맞이해주며 우리에게 희소식을 들려준다. "부활절 연휴 기간이라 빈 방이 하나도 없답니다. 죄송해요."

소박하지만 화려한 호텔 내부의 인테리어에 잔뜩 움츠렸던 우리는 갑자기 당당해졌다. "아, 그래요? 이런, 우린 이 호텔에 꼭 묵고 싶었다고요."

그러자 더 미안해하면서 다른 호텔에서도 방을 찾기란 힘들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낭패군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방 값이 적혀있는 안내판을 힐끗 쳐다보았다. '도블레(Doble, 침대 두개짜리 2인실)'가 하룻밤에 120쎄우쎄... 방이 없어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은 것은 왜일까?

그리고 찾아온 전화위복. 프론트의 직원이 근처에 까사 빠르띠꿀라르를 알고 있는 벨보이 한 분을(벨보이지만 50이 훌쩍 넘어보였다.) 호출했다.

벨보이 아저씨는 근처에 친구가 하는 곳이 있다며, 우리에게 희망의 말을 던졌다. 가격은 두 명에 35쎄우쎄. 우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벨보이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과연 호텔 근처에 멋진 민박집이 있었다. 벨보이 아저씨는 핸드폰으로 주인을 호출했다. 그렇다 쿠바 사람들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통화료는 싸지만 사용할 수 있는 통화량은 한정되어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정액 요금제 쯤 될 것이다.
▲ 아바나 시내의 일상. 권태와 정렬이 공존한다. ⓒ손문상

내친김에 벨보이 아저씨에게 맥주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여기에서 약 3분 거리에 24시간 편의점이 있어요. 맥주는 물론이고, 치킨 너겟이나 프렌치 프라이도 판답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도중에 졸음 가득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나와 빈 방을 안내해주었다. 짐을 풀고 직접 편의점을 안내해 주겠다는 벨보이 아저씨를 따라 나섰다.

"사례를 하고 싶은데... 내일 저녁쯤에 식사라도... 저희가 호텔로 찾아 뵙겠습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하며 "아, 그냥 맥주나 한 캔 사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일은 쉬는 날이랍니다"라고 한다.

"평일인데요?"

"네, 일 주일에 3일 호텔에서 일을 하지요. 쉬는 날엔 밭일을 한답니다."

그렇다. 쿠바의 식량 자급률이 현저하게 높아진 것도, 이런 농업 생산 조합의 조직을 통해 생산방식을 개선하고, 유기농법을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자율화'를 담보해낸 것이다. 물론 이들은 개선이라는 말 대신 '혁명' 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지만.

벨보이 아저씨는 오르가노뽀니꼬(El Organoponico, 도시유기농업)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1990년대 쿠바 식량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장려된 농업 방식이다. 실제로 우리가 묵었던 숙소 주변에는 크고 작은 밭이 종종 보였는데, 이런 식으로 도시민은 자급자족을 한다. 오르가노뽀니꼬의 장점은 운송비가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식량을 구하기 힘든 도시민이 유통비를 뺀 가격으로 미국 등지에서 수입해오는 식량보다 훨씬 싼 가격에 구입하거나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도시 한 복판에 작은 농장들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멋진 일이다.

"우린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군요." 그렇다. 여기는 여전히 그 공원이다. 벨보이 아저씨와 헤어진 후, 항공모함만한 나이키를 신은 산도적같은 젊은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맥주 몇 캔인가를 비우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저흰 가봐야겠어요."

"그러세요. 참, 잠깐만요."

그러더니 이 친구, 갑자기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한다. "혹시, 여자 필요하세요?" 이런 말에 굳이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라고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습적인 질문에 당황했지만,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필요 없습니다, 라고 거절했다. 이 친구, 이제 보니 직업이 세 개나 된다.
▲ 비 오는 날, 인력거꾼은 활기를 띠고 거리는 활기를 잃는다. ⓒ손문상

▲ 비 오는 아바나 구시가지 거리. ⓒ손문상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24시간 편의점의 직원이 바뀌어 있다. 근처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라는 간판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식점이 있었지만, 패스. 그 근처에 또 허름한 부스가 하나 있었는데, 메뉴를 보아하니 샌드위치, 주스 등이다. 무엇보다도 뒤에 붙은 단위가 쎄우쎄가 아니라 나시오날 뻬소(Peso Nacional)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곳의 문화에 적응해 볼 요량으로 국영 상점에서 샌드위치 두개를 샀다. 하나에 10뻬소 짜리다. 물론 뻬소 나시오날. 주스 한 잔에 1뻬소, 그리고 신 필떼르(Sin Filter, 필터 없는), 뽀뿔라르 담배(Popular, 즉 우리말로 하면 '인민 담배' 쯤 되는) 한 갑에 6뻬소, 시가 한 개비에 2뻬소였다.

국영 상점 직원이 저울을 꺼내들었다. 샌드위치 달랬더니 웬 저울? 그리고선 커다란 유리병에서 얇게 잘라 놓은 햄을 몇 조각 꺼내 저울에 달았다. 그렇다. 모든 것은 평등해야 한다.

이 독특한 광경이 우리에겐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직원에겐 진지한 일이다. 우린 똑같은 양의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씹었다. 왠지 환전소에서 교환한 500 뻬소 나시오날이 유용하게 쓰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중국제 신형 버스 '유퉁' 안에서. 버스비는 3 나시오날 뻬소다. 이 신형 버스가 공급되면서 아바나의 명물이라던 300인승 짜리 '낙타 버스'는 자취를 감춘 것 같았다. ⓒ손문상

아바나 시내로 나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3뻬소 나시오날. 체 게바라 얼굴이 새겨진 지폐 두 장을 넣고 버스에 올라타니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뭐 한두 번도 아니고 해서 그냥 무시했다.

버스는 중국제인데, 디자인이 상당히 세련되었다. 미국인들이 자주하는 말 중에 '쿠바에 가면 50년대 미국제 자동차나, 소련제 라다 따위밖에 없다'는 것이지만, 요즘엔 모던한 자동차도 많이 눈에 띤다.

유통(Yu Tong)이라는 이름의 이 중국제 버스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미국이 경제봉쇄에 나서면 끝장이다, 라는 사고방식은 이제 옛말이다.

미국을 견제하는 세계의 공장 중국은 생필품을 제공하고, 쿠바를 동경하는 이웃나라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퍼준다. 미국의 적군 수와 쿠바의 아군 수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정비례 관계다.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에 타시기에 자리를 비켜주었더니 내 팔뚝을 치면서 큰 소리로 껄걸 웃으신다. 그렇다. 모든 것은 평등해야 한다. 노선표를 유심히 확인한 덕에 안또니오 마세오(Antonio Maceo) 광장에 내릴 수 있었다.
▲ 쿠바는 ITF가 아니라 WTF로 대표되는 '북한식 태권도'를 수입했다. 사실 그런 것은 태권도를 하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스포츠를 하는 이들에게만 중요할 뿐이다. 아바나 시내에서 만난 하얀 도복은 매우 반가웠다. ⓒ손문상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데, 웬 여자 두 명이 우리에게 접근해 말을 건다. 이 여자들은 우리의 호구조사를 마친 후에, "지금 저희 클럽에서 살사 파티를 하고 있어요. 생각 있으세요? 아바나에 왔으면 살사를 즐겨야죠"라고 말을 한다.

소위 '삐끼' 아가씨들이다. 클럽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살사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태양이 너무 눈부시게 밝았고, 점심시간도 지나기 전이라 패스.
▲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사람들이 작은 포대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이 자주 보인다. 대부분은 먹을 것이지만, 가끔 먹을 것으로 위장한 후 기념품이나 과자 따위를 파는 '상인'들일 수도 있다. ⓒ손문상

이번엔 웬 남자가 말을 건다.

"이봐요, 쿠바 여자랑 하룻밤 어때요?"

그냥 웃고 지나친다. 경비원 제복을 입은 친구 하나가 또 접근을 했다. "최고급 꼬이바(Cohiba) 시가 한 통에 얼마인지 아시죠? 그 가격의 1/4에 내 한통 드리리다."

이 제안에서는 잠시 망설였다. 시가를 사겠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구경해보기로 한다. 경비원 제복을 입은 남자는 자신이 경비하는 건물 안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 곳에 두어 명의 남자가 더 있었고, 관처럼 생긴 커다란 나무 상자를 열어 우리에게 시가를 보여주었다. "어때요, 죽이죠? 진품이예요. 저 친구가 시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귀여운 횡령이다. 우리는 시가에 대해 잘 모르므로 그냥 아침에 산 2뻬소 짜리 시가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다. 이건 평등을 깨는 행위.
▲ 미라마르 해변 풍경. 뒤로 보이는 멋진 호텔들은 이 아이들에게 전혀 다른 세상이지만 뛰어노는 아이들의 표정 속에서 그런 아이러니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손문상

▲ 미라마르 해변 풍경. 그 뒤로 호텔 샤또 미라마르가 보인다. ⓒ손문상

우여곡절 끝에 해변으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말레꼰(Malecon) 방파제 도로는 누구라도 거닐고 싶을 만큼 낭만적인 분위기를 뽑아낸다. 연인들은 행복해 보였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낚시를 하거나 노닥거렸다.

그 사이로 관광객으로 위장한 상인들이 간식 따위를 숨겨서 은밀히 팔고 다닌다. 화려한 옷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중년 여성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핸드백에서 설탕 과자를 꺼내서 파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간혹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정해진 장소는 없다. 그냥 그 자리에서 하면 그만이다. 질서 속에 묘한 무질서가 공존해 있다. 쿠바에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이라면, 미국이 두려워하는 '공산주의자' 피델 카스뜨로가 '통치' 하는 '무시무시한 나라'란 사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 젊은이들은 다이빙 할 수 있는 곳만 있다면 어김없이 건강한 근육을 자랑하며 모여든다. 아바나 시내, 쿠바 독립 영웅을 기리는 막시모 고메스(Maximo Gomez) 광장 앞에 있는 말레꼰 해안 도로에서. ⓒ손문상

▲ 먼 곳에서부터 도움닫기를 하고 점프. ⓒ손문상

천국은 정치적이다. 존재하는 불행들의 반대말이 천국이다. 과거 천국에서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거나, 게으름을 마음껏 피울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하지만, 요즘 천국은 페라리를 소유하고 시속 100킬로미터에서 인터넷으로 HD급 화질의 '미드'를 실컷 즐기며 슈퍼모델 급의 그, 혹은 그녀가 애타게 기다리는 플로리다의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향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지옥이란, 짓지도 않은 원죄 때문에 유황불 속으로 다이빙하는 것이 아니라 휴지조각이 되어 쌓인 유가증권 속에서 헤엄치는 일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가치판단으로 쿠바와 미국을 비교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란 없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거나 권태를 못 이겨 자살하는 것을 저울에 올리면 눈금은 가운데를 가리킬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 그 사회만의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부작용은 동등하다.
▲ 미라마르는 해변이다. 풍화작용으로 뾰족해진 석회암으로 이뤄진 해변에서 '맨발로 거니는 모래사장'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 곳에서 맨발로 돌아다녔다가는 발바닥이 성하지 못할 것이다. ⓒ손문상

▲ 미라마르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손문상

▲ 미라마르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의 즐거운 한때. ⓒ손문상

▲ 미라마르 해변 풍경. ⓒ손문상

이런 예를 들어보자. 우린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쿠바 시내를 구경하고 싶어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유명한 '내무부 건물'이 있는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on)'으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에 섰다.

쿠바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택시를 타거나 인력으로 움직이는 '자전거 택시'를 타거나.

우리는 '자전거 택시'를 잡았다. 인력거꾼은 한국에 관한 엉터리 정보를 입으로 쏟아내며 살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혁명광장으로 가자는 말에 체중을 실어 페달을 밟았다.

이 아저씨, 1분 정도 지나니 땀으로 목욕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왠지 미안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해서 인력거를 타지 않을 순 없다. 인력거꾼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고 우린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점점 더 미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혁명광장에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인력거를 구르는 페달이 멈추었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본다. 얼굴에 유전이 터졌다. 쉴 새 없이 땀을 뿜어내는 이마를 훔치더니 우리에게 혁명광장 가는 길을 '친절하게도' 자세히 알려준다. "에?"

"여기서부터는 오르막길이라 제가 갈 수 없답니다."

우린 할 말을 잃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저 쪽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혁명광장이예요."

숨이 턱까지 차오른 아저씨는 말을 똑바로 잇지 못한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먼 곳에 혁명광장이... 보일 리가 없잖아! 하지만 우리는 기사 아저씨의 '친절'에 감사해 하며 팁으로 3쎄우쎄를 더 드려야 했다.

자전거 택시

장점 : 자동차 택시(흥정에 따라 값이 다르지만 대략 6쎄우쎄 쯤 한다.)에 비해 요금이 싸다. 약 3쎄우쎄.
단점 : 눈 앞에서 땀을 비오듯 쏟고 있는 모습을 보면 팁을 주지 않을 배짱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요금은 같아진다. 게다가 오르막길은 갈 수 없다.


▲ 인력거는 쿠바의 은유다. 석유 냄새 대신 땀 냄새를 풍기며, 느리지만 힘차게 페달을 구르는 다리에는 역동적인 힘줄이 튀어나온다. ⓒ손문상

세련된 비유는 아니지만, '인력거' 같은 게 바로 쿠바 사회다. 목적지로 가는 방법이 무식하리만치 힘겨워 보이고, 때로 오르막길을 만나면 내려서 걸어야 하며, 안락함과 속도를 포기해야 하지만, 역동적인 '운짱' 아저씨의 힘줄을 보며, 휘발유 타는 냄새 대신 땀 내음을 느낄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을 얼굴에 맞을 수 있는 인력거는 나름의 인간적인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내겐 호화로운 '페라리의 천국'보다 인력거꾼이 꿈꿀 '게으름'의 천국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닿을 수 없는 목표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말이 가능한 사회다. 누구나 미친 듯이 "부자 되시라"고 말하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받아치고 싶다. "당신들은 부자가 될 의무가 없답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 물에 들어간 남자친구를 바라보면서 나른한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여인. 그녀가 누워있는 자리 옆에는 높은 담장 이 있고, 그 안의 호텔수영장에서 백인 관광객들이 수영을 한다. ⓒ손문상

▲ 바닷가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던 할아버지. 한번 문 담배는 다 타들어갈 때까지 입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손문상

▲ 미라마르 해변 풍경. 부활절 연휴 기간인 지금, 사람들은 가족 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풍을 간다. ⓒ손문상

한참을 걸어 혁명광장에 도착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내무부 건물 앞에서 중국인 관광객들, 혹은 유학생들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다. 쿠바 독립영웅 호세 마르띠(Jose Marti) 동상의 그늘 아래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다. 광장 한 편에는 '혁명 49주년' 이라는 구호가 붙어있다. 그렇다. 내년 2009년은 혁명 50주년이 되는 해다.
▲ 'Forjador de Victorias, 승리의 대장장이' 혁명 광장 가는 길. ⓒ손문상

▲ 혁명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말과 마부. 멀리 혁명 49주년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손문상

▲ 호세 마르띠 기념탑. ⓒ손문상

▲ 그 '유명한' 쿠바 내무부 건물과 외벽에 달려 있는 조형물 ⓒ손문상

▲ 이 곳은 쿠바에 온 관광객들 100 중의 99명이 찾는 기념사진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손문상

날이 어두워졌지만, 우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바나 시내를 쏘다녔다. 쏘다니면 당연히 배가 고프기 마련.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여성 두 명이 우리에게 접근한다. 원단이 심각하게 부족한 듯, 처량하리만치 짧은 치마를 입은(두꺼운 허리띠라 해도 무방할지어다.) 그녀들이 우리에게 던진 말, "맥주 한 잔 사 주세요." 우리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식당에 들어갔다.
▲ 아바나 시내의 일상. ⓒ손문상

이번엔 다른 여성 두 분이 접근해 짧은 영어로 몇 마디인가를 주억거린다. "이야기나 좀 나눌까요?"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바나에 도착한 밤에 만난 쓰리잡스 청년과, 오늘 낮에 거리에서 만난 호객꾼이 생각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예쁜 여성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 때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좋아요. 맥주 한 잔 사죠."

여성들은 재빠르게 자리에 앉아 수입 맥주를 두 병 주문했다.

"담배도 피우고 싶어요. 하나 사 주시면 안 되나요?"

"네, 사드리죠."

나는 카운터에 가서 '몬떼레이(Monterey)'라는 필터 없는 담배를 사왔는데, 이 아가씨들 표정이 굳어진다.

"전 필터 있는 '럭키스트라이크'가 좋아요."

"그냥 이거 피우세요."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마지못해 몬떼레이를 집어든다.

"그런데, 직업이 뭡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여성이 답했다.

"저요? 저는 미용사구요, 이 쪽 친구는 아이들을 가르쳐요."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 평화와 남북 간의 정치상황, 미국의 경제봉쇄와 쿠바의 관광 산업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믿거나 말거나.

맥주를 한 병씩 비운 우린 이 식당은 오래 머물 곳이 못될 것 같다는 데 합의하고,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아가씨들은 재빠르게 '바이바이' 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며 점원에게 물었다. "저 아가씨들은 누구죠?"

점원은 어깨를 으쓱 하면서 대답한다. "누가 알겠어요?"

야심한 밤에 이마에 '관광객'이라고 써 붙은 사람들에게 접근, 맥주를 사달라고 하는 짧은 치마의 미용사, 그리고 유치원 교사 아가씨들의 정체란 무엇일까? 이 아가씨들이 우리에게 접근한 진짜 의도는 물론 상상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쿠바는 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아직 정체 모를 것이다.
▲ 말레꼰 해변에 석양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매일 이 곳 모로 요새에 북적인다. 관광객도, 시민들도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인 카리브의 석양을 눈에 담아간다. ⓒ손문상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