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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더 참고 촛불의 물결을 보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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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더 참고 촛불의 물결을 보았더라면…"

소녀들의 눈물 속에 하늘로 떠난 故 이병렬 씨

말 그대로 생면부지의 남이었다. 스쳐가듯 마주친 적도 없을 듯 싶었다. 사는 곳도, 세대도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같은 하늘 아래서도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았을 테다.

그런데 소녀들은 울고 있었다. 그래도 '죽음'에 조금은 더 익숙한 어른들과 달리 내내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혔을,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의 고통을 애써 짐작해보려는 표정이었다. 수십만의 촛불이 40일이 넘도록 매일같이 서울 도심에서 타올랐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은" 그 한 사람이 더욱 원망스러워 흐르는 눈물이었다.
▲말 그대로 생면부지의 남이었다. 그런데 소녀들은 울고 있었다. ⓒ프레시안

그리고 "이제는 우리를 믿고 편히 눈을 감으시라"는 당부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맴돌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고(故) 이병렬 씨의 영결식이 열린 14일 오전 서울시청 앞 광장의 풍경이었다. 이병렬 씨를 보내기 위해 모인 1000여 명의 사람들은 한 마음이었다.

"새 날이 왔음을 웃는 얼굴로 님의 영전에 고하는 날까지 뜨거운 촛불로 살겠습니다. 우리의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촛불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5일 전주에서 분신한 이 씨의 장례는 '광우병 위협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가 주관하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에 앞서 장례 행렬은 이날 오전 9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식을 마친 뒤 종묘와 광화문을 지나 시청 앞까지 행진했다.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광장으로 들고 나온 촛불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더 많은 촛불이 모이지 못하는 것을 내내 안타까워했다는 그였다. 그는 끝내 40만 명의 인파가 서울을 뒤덮은 지난 6월 10일을 하루 앞둔 9일 운명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 5명의 장례위원장이 공동으로 발표한 조사에서 이들은 그 점을 안타까워했다.
▲ 고등학교 1학년 고다현 양은 추모사를 통해 "우리는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정부와 다르기 때문에 이병렬 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말했다.ⓒ프레시안

장례위원장들은 "며칠만 더 참았어도 서울광장, 광화문, 종로, 청계천, 서대문, 부산, 광주, 대구, 해남, 철원에서 촛불을 든 수많은 민중들의 물결과 꿈과 희망을 보았을 것"이라며 "그랬더라면 죽음을 포기했을 것인데"라고 토로했다.

이 씨가 생전에 열심히 활동했다는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 연대' 회원들도 이날 추모 글을 통해 "거친 생존의 들판으로 내몰린 분노한 민심에 켜진 뜨거운 촛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가족과 일신의 행복보다는 대의를 위해 한 몸을 아낌없이 바치신 이병렬 님의 높은 뜻을 기리며, 소리 없이 들불처럼 파도처럼 아름답게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님을 잃은 슬픔에 가슴은 무너지지만 지금은 울지 않겠다"며 촛불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정부와 다릅니다"

눈물을 흘리던 중·고등학생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고다현 양은 추모사를 통해 "우리는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정부와 다르기 때문에 이병렬 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고 양은 "이병렬 님이 태안에서 목숨을 끊은 우리의 어부님들처럼 잊혀지길 바라지 않는다"며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병렬 님의 죽음을 아파하고 슬퍼하며 끝까지 촛불을 들고 싸우자며, 지쳐도 하나 둘씩 모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촛불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맞겨두고, 믿고 편히 쉬시라는 당부였다.

영결식을 마친 장례 행렬은 그가 분신한 전라북도 전주 코아백화점 앞으로 향했다. 전주에서 노제에 이어 이날 저녁 전라남도 광주에서 다시 한 번 노제를 마친 뒤 이 씨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히게 된다.
▲ "죄송합니다. 저희가 여기에 남아 못다한 꿈 이루겠습니다." ⓒ프레시안

작은형 이용기 씨 "다시는 무고한 희생 없도록 정부도 시민의 뜻 받아들이길"

장례식에 참석한 이 씨의 작은형 이용기 씨는 '눈 감고 귀 막은' 정부를 향해 "동생과 시민들의 뜻을 받아들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용기 씨는 인사말을 통해 "모든 일이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며 "광우병 쇠고기 수입도, 동생의 죽음도 모두 되돌리고만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 뜨거운 불속에서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뜻을 외쳤던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 속 깊은 곳에 큰 못이 박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며 "다시는 무고한 생명이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도 노력하고 조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장례식에 참석한 이 씨의 작은형 이용기 씨는 '눈 감고 귀 막은' 정부를 향해 "동생과 시민들의 뜻을 받아들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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