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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예방인가, 사후약방문인가?

[밥&돈] 광우병의 경제학

아이들이 밝힌 촛불이 점점이 일렁인다.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중년 사내의 시야가 이내 흐려지면서 촛불은 파스텔톤의 들불로 부옇게 번져간다. 이 촛불을 어떻게든 꺼버리려는 자들이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을 들먹이고 있다. 정부의 말을 듣고 있자면 금과옥조의 명확한 지침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가? 천만에. 광우병에 대처하는 나라들의 자세는 사뭇 달랐고 그 결과 역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인다. 영국, 일본, 미국이 광우병에 대처한 방식부터 살펴보자.

영국과 일본

여기 영국이 있다. 불행하게도 1985년 최초의 광우병이, 그리고 1996년 결국 인간 광우병이 확인된 나라다. 모든 것이 최초였으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정당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6번 이상의 기회를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88년에 구성된 연구팀은 스크래피(양의 광우병)가 200년간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은 것처럼 광우병도 '종간(種間)장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90년 5월 고양이가 전염됐지만 이 낙관은 여전히 유지됐다.

소 등 반추동물에서 나온 육골분(MBM)사료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돼지와 닭의 사료로도 쓰지 못하게 금지하는 조치(즉 교차감염의 예방)는 90년에야 취했고, 89년 소의 특정 부산물(Special Bovine Offal)을 사람이 먹지 못하도록 했지만 강제금지는 아니었다. 또한 기계로 뼈에 붙은 찌꺼기 고기를 뜯어내는 MRM(mechanically recovered meat, 후에 AMR (advanced machine recovery)로 발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89년에 알고서도 95년에야 금지했다. 백신 등 약이나 수술도구에 의해서도 감염이 될 수 있고, 광우병 위험물질(SRM)에서 추출한 화장품에 대한 조치도 너무 늦었다.

이 모두가 당시에는 '과학적 증거'가 없는 '괴담'이었고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10년간 들었던 국민의 불신과 공포는 하늘을 찔렀다. 당연히 팔리지 않는 소를 기르는 것은 온전히 손실이니 집단으로 소를 도살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학자들은 광우병에서 비롯된 경제적 손실이 무려 65조 원에 이른다고 추정했고 직접적으로 광우병 대책에 들어간 돈만 11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무엇보다도 160여 명의 목숨은 또 어찌하랴. '정부괴담'과 사후약방문의 대가는 이렇게 혹독했다.

또 하나의 섬나라 일본이 있다. 2001년 일본은 OIE의 위험평가등급을 받기 위해 표본 300마리를 조사했는데 아뿔싸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영국에 정확한 판정을 의뢰하는 동안, 폐기했어야 할 광우병 소는 육골분 사료로 변해서 시중에 유통됐다. 국민의 불신이 치솟았고 그 해 9월까지 무려 40-50%의 쇠고기 소비가 감소했다.

다행히 일본 정부는 신속하게 대처했다. MBM 판매 금지나 SRM 제거는 물론, 현 시점에서 평가해도 가장 철저한 조치를 취했다. 매년 13만 마리의 건강한 소를 포함, 도축되는 소를 모두 BSE 검사하고 그 결과(지금까지 34마리 감염)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또한 전면적인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도입했다. 종합적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식품안전청을 신설하고 식품안전기본법을 제정하는 제도적 정비도 늦추지 않았다.

첫해에 265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등 지금까지 총 1조 3000억 원 가량을 쏟아 부었지만 일본국민들은 이제 자국의 쇠고기를 믿으며 미국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경험을 내세워 엄격한 위생검역조건을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정보 공개와 사전예방정책의 위력이다.

미국에 광우병 소가 없다고?
▲ 광우병이 발견돼 폐쇄된 미국 워싱턴주의 한 농장. ⓒ연합뉴스

미국은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세계에서 가장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89년 영국 소와 사료(MBM) 수입을 금지했고, 91년에는 영국 쇠고기 수입을 막았다. 외부로부터 광우병 인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당연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영국이 차례로 취한 3단계 사료 조치 중 1단계만 시행하고 있으며(소의 혈액을 송아지에게 먹이고 있으니 이마저도 철저하지 못하다) 등뼈에 대한 AMR은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목장에서 죽은 동물의 도축도 막지 않으며 도축소의 0.05%-0.1%만 검사하는 데 불과하고 이력추적시스템은 도입되지 않았다.

미국의 자랑은 2003년 12월 캐나다에서 도입된 소를 빼고는 광우병 소가 발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일본과 유럽에서는 30만 마리에서 50만 마리당 한 마리 꼴로 광우병소를 발견한다는 점에 비춰 보면 과연 이 주장을 믿을만할까?

폭스와 피터슨(Fox and Peterson)은 유럽 수준으로 미국에서도 '고위험 소'를 검사한다면 99.999%의 확률로 광우병 양성 소를 찾아낼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재 광우병 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과 광우병 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과 정보수집, 처리 능력을 가진 미국이 이렇게 미온적인 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미국 축산자본의 힘과 로비 때문이다. 2004년에 수립된 미국 정부의 추가대책은 7개 대기업으로 이뤄진 강력한 축산업자들의 로비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과학적 근거'가 없이 비합리적인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불필요하고 값비싼 검사를 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지속적인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축산업의 몰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우병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는 미 하원 코커스에서 일본식 전수검사를 지지했다. "은폐는 좋은 방책이 아니다."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것은 태양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이 그랬듯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미국의 광우병 예산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2001년 40억 원에서 2003년 210억 원으로, 그리고 2005년 600억 원으로 불어나고 있는 것은 사후 약방문식의 정책이 앞으로 초래할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
▲한국은 광우병 대책에 있어서 일본과 EU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영국과 미국을 따를 것인가? 저 안타까운 소녀들의 촛불을 꺼뜨려서는 안된다. ⓒ프레시안

한국은 어떤가? 한국 역시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을 따라, 즉 미국 수준의 조치만 취하고 있다. 극히 미미한 조사만 하고 있으니 광우병 소도 발견되지 않았다. 역시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사후약방문'을 지을 요량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축산기업에게 한국이 아주 중요한 나라라는 데 있다. 미국 축산업의 이윤마진은 2% 수준이다. 즉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살코기만으로는 거의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각 국민의 식생활 차이는 이들 기업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의 애널리스트 시베링하우스는 흥미로운 자료를 제시한다. 미국에서는 거의 소비 되지 않지만 일본, 한국 등 아시아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창자, 혀, 목둘레살 등 소의 부산물 10개를 수출한다면 한 마리당 100달러 남짓, 즉 10만 원 정도를 추가로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500킬로그램짜리 소 한 마리가 100만 원에서 120만 원을 호가하고 있으니 이것은 엄청난 이익이 된다. 미국이 한미 FTA 착수, 타결, 그리고 의회 비준 등 단계마다 전제조건으로 쇠고기의 추가개방을 요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광우병 대책 수준도 미국 이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수입 쇠고기에 허용하는 SRM을 국산 쇠고기에만 적용할 리 없다. '과학적 증거와 국제적 기준'의 실체는 미국 축산업계의 요구 사항인 것이다. 꿩처럼 땅에 머리를 박는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심하라"며 국민이 낸 세금으로 미국 쇠고기 광고를 할 때인가? 세계의 사례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해서 철저한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더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현재의 협상을 중단하고, 한미 FTA가 문제라면 비준을 뒤로 미루고 일본 수준의 광우병 대책을 수립하고 신속하게 집행하는 일이다. 일본과 캐나다의 사례를 참조해서 주먹구구로 따져 보면 한국에서는 5년간 약 5000억 원에서 6000억 원을 투입하면 일본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한우 등 국내 소의 고급화로 수입개방의 파고를 헤쳐 나가자고 호소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의 화우를 예로 들기도 했다. 정말 그게 방향이라면 바로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앞으로 쇠고기 시장은 '값싸고 질 좋은'가 뿐 아니라, 특히 안전성에 의해 고급과 중급, 그리고 저급으로 나뉘어지게 될 것이다. 정말 고급 시장을 확보하려면 우리 소부터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장차 세계인들의 믿음을 사야 할 것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동시에 경제적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문제는 간단하다. 사전예방원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후약방문을 따를 것인가? 일본과 EU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영국과 미국을 따를 것인가? 여기에 우리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 저 안타까운 소녀들의 촛불을 기어코 꺼뜨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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