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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매맞는 아내가 있다"

[프레시안-여성재단 공동캠페인] "일상적인 그러나 너무도 치명적인 여성폭력"

프레시안과 한국여성재단이 5월 한 달 동안 공동으로 펼치는 여성 희망 캠페인 "나눔에서 돌봄으로"는 '여성의 빈곤화 문제'와 '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문제"를 다룬다. '빈곤'과 '폭력'은 다수의 한국 여성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다.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일상적인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동들도 이러한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캠페인의 세 번째 기고자인 정춘숙 서울여성의전화 회장은 여전히 아내폭력이 한국 사회에서 '남의 집안일'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 필자는 우선적으로 여성을 가정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관련 법안의 집행이 좀 더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며 나아가서는 가부장적 구조와 인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편집자>

모든 단체들이 바쁘겠지만 요즘 서울여성의전화 사무실은 포스터와 티켓박스로 창고를 방불케 한다. 여기 저기 후원티켓을 파는 탓에 보험회사가 옮겨 왔는가 싶을 정도다. 5월 23일부터 4일간 진행되는 제3회 여성인권영화제가 코앞으로 다가 왔기 때문이다.

상담과 인권지원, 회원조직, 지역사업 등 수많은 일상 사업을 해내가며 인력충원 없이 한 단체가 영화제를 주최한다는 건 정말 힘겨운 일이다. 그럼에도 서울여성의전화가 여성인권영화제를 계속 이끌어가는 것은 우리사회가 아내폭력의 문제에 너무도 무관심하고 무신경하기 때문이다.

아내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이어서 웬만해서는 여론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한다. 최근 여성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발생 빈도는 50.4%로 두 가구 중 한 가구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한다. 그 중 가정폭력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전체 가정폭력의 80%가 아내에 대한 학대다.
▲ ⓒ서울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주최한 토론회 '가정폭력 피해 지원 시스템의 문제와 과제' 관련 자료에 따르면, 1990-2002년 한국에서 살해당한 여성의 46.4%가 자신의 남성파트너로부터 살해됐다. 21.2%는 배우자에 의해 나머지 25.2%는 내연이나 동거관계에 의한 것이다. 이 중, 과거부터 지속적인 폭행·학대가 있었던 경우가 배우자 관계의 경우 72.7%, 내연·동거관계인 경우 53.6%였다. 이런 통계자료는 아내폭력이 단순히 사소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내폭력의 문제를 여전히 집안일 정도로 치부하는 데 그친다.

아내(가정)폭력에 대한 우리사회의 직접적 개입이 시작된 것은 1998년 가정폭력 관련법들이 시행되면서부터였다. 올해는 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나는 가정폭력 관련법 제정 운동의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최근의 법집행을 보면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가정폭력 사건으로 구속되는 경우는 '가뭄에 콩나듯'하고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가정보호 사건으로 처리되면서 경미한 처벌에 머무르고 있다. 얼마 전 만났던 한 내담자는 30년이 넘게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커터 칼로 얼굴을 긁혀 피가 낭자했고, 죽이겠다는 협박에 시달렸다. 그녀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집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이미 몇 차례 경찰에 신고해 보았지만 미온적인 경찰의 태도와 그 후 더 심각해진 폭력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폭력이 부부 간이 아닌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했다면 과연 어떤 처분이 있었을까?

아내폭력 피해자들이 법에 의지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법이 법대로 집행되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아내(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정말이지 마지막 희망이 된다. 더 이상 내가 나의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절망감이 아내(가정)폭력 피해자를 가해자로 내몬다. 법무부가 2004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4년 1월을 기준으로 청주여자교도소의 전체 수형자 531명중 가장 많은 경우인 133명(30.5%)이 남편을 살해했고, 이 여성들의 80%가 남편의 지속적이고 잔인한 폭력에 시달려 왔다. 아내폭력은 이렇게 한 인간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하는 잔혹한 범죄행위다.

그나마 법이 만들어진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1366 여성위기 전화와 전국의 300여 개의 상담소 그리고 59개소의 보호시설이 아내폭력 피해여성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소나 보호시설을 통해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소송 등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초·중·고등학교에 가정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되고 가정폭력 피해 자녀들은 주소지 이전 없이 입학, 전학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피해자 상담, 시설보호, 부분적인 자활지원은 충분치 않다.

아내폭력은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남성이 여성을 힘으로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사회의 성역할 및 성별관계 자체가 재구조화되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아내(가정)폭력 문제의 해결은 가부장제의 해체와 여성의 자립, 평등한 인간관계를 지원하는 시스템 및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인식의 확산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사건 발생초기부터 폭력 피해자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고,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눈물짓는 아이들이 모습이 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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