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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스꼬는 팔리지 않는다"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16>] 꾸스꼬

여행은 어느새 중반을 넘어섰다. 7000킬로미터를 달려 와 페루의 중심부에 와 있는 것이다. 꾸스꼬(Cusco)는 하늘을 나는 섬이다. 그곳에서의 삶은 지상의 그것들과 달라보였다.

내가 느낀 바, 분명히 말하지만 꾸스꼬는 '잉까의 심장'입네 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마약과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는 멋쟁이 히피 그링고들(Gringo, 남미 사람들이 미국인들을 약간 경멸조로 일컫는 말.), 짐짓 진지한 표정의 유럽 젊은이들, 그리고 커다란 배낭을 지고 가는 노부부들과 즐거운 표정의 각종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잉까의 수도는 관광과 낭만, 그리고 추억의 도시가 되었다. 잉까의 심장 따위를 느끼고 싶거든 '따라따(Tarata)' 등지의 시골 마을들을 가보라. 꾸스꼬는 거짓말 조금 섞는다면,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절반이 외국인인 도시다.

고대 잉까의 수도라는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공간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지상의 삶과 유리된 듯 보이는 꾸스꼬에서의 무국적 삶은 그 나름의 멋이 있다.

구석구석에 예쁜 악세사리와 옷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세계 각국의 요리들부터,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 그리고 도떼기 시장의 먹거리 장터가 공존하고, 화랑, 박물관 천지에 거리에는 잉카마사지 호객꾼들과 코카인 상인들이 우글댄다. 특별히 마약에 관대한 도시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큰 도시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상인들일 게다.
▲ 거리엔 관광객들을 상대로 조악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지천이었다. 꾸스꼬 거리의 잡상인 아이. ⓒ손문상

버스 터미널에 내린 우리는 티코 택시를 잡아타고 일단 아르마스 광장 쪽으로 향했다. 성수기가 막 지난 때라지만, 방 값은 아직 비싼 편이었고, 우리는 한 시간여를 헤매었다. 그 때 한 아주머니가 우리의 행색을 보더니 '방 찾고 있수? 하루에 일인당 15솔(우리 돈 약 4500원) 어때? 여기서 가까워'라고 속사포처럼 말했다. 15솔이라.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어서 일단 아주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가깝긴 했다. 다만 경사가 10도 정도 되는 것 빼곤. 우리가 방을 둘러번 후 고산병 핑계로 '올라오기 힘들다'는 둥 불만 섞인 이야기를 하며 배짱을 부리자, 방 값은 금세 30% 씩이나 할인되었다. '좋아, 일인당 10솔(약 3000원). 더 이상은 안 돼' 우리는 표정을 감추고 마지못해 짐을 부리는 시늉을 했다.

인터넷 창 한번 여는 데 5분, 차라리 불친절이라도 했으면 더 기뻤을, 무감각한 주인아주머니,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툭하면 끊기는 수도. 이런 숙소라면 하루에 관광객 한 명 유치하기도 힘들 것 같았기 때문에, 우린 아주머니의 파격적인 가격 제의를 납득할 수 있을 만 했다. 있는 것은 눅눅한 침대 달랑 두 개 뿐이었다. 하지만 지친 여행자들에게 침대 두 개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잠에 든 후 날이 밝자 바로 방을 바꾸어버렸다.

여행은 간사하고 치사하며, 눈물이 다 날 정도의 사소한 본성과의 싸움이다. 문제는 언제나 지기 마련이라는 데 있고, 질 때마다 '대사를 위해 소사를 포기한다'는 알리바이를 세움으로써 자존심을 회복한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결국 뜨거운 물이 나오고, 마음껏 주방을 쓸 수 있으며 아침 식사가 포함된 일인당 40솔(우리 돈 약 12000원)짜리, 초케차까(choquechaca) 거리에 위치한 키야 인띠(Killa Inti)라는 그럴싸한 숙소로 옮겼다. 그 곳에서 묵은 때를 밀어내고 거리로 나와 꾸스꼬 일정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꾸스꼬에서 배낭 메고 나침반 하나 들고 히치하이킹을 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거나, 꾸스꼬에 사는 친한 친구를 하나도 모른다면 꾸스꼬 일대를 관광하는 방법은 대개 비슷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관광 도시에 삭사이와망(Saqsaywaman)이나 친체로(Chinchero), 삐사크(Pisaq) 등 각 관광지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는 사실도 놀랍지만(대중교통은 분명 있지만, 결코 관광객들은 이용할 수 없다. 숨바꼭질에 자신있는 사람이나 동물적 본능으로 버스 정류장과 행선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엄청난 숫자의 투어 회사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다.

각 관광지 티켓은 일괄적으로 꾸스꼬 관광청에서 발행하며, 관광 회사에서는 대개 열 여섯 군데 정도의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는, 70솔(우리 돈 약 22000원) 짜리 티켓을 추천해 준다. 유효기간은 열흘. 물론 관광 회사는 차와 가이드를 제공할 뿐, 티켓은 본인이 구입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국가적으로 관광 가이드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인 국립꾸스꼬문화학교 (Instituto Nacional de Cultura Cusco)와 연계되어 작동한다. 우리와 상담한 여행사 직원역시 가이드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외국어와 뻬루의 문화 역사,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을 주로 공부하는데, 졸업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약간 쉽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난 몇몇 가이드들은 그 곳을 졸업한 전문적인 사람들이며, 관광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가이드 자격증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꾸스꼬에서 관광 가이드는, 인텔리로 여겨지며 수입이 좋아 사람들에게 선망의 직업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이는 슬픈 일이다. 최고의 재원이 관광 가이드를 할 수밖에 없는 일은 뻬루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자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또 알린다는 측면에서 매우 고귀한 일이긴 하다. 그래도 자연이 준 열매를 따먹으며 과거를 마시고 사는 삶이란 '가난의 공포'에 휩싸여 죽지도 않은 경제를 굳이 '살려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인물을 대표로 선출한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일이다.

우리는 다섯 곳의 유적지를 이틀에 걸쳐 돌아볼 수 있다는 상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세 번째 날 맞추피추(Machu Picchu)로 가는 일정을 알아보기 위해 뿌노에서 만났던 한국인 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행사를 걸치면 입장권과 기차표 예매를 도와주고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직접 입장권과 기차표를 사기로 했다. 마추피추로 가기 위해선 세 가지 표가 필요하다. 먼저, 마추피추 입장권, 마추피추 역에서 유적지까지 올라가는 버스표, 그리고 꾸스꼬에서 마추피추 역까지 가는 기차표다.

이쯤에서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는데, 꾸스꼬로 향하는 여행 내내 기차표의 시세에 대해서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70~80 달러 정도 든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우리에게 매표소 직원이 96 달러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가격이 오른 지 몇달 되었다고 했다.

덧붙여서, 앞으론 더 오를 거라는 이야기도 친절하게 곁들여주었다. 물론 학생증이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했다. 학생증 있나요? 아니요….

게다가 입장권은 40달러, 버스비는 일인당 20달러라고 한다. 하루 일정에 일인당 15 만원이 증발하게 생겼다. 다른 방법은? 있지만 곧 없어질 거라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여하튼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표를 구매했다. '에이, 다음에 시간 나면 마추피추 잠깐 들르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일단 머리와 마음을 열고 유적지들을 돌아보기로 한다.

잉까의 혼 따위를 심각하게 포장하고 싶진 않다. 우리 안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을 꺼내 들고 싶지도 않다. 꾸스꼬 여행 내내 날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면 신비하게 포장되어 있는 꾸스꼬의 모든 신화의 메타포와 동경의 이미지를 때려 부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또한 보너스로, 왜 사람들은 많은 돈을 들여 그런 고행을 하고 싶어 하는가에 관한 물음의 부스러기들도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참고로 몸을 혹사시키는 여행일수록 돈이 많이 드는 반자본주의, 반시장주의적인 풍경들에 관해서도 궁금했다.

이를테면 잉까 트레킹은 삼박사일 동안 생고생을 하며 마추피추까지 기어올라가는 여정인데, 그런 일정에 300달러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여행사에서 부르는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급속도로 오르고 있는 중이라 한다.)왜? 고대 잉까인들의 생활 방식에 조금이라도 더 접근하고 싶어서인가? 물론 그런 기억들은 기차와 버스를 타고 마추피추를 올라가는 것 보다 더 많은 기억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솔직히 '깃발을 꽂는 쾌감'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2005년부터 뻬루 정부는 잉까 트레킹 가능 인원을 하루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유적지의 파괴를 우려한 것이다. 유네스코는 마추피추를 위험에 빠진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까지 예약이 모두 찼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마추피추로 페루가 벌어들이는 돈은 일 년에 20억 불이라 한다.

이날 오후에 우린 삭사이와망으로 출발했다.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를 모신 신전이라 하는 이 유적지는 장인정신이 물씬 풍겨 나오는 석공예의 오묘함을 눈으로 확인시켜주었다. 물론 이런 것을 며칠 보게 되면 질린다. 우리의 가이드를 맡았던 빈센트(Vincent)씨가 들려주는 농담이 차라리 재미있었다. '여러분들, 우리는 지금 삭사이와망에 와 있습니다. 참, 발음 조심하세요. '섹시 워먼(Sexy Woman)'이 아닙니다. '삭사이와망'입니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 파차마마를 모신 신전이자, 잉까의 요새이기도 한 삭사이와망. ⓒ손문상

▲ 사진은 만들어진다. 뻬루의 이미지가 발명되는 한 방식. 삭사이와망에서. ⓒ손문상

이곳에서 우리는 뻬루의 원주민을 다룬 멋진 사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곳곳에 전통 잉까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야마(Llama)나 알파까(Alpaca)를 한 마리씩 끼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1솔을 주고 사진을 찍는다. 이들은 어색함 없이 최대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주는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게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고 선명하게 잉까인들을 찍기 위해선 게릴라를 방불케하는 촬영 작전이 필요할 거야.'라고 감탄하며 한국에서 봤던 많은 사진들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진 찍기 위해 적어도 돈은 주지 말자'고 다짐한 후 다음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버스로 향했다.

버스에 타려는 찰나, 한 친구가 엽서를 사라며 접근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엽서에 내가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어, 어라? 순간 삭사이와망으로 출발하기 전, 관광객들을 열심히 찍어대던 '사진작가'들이 생각났다. 내 앞에서도 두어 번 셔터가 터졌는데, 나는 지역 기자들이나 홍보물 제작자들이려니 생각했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내 사진이 들어간 엽서가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한 장에 5솔. 어이가 없어 이들의 '마니또'스러운 호의를 거절했다. 자기 사진이 들어간 엽서를 보고 애교로 봐주며 5솔을 기꺼이 지불하는 관광객들도 간혹 있었다. 생계를 잇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 사람들은 '알빠까' 제품을 사러 들어갔고, 옥수수를 팔던 아낙네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 동안의 투어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가는 길. ⓒ손문상

우리는 계속해서 잉까의 제례장이었던 퀜코(Q'enqo)와 잉까 왕이 신과 대화를 나누었다던 휴식장소인 땀보마따이(Tambomatay)그리고 잉까식 전투 요새라고 하는 뿌카뿌카라(Pukapukara)를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 이런 유적들은 남한산성 같은 곳에 가도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인공 건축물일 뿐이다. 잉까의 유적이 고고학적 가치를 갖는 것은 유적에 대한 기록이 불분명하다는 점, 그래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지극히 학술적인 부분들일 것이다. 또한 비극적인 역사가 한 몫을 할 테고.
▲ 상인들은 '신성한 계곡'에 놓인 마을 삐사크와 태양의 신전으로 가는 길에 기념품을 팔고 있는 잉까의 여인. ⓒ손문상

▲ 뻬루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을 중 하나일 것이다. 삐사크 마을 전경. ⓒ손문상

둘째 날 아침 일찍 여행사를 찾았다. 우리는 잉까의 계단식 논이 인상적인 삐사크(Pisaq)라는 유적지를 찾았다. 고산지대에서, 그것도 낭떠러지 길 등산이라. 별로 내키지 않는 코스였지만, 이 잉까의 태양 신전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은 묵묵히 숨을 헐떡이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육체적 고통은 멋진 경치에 의해 보상받기 마련이다.
▲ 잉까의 모든 건축물은 신의 집이자 왕의 제례장이며 군사적 요새다. 태양의 사원. ⓒ손문상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는 잉까의 최후 요새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잉까 석축술의 진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최후 요새는 사실 하나 더 있었으니, 그 곳이 바로 마추피추다.
▲ 오얀따이땀보는 마추피추가 발견되기 전까지 잉카 최후의 요새로 알려졌다. 왜 그들은 마추피추를 숨겼을까? 오얀따이땀보 앞에 선 우리의 가이드를 맡아주었던 빈센트씨(Vincent). ⓒ손문상

▲ 우르밤바 강과 오얀따이땀보 사이에 위치한 우르밤바 마을. ⓒ손문상

▲ 수학과 축성술에 능했다는 명성만큼 잉까 석축술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오얀따이땀보. ⓒ손문상

우리는 마지막으로 친체로(Chinchero)에 들렀다. 이곳 성당은 오래되고, 또 아름다우며, 스페인 정복 초기의 짜깁기 장식과 미술품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가이드인 빈센트는 이 성당이 어떻게 성모마리아와 파차마마를 동일시해서, 궁극적으로 스페인 선교사들에게 승리를 안겨 줄 수 있었는지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잉까인들이 믿는 악마를 '사탄'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선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악랄한 방법이니까.
▲ 친체로 마을엔 스페인 선교 초기에 만들어진 성당이 있다. 미신을 대체한 카톨릭은 그 자체로 미신이 되었을 뿐이었다. ⓒ손문상

빈센트 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서양의 사탄에는 여러 종류가 있죠. 사탄, 매피스토펠리스, 루시퍼, 벨제붑, 데몬, 이블…. 그리고 알란 가르시아." 이 부분에서 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 이곳을 거닐며 꼬마 상인들에게 많이 시달렸다. 친체로 마을. ⓒ손문상

지금 꾸스꼬가 시끄럽다. 페루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고대 잉카 도시인 마추피추로 가는 철도편이 꾸스꼬 노동조합에 의해 48시간 동안 점거당한 일이 있었다. 영국계 민영기업이며 꾸스꼬와 마추피추 사이의 여행 기차를 운영하는 '페루레일(Peru Rail)' 은 사고를 피하기 위해 파업기간 동안 운영을 멈추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뻬루 정부가 마추피추 주변 관광산업 개발권에 외국 자본과 민간 자본의 참여를 대폭 허용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뻬루에게 관광 산업은 미네랄, 석유 등의 광업 다음으로 큰 수입원이다.

한해 40억 달러를 굴뚝 없는 산업으로 벌어들인다.(그 중 마추피추 관련해서만 20억 불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특히 센데로 루미노소(Sendero Luminoso, 빛나는 길이라는 뜻의 농민 혁명 단체 이름) 등의 게릴라가 급속도로 사라져간 1990년대 중반 이후 뻬루 관광 산업은 꾸준한 성장을 기록해왔다. 이는 사상 최고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현재, 뻬루의 효자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꾸스꼬 사람들은 이 법안에 '유산에 대한 모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면전을 선언했다.
▲ 꾸스꼬 시내의 밤 '일상'. ⓒ손문상

▲ 맑은 날을 보기 힘들었던 꾸스꼬 시내 전경. ⓒ손문상

우리의 흥미를 사로잡은 이 가이드에게 유적지 민영 개발에 관해 물어보았다. "자, 여기 내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쪽 방에서 부엌으로 가기 위해서는 큰 벽을 돌아야 해요. 그래서 불편하다 칩시다. 사람들이 이 방의 벽을 뚫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벽의 디자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면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집에 대한 추억들이 많아서 가급적이면 손을 대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히 유용하지 않은 벽이지만, 그 벽이 그 곳에 있음으로써 비로소 내 집은 완벽해집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집의 벽을 뚫으시겠습니까?

생각을 해 보세요. 삐사크의 아름다운 마을과 계단식 경작지를 보셨죠? 그 한 가운데 힐튼 호텔이 세워집니다. 아주 고급스럽게요. 어떠십니까? 물론 경관의 훼손은 둘째 문제입니다. 무분별한 개발은 분명히 유적지의 오염과 파괴로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커다란 오성 호텔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낼 때 땅이 받아들여야 할 진동을 저 유적지들이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커다란 지진과도 같은 것입니다. 알란 가르시아는 그래서 '사탄'입니다."
▲ 꾸스꼬 주변 관광 개발권을 외국 자본에 개방하는 문제로 이 유명한 도시가 시끄럽다. '꾸스꼬는 팔리지 않는다. 법안 폐기.' ⓒ손문상

▲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손문상

빈센트 씨는 시위 당시 꾸스꼬 아르마스 광장에 발 디딜 틈 없이 모였던 엄청난 인파에 관해 묘사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우리들도 꾸스꼬 시민들의 투쟁에 참여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정부와 언론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시위로 인해 멈추어선 마추피추 행 기차 안의 사람들은 크게 불편해 하지 않았다는 말도 해 주었다.

"관광객들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대의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외국인 투자에 혈안이 되어 있어요. 급기야 관광산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유례없는 '관광업 투자'를 허용하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입을 막고서 일방적인 보도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관광업은 수입도 수입이지만, 역사와 문화, 그리고 뻬루인들의 자존심이 결합된 특수한 산업입니다. 광산이나, 슈퍼마켓 같은 것이 아니라고요."
▲ 기념품 가게 주인이자 '아마루, 꼰도르, 뿌마(뱀, 콘도르, 푸마)' 라는 밴드의 리더이기도 한 빠꼴로(Pacolo)씨. ⓒ손문상

또한 이 일이 있기 며칠 전에는 페루 농민 연맹과 농부들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며 역시 마추피추행 철길을 점거했다. 비단 마추피추뿐만 아니라 페루 농민들은 수도 리마(Lima)를 중심으로 남부와 북부 해안을 잇는 범 아메리카 고속도로 봉쇄를 비롯해 전국적인 시위를 주도했다. 절박해진 농부들은 나무와 돌, 모래 등으로 길을 막았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급기야 군대를 투입했고, 이 과정에서 농민 한 사람이 사망한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정부의 공식 발표다.

꾸스꼬에서 만난 상인이었던 빠꼴로 벤뚜라(Pacolo Ventura)씨는 수도인 리마 남동쪽 320km 지점에 있는 아야꾸초(Ayacucho) 주에서만 4명의 농민이 사망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열변을 토했다. 알란 가르시아(Alan Garcia)대통령은 "농민 사망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경찰의 노고는 대단한 것이었다"는 멘트로 다시 한번 농민들의 가슴에 피니시 블로우를 먹였다고 말했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있었던 전용철 농민의 죽음과 허준영 경찰청장의 '닭짓'에 대해 그에게 말해주었다.

농민들은 경작비용의 상승에 크게 좌절했고, 빚의 경감을 원했으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농산품의 수입으로 지역 시장의 과열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페루는 지난 12월에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중국, 캐나다, 맥시코가 후순위로 협정 체결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빠꼴로 씨는 알란 가르시아를 '조지 부시의 하수인'으로 표현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일들이라, 우리와 상관 없는 일들이라 말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를 것이라 말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는 현실만큼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
▲ 엄청난 수의 관광객에 비해 상권이 작은 이유도 있지만, 뻬루 관광청의 정책이 개입되어 최고의 물가를 자랑한다. 마추피추 기차역 주변. ⓒ손문상

다음 날 마추피추로 향하는 날이 밝았다. 우리는 전날 빈센뜨 씨의 말들을 곱씹으며 기차를 탔다.

"마추피추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하지만 정부는 '백 패커(배낭여행객) 들의 경제적인 투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마추피추로 가는 길을 어렵게 만들고 있답니다. 동시에 기차표와 버스표 값, 그리고 입장료를 엄청나게 올리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불평하면서도 마추피추에 올라갑니다. 배낭여행객들의 개인적인 '고행'을 택하는 게 어려워지고 여행사가 더 많이 생기면 당연히 세수는 올라갑니다. 거기에 '세계 문화 유산 보호'라는 거창한 명분이 결합하면 일은 완성되는 것이죠. 이게 마추피추 행 기차 삯이 계속해서 오르는 이유입니다. 앞으로는 더 오를 거예요. 120달러? 아니면 150달러까지도요."
▲ 기차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꾸스꼬 시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반복되어 지나간다. 마추피추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손문상

지금 기차 안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그런 말들은 전혀 반갑지 않다. 유적지 보호라는 명분이 옳은 것이라면 부당한 가격책정을 통해 폭리를 취하는 것 대신 친환경 개발을 해야 할 터, 문제는 거기에 무차별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는 뻬루 정부의 사악한 전략이다. 하지만 빈센트 씨는 자유 여행자에게 불리한 '폭리'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일이지만, 그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는 기차 안에 앉아 있고, 마추피추가 줄 거대한 감동을 기대하고 있다.
▲ 기차가 쉬면 사람들은 일을 한다. '옥수수와 치즈 사세요'. ⓒ손문상

마추피추는 지금까지 꾸스꼬를 헤매며 돌아다닌 다른 유적지와 차원이 다른 곳이다. 산 꼭대기에 300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요새 겸 마을을 지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마추피추를 둘러싼 달걀처럼 솟은 거산 사이로 거칠게 흐르는 우르밤바(Urbamba)강의 물줄기. 그리고 그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안개의 신비함은 왜 마추피추가 온갖 부당한 요금정책에도 불구하고 올라설 가치가 있는 지 설명해 주는 것이다.
▲ 마추피추는 뻬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다. 삐죽삐죽 솟은 바위 산 틈바구니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극이 숨어있다. 마추피추. ⓒ손문상

마추피추는 알다시피 미국인 고고학자인 히럼 빙험(Hiram Bingham)이 발견(빙험 씨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했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일반에 알려진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마추피추 입구에는 빙험의 발견을 축하하는 기념비가 서 있지만, 실상 발견자라 칭하는 자의 고국인 미국은 '신사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매우 치사한 방식으로 '발견자'의 오만함을 자랑한다. 예일대가 마추피추에서 발굴한 유물 4만 여점을 가지고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물론 예일대는 4천여 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손문상

▲ ⓒ손문상

▲ 마추피추 전경. ⓒ손문상

뻬루 정부는 지속적으로 '문화재 강탈' 사실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히틀러가 '문화재 부대'를 만들어 정복하는 지역마다 훔치고 사기 쳤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유럽을 비롯한, 일본, 미국 등 제국주의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 유적도 유적이지만, 주변 풍광은 그 자체로 경외심을 자아낸다. ⓒ손문상

▲ 숨어 있는 비극을 덮으려는지, 신비함을 돋우려는지, 이 날 안개는 진했다. ⓒ손문상

▲ 마추피추 전경. ⓒ손문상

▲ 동양화 한 폭. ⓒ손문상

마추피추를 돌아본 후 돌아오는 길에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추피추 민영 개발에 관한 이야기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알고 있는 사람들은 3월 초로 예정되어 있던 시위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가급적 시위 현장을 보고 싶었던 우리에겐 아쉬운 일이었지만, 우리는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 다음 날 우리는 꾸스꼬 시내에서 꾸스꼬 지역 의회와 함께 법안 폐기 운동을 펼치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El cusco no se vende... (꾸스꼬는 팔리지 않는다.)" 우리는 묵묵히 그들이 내민 탄원서에 서명하고, 작은 돈을 기부했다.

('뻬루' 대신 '페루', '잉까' 대신 '잉카' 등으로 적는 게 바른 표기법이지만, 여행기라는 특성을 고려해 현지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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