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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에는 '구리참새'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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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동작에는 '구리참새'가 있을까?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⑤] 정동영 대 정몽준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4월 9일 총선을 맞이해 공동기획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를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결합하는 '아카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이번 총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 다섯 번째로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와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가 맞서는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 대한 최영진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언론에서 연일 '정(鄭) 대 정(鄭) 빅매치'니 '18대 총선 최대의 격전지'니 하면서 수사를 남발하고 있지만 정치학자로서 동작을(乙) 선거판을 바라보는 심사는 그리 편치 못하다. 표심을 잡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결의가 가상하기는 하나 한국 정당정치의 암울한 자화상을 그대로 목도해야 하는 당혹감은 어쩔 수 없다.

조용했던 동작을 지역이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보름 전 거물정치인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정몽준 의원이 이곳에 전략공천 되면서부터다. 정 전 장관이 안정적인 고향 지역구를 버리고 동작(銅雀)으로 날아올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당에서는 서울지역에서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전국적 인물이 필요했고 그 또한 당 지도부로서, 그리고 패전지장으로서 고향 지역구나 지키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이미 공천한 이군현 의원을 그의 고향으로 내려 보내고 정몽준 의원을 이 지역후보로 공천하면서 상황은 다시 급전했다. 정동영 전 장관을 떨어뜨리기 위해 정 의원을 '징벌'하여 표적공천한 것이다. 한나라당 당권과 대선 모두에 관심이 있는 정 의원으로서 당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위험부담이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10% 내외의 우위가 그러한 판세를 말해주고 있다.

전략공천은 동작을 선거의 기본원리이자 한국 정당정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전략공천에는 중앙당의 전략적 이해만 있지 지역당원이나 지역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깃발 꽂을 테니 그냥 찍어 달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좀 심하게 말하면 지역 유권자들을 우습게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입만 벌리면 '국민의 뜻'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

당에서 누군가를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내려 보내면 수년에서 수개월 동안 지역 민심을 일궈왔던 이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되어버린다. 해당 지역구와 아무런 연고도,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정치인들이 당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공천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민의가 수렴되고 민생문제가 집약되는지 알 수 없다.

정당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당과 지역유권자가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인적 제도적 관계망이 확대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가능하다. 정당이 유권자와 유리될수록 정당은 중앙집권화되고 풀뿌리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의미라 하더라도 중앙당의 결정권이 강화되고 전략적 사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당정치의 기초가 부실해지는 퇴행을 막을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정당들이 전략공천의 반민주성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많은 의석만 차지하면 된다는 결과주의가 넘쳐난다. 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서 의석만 많이 차지하면 뭔가 할 수 있다는 주술을 유권자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안정 대 견제' 프레임은 부정확

그 절정에 표적공천이 있다. 정동영을 떨어뜨리기 위해 정몽준을 공천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지만 꼭 한나라당만의 일은 아니다. 아무런 도덕적 죄의식 없이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우리 정치가 얼마나 적대적인지 이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정치를 '적과 동지의 적대성'으로 이해했던 이는 나치에 봉사했던 칼 슈미트(C. Schmitt)였다. 그 '적의(敵意)의 정치'가 21세기 한국사회에 공공연하게 배회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상생의 정치'를 설파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경쟁자들에 대한 적의일지 모른다.

생산적인 경쟁을 넘어 상대방의 물리적 배제를 기도하는 적의의 칼날은, 그러므로 꼭 경쟁정당에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한솥밥을 먹었던 정당 내 동지들이라고 그 칼날을 피할 수 없다. 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갈등과 분열은 바로 적의의 정치가 당내경쟁에서 폭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결과 친박연대라고 하는 정상적인 정당체계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기형적 정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정몽준 후보 홈페이지

이러한 전략공천과 표적공천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수용되는 것은 더 많은 의석이 차지하는 것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된다는 사고가 깔려있다. 이러한 욕망은 '안정 대 견제'라는 선거프레임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 정몽준과 정동영이라는 인물이 이러한 프레임의 대표적 상징이라는 점에 동작을의 정치적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프레임 자체가 사실상 부정확한 통념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소야대(분점정부) 상황에서 안정적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주장을 경험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 오히려 여대야소(단점정부) 상황에서 정부와 야권의 극단적 대치로 인해 파행정국이 더 많았다는 것이 우리 정치의 체험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17대 국회는 말 그대로 여대야소 상황이었지만 안정적 국정운영은 고사하고 국회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소수의 야당이 충분히 정부를 견제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15대 국회 역시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즉 안정론 대 견제론이라는 선거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며, 여야 간의 '적대적 상호의존'을 통해 그들의 압도적 지위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러한 선거프레임을 수용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의석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보여 왔던 퇴행적인 정치다툼을 계속 구경하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만 키워갈 뿐이다.

선거프레임 속에서의 역할을 제외한다면 소위 민생관련 정책에 있어 정동영과 정몽준 두 후보는 거의 차이가 없다. 동작을 지역의 가장 중요한 지역현안은 낙후지역 재개발과 교육문제이다. 두 후보 모두 이 지역을 교육과 경제에서 가장 발전된 곳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각 후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역공약 사항을 보면 그 세세함과 유사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민생문제를 꼼꼼히 챙긴다는 의미를 읽힐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본다면 이는 지역의제와 국가의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국회의원의 역할을 지역개발을 위한 이기적 대리자 정도로 폄하시키는 것일 수 있다.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장이 감당해야 할 지역의제가 있는 반면 지역적 문제이지만 국가적 의제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 있다. 동네 약수터 공원건설까지 지역공약으로 내세운다면 국회의원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되고, 지역발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전국 245개 지역을 위해 제각기 다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정동영 후보 홈페이지

만약 이러한 일이 여당의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면 여당과 정부는 편향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거물정치인이 되어야 가능하다면 국회가 원칙과 기준도 없는 패거리집단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동작을 위해 열심히 일할 테니 표를 달라고 호소하다. "제2의 정치인생을 새로 쓰겠다"(정몽준)거나 "동작을에 뼈를 묻겠다"(정동영)는 구호에서 섬뜩한 결의마저 느낄 수 있다. 표심을 모으기 위해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 과반수 의석이 필요하다면 지난 17대 국회에서 다수집권당이었던 민주당 당의장 정동영은 서민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한나라당 탓은 제발 그만 하기 바란다. 집권여당의 당의장으로서, 다선 의원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서민을 잘 살게 하는 정치인"임을 강변하는 정몽준 의원은 20년 의정활동을 통해 서민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울산 얘기는 그만하기 바란다. 울산 서민만 챙길 거라면 지방의회 의원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한국 정당정치의 암울한 풍경

그렇다면 이러한 후보들을 낙선시키면 한국정치는 나아질 것인가? 문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심지어 한국정치의 문제가 이러한 정치인에게 있다는 식의 진단도 그리 타당한 것이 아니다. 기업인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듯이 정치인 또한 유권자들이 원하고 용납하는 일을 하게 마련이다.

솔직히 유권자들은 그리 현명하지 못하다. 사적 이익에 매몰되기 쉽고, 심지어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뉴타운 개발이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주창되지만 수많은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기존 재래상권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들 뉴타운 개발을 원하고 그렇게 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유권자 수준에 맞추어 행동한다.

경실련이 실시한16대 국회의원 의정평가에서 정몽준 후보는 258명 가운데 242등, 정동영 후보는 199등에 그쳤지만 그들의 정치적 성공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개별정책이나 의정활동을 보고 정치인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줄 따름이다. 그런대로 정책중심 선거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지역개발공약을 남발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래도 이들 후보가 정치적으로 정당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 수준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 수준과 정치인의 관계는 물과 물고기의 은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인만 탓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이름도 잘 모르는 군소후보가 아니라 그대로 한 나라를 책임지려 했던 대통령 감이라는 데 있다.

동작(銅雀)의 어원은 조조가 왕이 될 길조를 담고 있는 구리참새(동작)를 발견하고 동작대를 건립한데서 비롯되었다. 우연이라 하기에 참으로 묘한 일이지만 누군가 구리참새를 발견하게 된다면 정동영 후보의 말처럼 동작을이 정치의 새로운 1번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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