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재단에서 아시아나 항공과 함께 '책날개를 단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캠페인을 펼쳐서 모은 책과 책 구입대금을 전국 10개 이주자 도서관에 배분해준 덕분에 이주자를 위한 도서관이 제법 그럴싸해진 것이다.
배분받은 중국어-방글라데시어-인도어-러시아어 등 다국어 책이 230권, 책 구입대금으로 몽골어책 560권, 파키스탄 언어인 우르두어 책 156권을 장만할 수 있었다. 우리만이 아니라 수도권에 있는 이주자 도서관들이 책 사느라고 잠시 분주하였다.
몽골에 있는 지인에게서 장르별로 골고루 사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와보니 정말 책의 종류가 다양했다. 그 중에는 몽골 옛 문자로 쓰여진 책도 여러 권 있었다. 몽골 옛문자니까 한국으로 치면 한문 같은 것일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글자도 키릴문자를 차용한 몽골문자(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와 달리 위에서 아래로 쓴다. 언젠가 몽골인들이 그 글자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각 문자들을 죽 이어서 길게 쓰는데 붓으로 한문 초서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파키스탄에서 도착한 156권의 책은 우리 스태프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흔히 보지 못하는 외국어가 쓰여진 책들은 언제 보아도 신기하고, 지구상에 저런 글씨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신기한 책들을 모아놓고 보니 부자가 된 것 같고, 파키스탄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우리 파키스탄어 책 많이 있어요. 보고 싶은 것 있으면 보세요'라면서 자랑도 했다.
책들을 보는 것 외에 책이 불어나면서 정말 즐거운 일이 생겼다. 책들이 도착한 후 정리할 시간이 없어 그냥 박스를 풀어서 여기저기 놓아두었는데, 사무실에 드나드는 외국인들의 시선이 그 책들에게 꽂히는 것 같았다.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가 앞을 왔다갔다하고, 아직 정리 못한 책들 속에 보고 싶은 책이 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그런 반응들이 우리 스태프들을 정말 기쁘게 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책이 필요해요"라고 하면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가 책?"이라며 뭐라 덧붙일지 잠시 생각해본다. 약간 악의를 담는다면 "배불렀구만!"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책이라는 것은 먹고 살만할 때 손에 잡는 것'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런 반응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유 없고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그런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해도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 힘들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 때, 우연히 손에 집힌 책에서, 우연히 눈에 띈 구절 하나가 가슴을 치면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갖게 해주는,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혹은 그런 극적인 상황까지 상상할 필요도 없이, 힘든 노동을 마치고 편안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는 어떤 사람! 참 인간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인간에게는 빵만이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 되지 않았을까.
추신 :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에 참여해주신 아름다운 재단과 아시아나 항공과 책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혜택받은 단체 중의 하나로서 감사드립니다.
또 지난 번에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책읽을 기회를 주고 싶다"는 글을 보시고 어떤 분이 우르두어 책을 사는데 보태달라고 10만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름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셔서 이름을 싣지는 못합니다. 보내주신 10만원을 보태어서 우르두어로 된 책 156권을 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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