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만나는 몽골여성이 있다. 몽골에 살 때 러시아에 유학까지 갔다왔었다는데 위축된 구석이 없이 아주 당당하게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여성에게는 딸이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처음에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아 제 나이보다 한 학년 낮춰 입학했었는데, 좀 지나면서 한국아이와 똑같이 한국어를 구사한다.
공부도 잘하는데 한국어와 수학을 특히 잘한다고 한다. 공부를 잘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사이도 좋아서 특별히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여성을 사무실에서 볼 일이 있었다.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아이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단체에서는 2004년부터 서울지역의 초등학교 고학년 학급을 찾아가 아시아의 문화이해수업을 해왔는데, 이 여성의 딸아이의 학급에서 몽골문화이해수업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면 반 아이들이 몽골에 대해서 알게 되니 좋고, 이 여성의 아이에게는 자기 나라에 대해 자긍심도 갖고 반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지는 계기가 될 테니 좋은 일이지 않겠는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 동안 초등학교에서 수업했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문화이해 수업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그 나라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뭐 등. 그래서 딸아이의 학교에 가서 몽골 문화이해 수업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학부모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이 여성의 반응은 나를 찔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소장님!, 좋은 데요…그런데…우리 아이는…우리 아이가 바라는 것은…너 몽골아이야, 나 한국아이야…뭐 이런 거 아니야. 몽골아이니까 이런 것 해줄게…이거 하나도 안 좋아해…그냥 몽골아이 한국아이 이런 거 없는 거, 가장 좋아…다 똑같이…그거 좋아해."
유창하지 않은 한국말이었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몽골아이 한국아이 구별해서 몽골아이니까 특별히 신경써주고 하는 이런 것조차 아이는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고, 몽골아이니 한국아이니 하는 구별없이 그냥 똑같은 아이로 여겨지는 것을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그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미안해졌다. 성인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그냥 똑같은 노동자,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만약 그 아이의 학급에서 몽골문화이해수업을 했다면 어쩌면 나는 "여기 여러분 친구 중에 몽골에서 온 친구가 있죠?"하면서 말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반응이 긍정적이고 전적으로 엄마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자 그 여성이 외국 땅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의 고충을 조금 털어놓았다.
"우리 아이…몽골사람들 모임…절대 안가…몽골아이들하고 안 놀아…"
"아이는 한국어 잘하고…얼굴…한국사람하고 비슷해서…말 안하면 몽골아이 몰라…한국아이인 줄 알아…이름도 한국 이름이야…다른 아이들…몰라….'
그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날, 나는 그 여성과 1시간 정도 얘기를 하였다. 주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몇 년간 만나오면서 언제나 활기차던 그 여성에게 깊숙이 숨겨져 있던 어머니로서의 슬픔을 처음 보았다.
그날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가 1주일 중 가장 바쁜 일요일이어서 그 여성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지만, 명색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한다면서 '아이에게 참 좋은 일일 게다'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세심한 배려가 없었던 나의 행동에 대해 두고두고 부끄러움과 반성거리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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