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몽골-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스탄-아르메니아-중국-네팔-미얀마-인도네시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인도-스리랑카-필리핀-베트남-태국-몰디브-부르나이-이란-이라크-이집트-요르단-부르키나파소-콩고-나이지리아-알제리-가봉-모로코-베냉-기니-세네갈-토고-튀니지-가나-감비아-우간다-잠비아-짐바브웨-앙골라-수단-소말리아-카메룬-이티오피아-탄자니아-터키
"의사소통을 어떻게 하느냐고요?"
이 정도이다. 적어놓고 보니 상당히 많은데, 그렇다고 이 나라들에 대해서 잘 안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이들 나라 사람들이 상담이 필요해서 찾아왔었다는 뜻이다.
이 나라들의 이름을 읽는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생각은 무엇일까. 아마도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일 것이다. 평소에도 이주노동자 상담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그것이니까.
그렇지만 아는 사람은 알 텐데, 위에 적은 나라들 중 상당수(절반 정도) 국가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영어공용어 국가가 아니어도 해외로 나오는 이주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영어를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를 조금하면 상담에 필요한 대화 정도는 가능하다. 만약 영어가 전혀 안되는 사람이라면 통역을 찾아서 상담하게 된다.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어를 잘 못 배운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들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다' 라고 하면 과장이고,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예컨대 네팔이나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영어가 공용어임에도 한국어를 아주 빨리 습득한다. 그러나 필리핀이나 영어권의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어 못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흠은 아닌데, 한국에서 오래 있었는데도 한국어를 정말 못하고 심지어 한국어를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모습조차 보기도 하였다.
한국어보다 우월한 대접 받는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이주노동자 상담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왜 그럴까' 의아했는데, 좀 지나서 그 이유를 알았다.
'영어, 즉 한국어보다 우월하다고 대접받고 있는 언어를 잘 구사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미얀마인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사장의 어린 딸에게 영어 과외를 해주었다. 정식 과외선생은 아니었다. 그냥 퇴근 후에 한 시간 정도, 일주일에 3번 정도 영어를 '좀 봐주는'것이다.
사장은 비싼 영어과외를 무료로 시키고 공장일도 시킨 것이다. 꿩 먹고 알 먹고 다.
어떤 미얀마인은 아예 영어 과외교사로 전업을 삼기도 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어학 강사로 채용하는 학원 원장들
어떤 스리랑카인은 학원에서 영어강사(원어민강사)로 일하다가 두달치 월급을 못 받았다고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는 미등록노동자였다. 학원 원장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공장에서 일하던 그를 채용했고, 수강생들에게는 그의 국적을 바꿔 소개하였었다.
필리핀인들의 경우. 듣자하니 부유층에서 입주 가사 도우미를 찾을 때 필리핀 여성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가 '영어' 때문이라고.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면 대접받는다는 싹을 미리 안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필리핀 사람들 중에 한국어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드물다.
똑같이 피부색이 검어도, 영어를 쓰면 한국인의 대접이 달라져
영어권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어떨까.
몇 년전, 예쁘장하게 생긴 나이지리아 청년과 20대의 한국여성이 상담소를 찾아왔었다.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한국여성은 씩씩대고 있었는데, 사정을 알고 보니, M이라는 그 나이지리아 청년과 한국여성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서울 이태원의 클럽에서 만났는데, 서로 좋아져서 사귀었다.
M은 그 여성에서 자신이 GI(주한미군)라고 소개했고, 그 말을 꼭 믿은 한국여성은 꽤 오랫동안 사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M은 다른 한국여성과 바람이 났고, 그제서야 한국여성이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모든 청년들이 M처럼 GI로 행세하지는 않지만, 우리 단체를 찾아와 상담하는 그들이 전해주는 말에는 시사점이 많다.
이태원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GI로 행세하면 한국인들, 특히 아가씨들의 대접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GI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출신이냐? 흑인 미군이냐?
즉, 같은 영어를 사용하고 피부색이 똑같이 검더라도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과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대접이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대접이 그렇게 달라지니 그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이런저런 이유들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영어를 즐겨 사용하는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골탕먹는 것은 정작 우리들이다.
인권단체의 스태프들이 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법-출입국관리법-외국인력정책과 제도 등 이주노동자 상담을 잘 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지식과 품성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단지 영어를 잘 한다고 유능한 상담활동가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한국어, 굳이 배울 필요 있나요?"
그럼에도 한국에서 꽤 오래(4~5년 정도면 꽤 오래가 된다) 살았는데도 '한국어 몰라요, 영어 할 줄 알아요?'하면서 상담하겠다고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을 멀뚱멀뚱 보다보면, '남의 나라에서 일해서 돈 벌겠다고 왔다면 최소한 그 나라 언어를 배우도록 노력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은근히 부아가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한편, '영어만 할 줄 알면 사람대접이 달라지는 이 나라에서 뭐 하러 굳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쓰랴' 싶기도 하다.
부시의 미국 남부 영어보다 파키스탄 영어가 더 듣기 편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잠시, 오륀지와 후렌들리로 시끌시끌했던 것이 엊그제이다. 인수위원장의 그 유창한(?) 영어 발음을 들으면서, TV에 나오는 부시대통령의 진한 남부 사투리 억양의 영어보다 파키스탄같이 한때 영연방에 속해있었던 아시아 국가들의 영어가 훨씬 알아듣기 편했던 사실과 각 국가마다 영어 억양이나 발음이 독특해서 콩글리시만큼이나 영어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영어 구사능력이 국력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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