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는 <황해문화> 2008년 봄호(58호)에 기고한 '방향 감각의 상실과 표류'라는 글에서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한국 정치 제도의 문제점에서 찾았다. 즉 이런 정치 제도의 문제점이 극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제2, 3의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
강원택 교수는 지난 5년간의 노무현 정부를 평가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로 '표류(漂流)'를 택했다. 그는 "표류의 상태는 방향 감각을 잃고 이리저리 바람 부는 대로 흘러다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된 까닭은 닻을 내려 강, 바다 바닥에 굳건히 연결되지 못한 채 혼자 떨어져 수면 위에 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이렇게 표류하게 된 것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닻을 통해 견고하게 고정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표류를 막을 수 있는 닻으로는 '정당'과 '대중적 압력'이 있다"며 "노무현 정부는 이 두 가지 닻이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정당을 버리고 관료를 선택한 노무현
정당은 '권력을 추구하면서' '이념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의' 집단이다. 강 교수는 "(대통령제에서) 정당은 대통령의 정책이 상황과 필요에 따라 우왕좌왕하지 않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이념과 가치에 부합하도록 이끌어주고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정당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강원택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사실상의 '노무현 당'인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지만 정작 국회 과반 의석을 얻은 이 당과도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며 "그는 당정분리를 주장하면서 열린우리당을 국정 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정치 결정에서도 당을 소외시켰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이런 특성을 보여준 가장 대표적 사례가 2005년 7월 '대연정' 제안"이라며 "이 대담한 제안의 준비 과정에서 '집권' 정당 열린우리당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통치의 한 축으로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정한 결정이나 정책을 국회 내에서 처리해주는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당의 독립성, 자율성을 허용하는 당정분리를 정치 개혁의 핵심으로 간주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며 "그는 당의 중심을 약화시켜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집권당 내 대항 세력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식으로 당을 '통제'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집권당이 권력에서 소외되면서 득세한 것이 바로 관료 조직이었다. 강원택 교수는 "노 대통령은 2004년부터 관료 조직에 크게 의존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관료는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에 언론, 정당처럼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대들거나' '귀찮게' 하지 않아 쉽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정치적 의사소통의 폭은 협소하거나 폐쇄적이다."
이렇게 관료 조직에 득세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관료들에 의해 '포획'되었다. 강원택 교수는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대통령, 소수 측근, 관료 조직에 의해 기획되고 추진된 대표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권당 지도부인 김근태 전 의장, 천정배 전 장관이 단식으로 한미 FTA에 항의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당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강원택 교수는 "관료 집단은 정책 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크지 않다"며 "대통령이 관료 집단에 의존할수록 정치권, 시민사회의 비판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정책이 좁게는 지지자의 열망에, 넓게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노 대통령의 정책 선택에 영향을 미칠 외부와의 정치적 의사소통 창구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지자 이탈하자 '내 갈 길 가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대체로 30% 혹은 그 이하의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강원택 교수는 이런 낮은 지지율의 원인을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와 '국민 요구의 변화'를 들었다. 노 대통령이 임기 내내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언론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강 교수는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와 함께 국민 요구 변화를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 포착해 반응하지 못한 것도 지지율을 낮춘 또 다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유권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정치 개혁이었다. 그러나 2006년 조사 결과에서 유권자는 정치 개혁이 아닌 경제 문제에 큰 관심을 쏟았다. 국민의 관심사가 변한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이 관심을 가졌던 의제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변화해 갔지만 노 대통령은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결국 지지층의 이탈을 가속화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집권당을 소외시키는 등 정치적 의사소통의 창구마저 갖지 못한 탓에 이런 여론 변화마저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강 교수는 "어차피 지지도가 낮은데 정책 추진에 있어서 지지층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의 독선과 아집이 생겨났다"며 "노무현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표류하게 된 데는 지지층의 이탈과 낮은 지지율로 인해 더욱 여론의 향배에 무관심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재임이 불가능한 노 대통령으로서는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유권자에게 다시 표를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입장이었다"며 "이것은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지지자의 여론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그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없는 우리 정치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 지지율의 반등을 지지층의 복원이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아니라 탄핵 사태(2004년 3월), 독도 문제(2005년 3월, 2006년 4월), 한미 FTA(2007년 4월), 남북정상회담(2007년 10월) 등 주목을 끌 만한 사건을 통해 이루려 했다"며 "이런 식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강원택 교수는 "이런 노무현 정부의 '표류' 현상은 한국 정치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며 "여론의 향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선거 때 자신의 공약을 지지한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와 같은 정책 표류는 얼마든지 다시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어서 "노무현 정부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건강한 정당정치를 마련하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며 "정당 정치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당내 후보자 선정에서 여론조사 방식의 도입 등 조직으로서의 정당을 약화하는 방안이 계속되는 경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강 교수의 지적은 이명박 정부도 무관치 않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듯이 △당을 자신의 결정과 정책을 국회에서 처리해주는 수단으로 바라보는 경향 △정치권·시민사회 내의 이견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하는 경향 등은 이명박 당선인도 노무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5년 후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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