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아이를 지켜본 담임교사는 그동안 아이에 대해 관찰한 것과 9학년에서 치른 각 과목마다 시험 결과를 가지고 학부모, 그리고 학생과 면담을 하면서 인문 고등학교로 진학할 지, 직업교육을 받게 할 것인지를 협의한다.
담임교사가 기술학교나 상업학교 등 직업학교 쪽을 추천할 경우, 학부모는 대개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담임교사가 그만큼 아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이 스스로도 그때쯤 되면 자신을 잘 알아 본인이 기술학교를 희망하기도 한다.
덴마크 청소년은 매우 독립적이어서 9학년 정도 나이(15세)가 되면 부모는 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문 고등학교, 직업학교 어느 쪽으로 진학하든 이것이 그 아이의 우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적성과 능력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친했던 친구들은 인문 고등학교와 직업학교로 진로가 달라졌어도 여전히 스스럼없는 좋은 친구로 남는다고 한다.
인문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직업학교 3년을 거쳐서 바로 사회에 나갔더라도 나중에 대학에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는데 대학 정원의 5% 정도는 이처럼 늦게 공부하는 사람을 받는다.
하지만 덴마크 부모들도 역시 속으로는 자기 아이가 인문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덴마크의 한 고위공직자 부인의 말을 들어보자.
"아들이 둘인데 큰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 쉬는 중이다. 넉 달간 인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내년에 대학에 진학해서 정치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그 애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해서 대학을 가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8학년인 둘째는 큰 애와는 달리 공부에 취미가 없다. 대신 손으로 무엇인가 만들기를 좋아한다. 9학년이 끝나면 그 애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래도 대학은 보내야하지 않을까" 하고 한국식으로 물어봤다. 그러자 그 부인은 "오히려 둘째가 대학을 갈 까봐 걱정이다. 어차피 공부에 취미 없는 애가 대학을 가봤자 몇 년간 시간만 낭비할 테니 아이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하여간 어떤 방향이든 교육을 받는 것은 중요하다"라는 대답을 했다.
과외를 시켜서라도 아이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고, 적어도 대학은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쓰는 한국의 학부모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처럼 대학에 매달리지 않는, 여유 있는 부모의 태도에서 덴마크 사회가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살만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꼭 대학만이 아닌,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교육제도가 열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직업학교만 나와도 생활이 보장되고 기를 펴고 살 수 있다면 어느 부모가 아이를 죽도록 공부만 시키랴.
필자 이메일 : kumbikumbi2@yahoo.co.kr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