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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결국 되돌아가지. 하지만 자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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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결국 되돌아가지. 하지만 자네는…"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6>] 체의 고향에서 띄우는 편지

여보게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내가 몇 살 많으니까 말 놓음세. 괜찮겠지? 뭐 꼬우면 그냥 친구 해도 되고. 내가 알베르또랑 동갑이니까, 둘이 친구면 나랑도 친구 하지 뭐. 그래도 대화는 처음이니까 격식은 좀 차리도록 함세. 비록 지루하고 팍팍한 '문어체'이긴 하지만 말야.

자네가 앞서 간 곳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네. 너무 쉬운 것이니까. 일테면 명곡에 따라 붙는 후렴구를 표절하는 심정이랄까? 내가 표절이 아님을 강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테면, '여기 위대한 혁명가 한 놈을 만들었던 고난의 길을 순례하는 자가 있다.' '순례'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자연스레 자네는 신이 되는 것이고.

하지만 이런 말들은 솔직하지 못해서 너저분해. 간지럽고. 나는 순례자도 뭐도 아니야. 다만 여행자일 뿐이야. 자네가 편리하게 짜 놓은 루트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그런 여행자.
▲ 전철에 몸을 실어본 자는 안다. 삶은 고단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를 관통하는 전철 안 풍경. ⓒ손문상

"우리는 모두 '고향을 벗어난 자'. 그런데 자네는…"

자네가 본 것들을 내가 볼 순 없겠지. 일단 모든 것이 내겐 낯설어서, 머리 속에 있는 하드 디스크가 과열될 지경이야. 굳이 50년 전의 자네를 상상하려 애쓰지 않아도, 내 각막에 쏟아 붓고 있는 영상은 출렁거리고 넘쳐.

그래 그 과열을 조금 식혔다고 치자. 로사리오, 꼬르도바, 바릴로체 같은 도시를 들를때마다. 시청에서 운영하는 인뽀르마씨온에 들러서 '체 게바라' 운운하며 자네 흔적을 찾으려 애쓰는 일들이 가끔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해.

너랑 내가 다른 게 뭐야. 오, 미안. 너라고 해서. 그래 자네랑 내가 다른 게 뭔가? 여행이 뭔줄 아나? 모두가 평등해지는 경험이야. 나이 먹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심지어 병든 자나 도망가는 자 마저도 말이지.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에 머물든 지저분한 도미토리에서 인스턴트 면발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든 모두 똑같이 '고향을 벗어난 자'야.

단 하나 다른 점은 자네는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지. 대부분의 여행자는 모두 돌아가거든.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게 내가 자네를 부러워하는 이유야.

깜도 안 되는 주제지만 말이야. 그래도 자네가 짜 놓은 루트는 훌륭하니 내가 좀 써 주지, 뭐. 돈 드는 일도 아니니 말이야.

여기는 바릴로체야. 산 마르띤 데 로스 안데스에서부터 일곱호수의 길을 지나 도착한 이 곳에서 자네는 칠레로 넘어가게 되지. '정착욕'을 뿌리치고 말이야.

'체', '체'를 외치며 웃는 사람들

이 곳 사람들은 여유롭고 친절해. 물가는 더럽게 비싸지만, 나름대로 살만 한 동네야. 어제 선술집에서 만난 로베르또, 알베르또(이 친구 말버릇처럼 연신 '체', '체'를 외치면서 커다랗게 웃더군. 이름도 알베르또야. 술에 잔뜩 취해서 '내일 이 곳에서 또 보자'며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더군. 손문상 선배가 그림을 그려줬는데, 정말 좋아하면서 맥주를 두 병이나 더 사주었지. 물론 우리가 가진 한국 돈은 모조리 털렸지만.), 그리고 엔쏘의 얼굴들에는 모두 반짝이는 호수 모양이 새겨져 있었지. 그 위를 웃음이 유유히 날고 있었던 거야.

Enzo는 내게 한글로 Enzo를 어떻게 쓰냐고 묻길래, 엔쏘라고 써 주었더니 이 글귀를 자기 등에 문신으로 새길거라고 말하며 좋아했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무척 좋아하는 녀석. 기타와 베이스와 하모니카를 연주한대. 로베르또는 체코 이민자 출신이고, 알베르또는 술을 무지 좋아하는 배불뚝이 아저씨였는데, 즐겁게 대화했지. 그것을 '대화'라 부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리가 이 곳에 오기 전에 겪었던 여러 일들을 말해봄세. 우리가 대화한 얼굴들 말고. 그래, 사실 얼굴이랑 대화할 수 있지만, 엉덩이 같은 배출구랑 대화하기는 어려운 거 아니겠어?

'세 마리 괴물'이 사는 도시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지. 우리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물고 있었을 때 묵었던 작은 호텔에는 금기사항이 있었어. 까라보보(Carabobo) 거리에 자리잡은 호텔 문을 나서면 절대 왼쪽으로 가지 말라는 거야. 오르페우스 전설도 아니고 말이야.

주인 아주머니에 따르면 왼쪽으로 올라가면 푸마보다 무시무시한 세 마리 괴물이 사는데, 그 이름은 '볼리비아노', '뻬루노', '빠라구아노'라는 거야. 물론 이 세 마리 외에도 몇 마리가 더 사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대.

주로 검은 얼굴을 하고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으며, 값 나갈만한 것들이면 뭐든 빼앗고 본다는 거야.

주 정부 "저소득 지역에 경찰을 집중배치해야"vs 중앙정부 "넌센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주지사, 다니엘 스시올리 (Daniel Scioli)는 날로 증가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경찰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정부가 거부했어.

가끔 잊고 있지만 이 정부의 구성원들은 나름대로 '좌파'로 불리우는 자유주의자들이야. 스시올리의 안은 감옥에 비디오 카메라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 등, 몇 가지 조치를 통해 현재 사무를 담당하고 있는 약 4000명의 경찰중 10% 이상을 포함한 약 1만명의 경찰을 거리 치안을 위한 부서로 돌리는 내용을 담고 있지.

범죄예방을 위해 저소득 지역 중심의 거리로 배치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넌센스'라며 거부한거야.
▲ 피서철과 주말을 맞아 한산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심부, 디아고날(Diagonal) 거리. ⓒ손문상

▲ 한산한 거리에서도 관광객들은 여전히 바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볼리바르 전철역(Bolivara) 주변에서 길을 찾는 관광객들. ⓒ손문상

강력한 치안 대책, 이주민에게 미칠 영향은?

사실 다니엘 스시올리는 야당 지도자래. 여당 세가 강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주지사로 당선된 것은 그의 강력한 치안 정책 공약 때문이었고.

물론 부에노스아이레스 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범죄는 심각해. 아마 육십년 전에는 '범죄학'이라는 것이 그리 인기있는 학문이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이런 정책들은(물론 거부되긴 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적극 환영한다고 해. 적어도 '신문'지상으로는) 필연적으로 '삶'을 찾아 이주해온 사람들에겐 독약이 될거야.

'가난'보다 슬픈 것은 '소외'

한국? 다르지 않아. 앞서 이야기한 세 마리 괴물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낯선 게 아니야. 한국은 흔히 '슬럼'이 없다고 이야기하지.

맞는 말이야. 하지만 '슬럼'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아니야. 가난한 자들에다가 '소외당한 자들', 즉 '이주민들'이라는 특별한 라벨이 붙은 이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 슬럼이 되버려. 왜 그럴까?

경제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들이 있기 대문이야. '배타적 감정'이라는 것이지. 현대 사회, 아르헨티나든, 한국이든 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의 '양극화'가 아니야.

양극화의 제일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는 현상'이 더해져야 비로소 '슬럼가의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야. 슬픈일이지. 사람이 사람을 소외시킨다는 것.
▲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경제가 안정되었다는 평을 받고는 있지만 아르헨티나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여전한 숙제다. 아르헨티나 국립은행(Banco del le Nacion Argentina) 정문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손문상

▲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은 마냥 밝고 진지한 표정이다. 이런 풍경은 일상적이다. 아르헨티나 국립은행(Banco del le Nacion Argentina) 정문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 그리고 젊은이. ⓒ손문상

▲ 이 무리한 점프를 시도한 후 젊은이는 고꾸라져서 손목을 다쳤다. 그래도 표정만은 밝다. ⓒ손문상

내가 만난 괴물

이는 분명 불법 이민자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거고, 불법 이민자는 더욱 소외되겠지. 이런 생각들이 이 나라에 대한 내 오해일까? 아니야. 현실이지. 세상은 많이 변했어. 이젠 골목 구석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유영하는 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할 시대야. 이주는 언제나 가혹하지. 특히 일을 찾아 하는 이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통령궁 뒤편에서 우리는 그 괴물을 만났어. 천천히 이야기 해 주지. 하늘에서 뭐가 후두둑 떨어지는 거야. 우린 위를 쳐다보곤, 다시 뒤를 보았지.

원주민 혈통이고 연인처럼 보이는 한 커풀이 우리에게 친절한 미소로 다가오더군. '물로 닦으라'며 언제 준비했는지 물과 티슈를 꺼내며 우리에게 들이밀더니 급기야 자기들이 티슈에 물을 묻여 내 등을 닦아주는 거야.

비둘기 똥은 아니었지. 시큼한 냄새가 나는 녹색의 끈적이는 액체야.

내가 사태를 파악함과 동시에 이들은 내 주머니를 더듬더군. 나는 '노' 라고 외치며 빠져 나왔어. 빠른 걸음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또 언제 왔는 지 모를 택시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이른바 '짱보는 녀석' 하나가 타더니 도망치는 거야.

우리는 그들이 도망치는 것과 동시에 경찰을 발견했고. 오래된 격언 하나. "경찰은 언제나 오 분 거리에 있다. 단지 오 분 거리에 있을 뿐이다."
▲ 철망을 통해 이 건물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관광객에 밀려난 시위대들이다.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는 대통령 궁, Casa Rosada. ⓒ손문상

경찰력 강화하면, 도둑이 줄까?

이들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어. 관광객 대상의 소매치기야 어느 곳에나 있는 곳이지만, 나는 이들이 왜 이 곳에서 소매치기를 하고 사는 것일까, 하는 게 더 궁금했지.

또 아르헨티노처럼 생기지 않은 외모 역시 궁금증을 발동시키는 것 중 하나였고. 이들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경찰력 강화 방안'뿐일까?

잘 모르겠어. 확실한 것 하나는 경찰력이 강화되어도 도둑은 절대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것 뿐.

나는 또 거지를 만났지. 소녀야. 어림잡아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나에게 오더니 돈을 달라고 하는거야. 나는 없다고 말하니까 혀를 낼름 내밀더니 사악한 표정을 짓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를 지껄인 후에 도망치듯 사라져버렸어.

이런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내가 '이민자 정책' 어쩌니, '빈부 격차' 어쩌니 할 수는 없을 거야. 그리고 신문 며칠 훑어 본 거랑, 작은 경험들을 섞어서 진지한 분석을 가장한 주장 따위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다만 나는 내가 한국에서 봐 왔던 그 잘난 '이민자 정책'과 '빈부 격차'가 생각났을 뿐이야. 이 곳은 조금 더 심하고, 한국은 점점 심해져가고. 뭐 그 정도.

원주민 출신인 볼리비아 대통령

한 가지 더. 이 곳은 지금 소위 말하는 '좌파 열풍'이 불고 있어. 남미에서 '좌파'는 곧 '반미'지.

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지 세 번째 날 나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볼리바르 역(Bolivar)에 내렸어. 그 곳에서 우연히 볼리비아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Ebo Morales)를 봤지. 그러니까 그게 1월 24일, 한국 시간으로는 1월 25일이야.
▲ '오늘 회담 잘 안풀렸나?'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기자들의 관심과 시민들의 환호에 답례하기 위해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차에서 내리고 있다. ⓒ박세열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는데, 군중들이 엄청나게 모여있었어. 아르헨티나 청년들은 신나게 북을 두드려대고, 사람들은 '에보! 에보! 에보!'를 외쳤지. 인기가 아주 좋았어.

그 중에 '마뿌체족에게 권리를 돌려줘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도 있었고, '청년들이어 일어나라'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도 있었지. 청년들은 아르헨티나 깃발에 체 게바라 얼굴을 큼지막하게 박아놓고 대통령 궁 앞에서 죽치고 앉아있던 아이들이야.
▲ "마푸체 민중을 위한 존경과 정의를"이라는 구호를 들고 있는 시민. 이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모랄레스의 등장을 반기며 연신 "에보, 에보, 에보"의 구호를 외쳤다. 역시 볼리비아의 원주민 출신 모랄레스는 아직까진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원주민들에게 영웅인 듯 하다.
ⓒ박세열

모랄레스 대통령은 천연가스 공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러 방문한 것이라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헤럴드'는 보도했어.

"코카만 마약인가? 코카콜라도 마약이다!"

볼리비아의 천연 가스 가격을 올리는 대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해주겠다는, 일종의 딜이지. 다음날 신문에 에모 모랄레스가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전 대통령인 키르츠네르의 부인이지.) 대통령을 예방한 후에 베네수엘라로 넘어가서 차베스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실렸더군.

차베스는 모랄레스와 "코카는 마약이 아니다. 코카가 마약이라면 코카콜라 역시 마약이다"라는 특유의 독설 섞인 유머를 나누었다더군.

알다시피 볼리비아는 코카 재배로 유명한 나라고 모랄레스는 코카 재배 농민 단체 의장을 지냈었지. 미국은 마약의 원료라고 탐탁치 않아하는 그 코카 말이야. 재미있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능한 이야기들이야.
▲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기자들의 관심과 시민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는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박세열

"미국은 골치 덩어리"라고 말하는 인디오들

이렇게 이 나라 사람들의 반미감정은 대단해. 칠레로 넘어오는 도중 만난 한 인디오 혈통의 아주머니 말처럼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골치 덩어리'야. 그리고 미국에게 "당신들은 골치 덩어리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이 나라 사람들이고.

그러면서도 티비에선 온통 축구 이야기야. 보까 주니어스와 그의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의 퍼스트 클래식, 그러니까 새해 첫 경기 이야기지. 그 경기가 열리던 날 우리는 심야 버스를 타기위해 터미널로 향하는 데, 도심에 차들이 없어 편했지 뭐야.

원주민과 정복자를 동시에 기리는 나라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에 이 곳은 참 이상한 나라이면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라야.

최악의 빈부격차에 대해 그토록 우려하면서도, 한줌 자본가들의 불합리한 권력 행사에 대해 그토록 우려하면서도, 여유롭고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지.

원주민과 정복자를 동시에 기리는 나라.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짐 모리슨이 멕시코 공연을 마치고 난 후 이런 이야기를 했었지. "멕시코는 모든 사람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맥락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아. 한국은 어떤가? 아버지 미국을 살해하고 싶어할까?
▲ 말비나스(Malvinas, 영국식으로는 '포클랜드' 섬)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정서는 한국의 독도문제만큼이나 자긍심과 민감함이 교차한다. 전쟁에 진 데 대한 패배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말비나스 전쟁 영웅을 기리는 상' 말비나스를 두 발로 딛고 있는 군인의 형상이다. ⓒ손문상

"자네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른 나라, 칠레로 떠난다네"

우리는 이제 칠레로 넘어간다네. 길거리 아무 음식점엘 들어가도 스미스와 큐어가 흘러나오는 곳. 얼굴이 다른 나라. 하다못해 변기 물 내리는 방식과 물 내려가는 회오리의 방향이 다른 나라. 화장실 앞 부스에서 150뻬소를 주고 공공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나라. 그리고 체 게바라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

여인들은 고혹적이고, 사람들은 친절한 나라. 마푸체 원주민 출신 학생이 경찰의 총격에 스러지고, 몇 번의 시위와, 몇 번의 사과로 일을 마무리 짓는 나라. 노벨상 수상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 5000뻬소짜리 지페에 등장하는 나라. 파블로 네루다가 지천에 널려 있는 나라. 이제 칠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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