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와 주미 대사관은 지난 8월 미국산 쇠고기에서 수입이 금지된 등뼈가 발견되자 "미국 측이 '작업자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고 원인 조사 결과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에 관련 문건을 검토한 결과 이런 내용은 "쇠고기 수출 작업장 관리 통제 실패"라고 서술한 미국 측 보고서 내용을 왜곡한 것으로 확인됐다.
美 측 보고서 내용 왜곡…원본 없는 문구까지 삽입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보건의료단체연합,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농림부, 주미 대사관이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 물질인 등뼈가 섞인 원인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기자 회견은 그간 농림부가 공개를 거부해온 관련 문건이 소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이뤄졌다.
지난 7월 29일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이 큰 물질로 지정돼 수입이 금지된 등뼈가 발견되었다. 농림부는 8월 24일 미국 농무부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작업자의 실수(human error)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큰 문제 될 게 없다"고 국민에게 발표했다. 앞서 주미 대사관도 청와대에 같은 내용을 대외비로 보고했다.
그러나 이런 보고 내용은 애초 미국 농무부의 조사 결과와는 크게 달라 축소·은폐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에 공개된 미국 농무부의 보고서와 농림부, 주미 대사관의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 농무부 보고서는 등뼈가 발견된 원인을 "포장 공정 통제 실패"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며 "농림부, 주미 대사관은 이를 축소·은폐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는 보고서에서 "작업장에서 효과적인 관리 통제가 되지 못한 것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밝혔다. 농림부, 주미 대사관은 이런 내용은 빼고 "작업자의 실수(human error)"라는 지엽적인 내용만 강조해서 국민에게 알리고 청와대에 보고를 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농림부는 '일부 상자들이 파손'돼 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미국 측 보고서에 없는 내용까지 덧붙였다"고 폭로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 측 보고서를 살펴봐도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며 "농림부는 도대체 어떤 보고서를 근거로 국민에게 이런 내용을 발표했는지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단순한 해석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축소·은폐로 봐야 한다"며 "노무현 정부는 등뼈가 섞인 원인을 미국 측도 인정한 '쇠고기 수출 작업장 관리 통제의 실패'가 아닌 작업자의 부주의한 실수로 몰아감으로써, 당시 진행 중이던 수입 위생 조건 완화 움직임에 지장이 없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8월 15일 주미 대사의 청와대 대외비 보고서 : "(미국 측) 동보고서는 금번 사고의 원인을 해당 작업장 box sealer 고장 및 동 시간에 발생한 작업 라인 교대에 따른 작업인부의 실수(human error)로 결론짓고,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 CMS(카길) 측이 아래 조치를 취했음을 밝힘." 2007년 8월 24일 농림부 보도 자료 : "등뼈가 혼입된 원인은 내용물 표시와 무게에 따라 수출용과 내수용을 구분하는 전환 구역에서 포장 기계의 고장으로 상자들이 혼합 적체되어 있는 상태에서 수출용 상자를 포함한 일부 상자들이 파손됨에 따라 그 파손된 상자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교육받지 못한 종업원의 부주의로 수출용 상자에 내수용인 T-bone 스테이크용 쇠고기를 잘못 담은 것으로 조사됨" 미국 농무부의 조사 보고서 : 1쪽 : The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USDA) concludes that the root cause of this incident was a failure of CMS plant packing process controls that allowed process deviations to go unmonitored and human errors to go undetected.(미국 농무부는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이 공정 일탈, 작업자의 실수를 적발하지 못한 카길 쇠고기 수출 작업장의 포장 공정 통제 실패라고 결론을 내린다.) 7쪽 : The root cause of this incident was the lack of effective management controls in the packaging area and the diversion area that provided an environment in which human error occurred and went undetected.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은 작업자의 실수를 적발하지 못하는 환경을 야기한 쇠고기 수출 작업장의 포장 구역과 전환 구역에서의 효과적인 관리 통제 결핍이다.) 9쪽 : USDA conclusions from this inquiry are as follows: the root cause of this incident was a failure of CMS management controls that allowed process deviations to go unmonitored and human errors to go undetected. (미국 농무부가 내린 결론은 공정 일탈, 작업자의 실수를 적발하지 못한 카길 쇠고기 수출 작업장 관리 통제의 실패이다.) |
복지부 '직무 유기'…농림부는 미국에 끌려 다녀
한편, 이날 기자 회견에서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포기한 정황이 여러 가지 드러났다. 우선 보건복지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섭취함으로써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vCJD)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2년 가까이 전 국민의 관심사였음에도 이와 관련된 보고서 한 편 내지 않았다.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복지부는 2007년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와 같은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큰 위험 물질이 발견됐는데도 농림부, 외교통상부에 관련 대응을 미루며 직무 유기를 해온 사실이 이번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공식 확인되었다"고 지적했다.
농림부가 2007년 8월 이후 추가로 등뼈가 발견될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 금지 방침을 세웠다 이를 철회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날 공개된 농림부에서 작성한 '미국산 쇠고기 검역 대책 보고(2007년 8월 20일)'라는 문건을 살펴보면, "광우병 감염 위험이 큰 물질이 발견되면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 중단 조치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농림부는 같은 해 10월 5일 또 다시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가 발견되었지만 두 달 전에 세운 방침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농림부는 수입 중단은커녕 미국이 요구한 대로 수입 위생 조건 개정 절차를 계속 진행해 미국의 요구에 굴복했다"고 지적했다.
또 농림부는 반복해서 등뼈, 갈비뼈 등 수입이 금지된 부위가 미국산 쇠고기에서 섞여 들어왔음에도 수입 위생 조건에서 명시한(21조 다항) 전면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수입 위생 조건에는 분명히 "위반 사례가 반복하여 발생할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날 기자 회견에 나선 이들은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검토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움직임과 관련해 한목소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 국민의 건강이 제물이 될 수 없다"며 "이명박 당선인은 국민을 광우병 위험에 몰아넣는 것으로 자신의 임기를 시작할 작정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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