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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의 길'이 '마지막 비상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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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의 길'이 '마지막 비상구'일까?

[김종배의 it]'견제'와 '딴죽'은 한 끗 차

<프레시안>은 1월부터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의 [it] 연재를 시작합니다. 가장 '핫'하고 '트랜디'한 아이템을 뜻하는 'it'이라는 문패가 말하듯,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전개되는 정치 현상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쉽고 정확하게 짚어보는 코너입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거쳐 <오마이뉴스>에서 '김종배의 뉴스가이드'를 연재했습니다. 현재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뉴스브리핑을 진행하고 있고, 정치전문 뉴스블로그 '토씨(www.tosee.k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밀도 있는 문장과 예리한 분석으로 정평 있는 김종배 시사평론가가 안내하는 정치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들을 모십니다. <편집자>


전망이 어둡다. 통합신당의 '손학규 체제'가 삐그덕거린다고 한다. 대표적 증좌로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을 꼽는다. 다른 친노 의원 몇몇의 동요 조짐도 있다고 한다. 출발과 동시에 장애물이 가로막고 섰다는 얘기다.

정말 그럴까?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과 친노 의원들의 동요는 장애물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손학규 대표 쪽 입장에서 보면 '불감청고소원'에 가깝다.

'손학규 체제'의 성격이 그렇다. 손학규 대표의 임기는 총선 때까지다. 선거용 대표이고 선거용 체제다.

'손학규 체제'가 총선의 최우선 전략으로 상정하는 게 '탈노무현'이다. '노무현의 덫'에 걸려 참패한 대선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노무현 색깔'을 탈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 대표를 밀어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내 인사 그 누구도 '노무현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상황 인식에 따르면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은 '호재'이지 '악재'가 아니다. 친노 의원 몇몇이 동반 탈당을 해준다면 공천과정에서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으니까 더없이 좋다. 이들에게 친노 세력의 동요와 이탈은 결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탈색제에 가깝다.
▲ ⓒ뉴시스

궁금해진다. '탈노무현'이 지상과제였다면 손학규 외에도 대안이 있었다. 쇄신파 초선의원들의 주장대로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실명이 거론된 외부 인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명도가 문제였다고 한다. 그 누구를 영입해도 손학규만한 지명도를 갖출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손학규 노선'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념에서 벗어나 중도실용적 입장에서 민생을 챙길 노선이 필요했고, 그런 이미지를 갖춘 인물이 긴요했다고 한다. 작금의 정치트렌드가 중도실용이기에 그에 부합하는 인물이 절실했다고 한다.

손학규여야만 했던 이유를 정리하다 보니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손학규는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탈노무현'과 '중도실용'을 양바퀴로 삼는 선거전략이라면 이미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 적이 있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통합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을 때 고건 대망론이 나왔고,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세론을 형성했을 때 정운찬 대안론이 나왔다.

하지만 두 명의 주인공은 흥행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물러났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라는 말 한 방에, 정운찬 전 총장은 '현실 정치의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액션 한 번 펼치지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손학규 체제'는 삼세 번 도전 끝에 겨우 손에 쥔 성과다. 그토록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길을 마침내 열어젖힌 최초의 성과다.

탄탄대로일까? '손학규의 길'은 여의도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한다. 지뢰가 곳곳에 널려있다고 한다.

야당 난립이 문제라고 한다. 통합신당 외에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이 따로 후보를 내면 표가 분산돼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또 다시 통합이 모색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다. 지역기반이 돼야 할 호남에서마저 외면당했다. 자생력이 거의 없어진 정당이 후보를 내봤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정당과 비싼값 들여 통합 흥정을 할 이유가 없다. 창조한국당도 그렇다. 대선 득표율 7%로는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대선자금 용처 문제 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실탄도 떨어졌다.

두 당은 경쟁자가 될 수 없다. 무시와 고사작전으로 가는 게 싸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충청지역 출신 의원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이회창 씨의 '자유신당'으로 옮겨가려는 의원들이 대여섯 명 된다는 얘기가 흉흉하게 돌고 있다.

이건 아프다. 대선 결과만 놓고 보면 한 번 해볼만한 곳이 충청 지역이다. 현역 의원의 조직에 중앙당의 지원을 결합해 총력전을 펼치면서 자유신당과 한나라당의 각축 틈새를 파고든다면 몇 석 건질 수도 있는 지역이다.

의석 몇 개를 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상징성이다. 수도권 109개 지역구 가운데 5곳에서만 금배지를 건질 수 있다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 조사결과가 현실화된다면 통합신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곤두박질 친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충청 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야 한다.

이런 마당에 최일선에 서야 할 현역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통합신당으로선 진지를 잃는 것과 진배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정공법 외에는 달리 동원할 카드가 없다. 호남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충청지역의 동요를 잠재우고, 수도권을 지키려면 '맞짱'을 뜨는 수밖에 없다. 모든 아젠다를 독점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와 '맞짱'을 떠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극대화하는 길이 최선이다.

'손학규의 길'을 밟기로 한 이유가 이것이다. 손학규 대표를 간판으로 내걸었으니 '노무현 색깔'이 빠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나머지 한 방, 즉 중도실용노선으로 이명박 당선자와 정책대결을 펼치려고 한다. 누가 진짜 중도실용의 전도사인지를 가리려고 한다.

입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5월말까지는 통합신당이 원내 제1당이다. 문제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견제'와 '딴죽'은 한 끗 차이다. 통합신당이 이명박 당선자의 독주를 견제한다고 나서도 유권자는 '딴죽걸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다.

'손학규 노선'은 이명박 당선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교육문제나 부동산문제, 기업정책에 관해 손학규 대표도 자율과 세제완화, 시장우선을 주창했다. '견제'를 할 만큼 독특한 정체성도, 뚜렷한 차별성도 없다.

두 눈 질끈 감고 노선 전환을 감행해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다. 말바꾸기가 두고두고 총선 유세장의 '오징어 땅콩'이 되기 십상이고, 그러면 '손학규 노선'의 한 축인 '중도실용'은 '무척추 기회주의'로 전락한다.

멀리 있지 않다. 지뢰는 통합신당이 밟고 서 있다. 손학규 대표 자체가 지뢰다.

그래서다. 눈여겨봐야 한다. 탈당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친노 의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반손학규' 진영을 형성했던 쇄신파 초선의원들이나 일부중진들이 탈당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이들에겐 명분이 있다. '손학규 노선'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선명한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명박 당선자와의 '맞짱'만 고려한다면 이들의 노선이 더 위력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판이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명분과 노선이 금배지를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더 실질적인 요소는 조직과 실탄이다. 이들에겐 이게 없다.

뛰쳐나가봤자 새로 당을 만들 거처가 없다. 어떻게 천막당사라도 짓는다 해도 일용할 양식을 구할 방법이 없다. 반면에 통합신당은 대선 때 쏟아부은 390억 원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다.

게다가 명분도 완전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한두 번 탈당한 게 아니다. 민주당→열린우리당→중도개혁통합신당→통합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의 궤적을 그린 사람들이다. 선명성을 내세워 탈당한다고 해서 유권자가 곱게 봐준다는 보장이 없다.

이리 보고 저리 재도 통합신당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노무현의 덫'이 문제가 아니다. 사방이 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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