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날, 우리의 관심은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 국가적 생존의 차원에서도 국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대응을 필요로 한다. 국가와 국가 사이는 인류 역사 어느 때보다 가깝다.
다른 국가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편향적이다. 미국, 일본, 유럽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이들 국가는 무역량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21세기를 이끌어 온 소위 '선진국'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외의 국가들 예컨대,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서남아시아의 크고 작은 수많은 국가들에 대한 정보가 앞서 말한 선진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한 번 우회 경로를 거친 정보는 날 것이 아닌 선진국들의 관점이 투영된 가공된 정보이다.
탄핵으로 국내가 어수선한 지금, 세계는 전쟁으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2002년 9.11테러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전선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 미국은 그동안 '악'이라고 지목한 이라크를 침략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이로서 더 이상 테러와의 전쟁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됐다. 노무현 정부는 비등한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초 서희-제마부대를 파견하고, 최근에는 3천 여명의 사실상의 전투부대인 '자이툰' 부대를 추가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서 이라크는 단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넘어 전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프레시안은 지난 27, 28일 강원도 인제에 있는 '더불어 숲 학교'(학교장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를 찾아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이슬람 문화 강의를 들었다. 이희수 교수는 국립이스탄불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취득하고, 터키-사우디아라비아-튀니지 등지에서 10년을 연구한 국내에서 독보적인 이슬람 문화 전문가이다. 또 이 교수는 <중동의 역사>(까치), <한-이슬람 교류사>(문덕사), <이슬람문화>(살림), <이슬람>(청아)등의 저서와 강연을 통해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알라 or 알라신?**
이슬람교의 신을 우린 흔히 '알라신'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알라'가 곧 '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교수는 알라가 곧 신이고,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나 유대의 신과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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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는 god의 이슬람식 표현입니다. 따라서 알라신이란 말은 틀린 말이죠. 한걸음 나아가 알라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슬람과 유대교, 기독교 모두 같은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읽어보면 구약-신약과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훨씬 많습니다."
이 교수는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가 가지는 큰 차이는 '예수'에 대한 인식이라고 설명한다. 유대교의 경우는 구약에 나오는 모세가 지구상 마지막 메시아-메시아는 신이 아니다. 신의 말씀을 인간 세상에 설파하는 신의 대리인이다-로 보고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신성을 가진 메시아로 간주한다. 이슬람은 기독교가 예수를 신격화 시키는 것에 반대하지만, 메시아로서의 지위는 인정하고, 대신 예수 이후에 나타난 마호메트를 마지막 메시아로 설정하고 있다.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경우에도 '신성'이 없는 인간 메시아로 간주한다.
***'한 손엔 칼, 또 한 손엔 코란' 글쎄?**
이슬람에 대한 일반인들이 가지는 피상적 인식 중 하나는 '무슬림은 호전적이다'일 것이다. 이슬람과 '피'가 함께 연상되는 이유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과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 이슬람 내 종파대립이 때론 피를 부르는 사태까지 갔다는 사실, 이스라엘과의 끊임없는 피의 복수전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호전적이라는 인식은 최소한 한국사회에서는 보편적이다.
무슬림의 호전성에 대한 선입견은 '한 손엔 칼, 또 한손엔 코란'이란 고전적 명제로 한층 강화됐다. 하지만 무슬림들이 호전적이라는 세간의 인식은 이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왜곡된 관점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이슬람이 7-8세기 경 몽고제국에 버금가는 제국을 건설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이 무력으로 제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 어느 기록을 살펴보아도 이슬람이 피를 흘려면서 대 제국을 건설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슬람이 북부아프리카에서 서남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대 제국을 건설하기 전 당시 이 지역은 극심한 분쟁으로 민중들의 삶은 거의 파탄 나 있었다. 특히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과 비잔틴 제국과의 오랜 전쟁으로 사회의 모든 물적 자원은 바닥나고, 또한 위정자의 가혹한 수탈로 민중들의 삶은 피폐함 그 자체였다. 이런 국제적환경은 이슬람이 급속도로 확산할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이 됐다.
이슬람이 이웃국가를 정복할 때 대부분 무혈 입성이었다. 이슬람이 페르시아와 비잔틴 지역으로 확산해 갈 때, 무슬림들은 피정복민의 문화, 관습, 종교를 보호해주는 대가로 무슬림보다 세금을 조금 더 낼 것을 요구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동안 위정자에게 기초적인 생활수단까지 수탈당한 피정복민의 입장에서는 무슬림은 적군이라기 보다 전쟁을 종식시켰을 뿐 아니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한 우군이었던 셈이다.
또한 무슬림은 피정복민에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슬람으로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무슬림보다 10% 세금을 더 물렸을 뿐이다. 오히려 이슬람제국이 공고화 될 무렵에는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피정복민들이 이슬람으로 대량 개종하는 사태가 벌어져, 무슬림은 '개종 금지백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무슬림은 가장 관대한 정복자였다.
***"아 살람 말레이 쿰,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소서"**
"아 살람 말레이 쿰"
무슬림들이 서로 만날 때 하는 인사말이다. 우리 말로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소서"이다. 즉 무슬림들은 하루에도 수십번 '평화'를 이야기하는 셈이다. 이들이 평화를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유목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무슬림들의 대부분의 인사말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자살폭탄테러, 전쟁, 피의 복수전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사실은 매우 새롭습니다. 무슬림들이 유독 '평화'를 강조하는 건 그들이 유목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슬림들의 생활 근거지는 대부분 사막이거나 척박한 토양이다. 무슬림의 생활양식은 오아시스를 찾아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목일 수밖에 없었다. 유목사회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역'은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안정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안정적 교역이 필요하고, 안정적 교역이 성립되기 위해선 평화가 매우 중요하다. 교역이 깨지면 약탈과 침략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인사말에서까지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던 셈이다.
무슬림에게 평화는 생존의 일차적 조건이다.
***"생존을 위한 약탈과 침략은 정당하다"**
유목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생존을 위한 약탈과 침략에 대한 관대함이다. 앞서 말한대로 정상적인 교역의 불가능은 곧 생존의 위협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약탈과 침략은 이슬람 사회에서는 관대하게 취급된다. 이는 사담 후세인이 90년대 초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보인 이슬람 사회의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라크는 91년 쿠웨이트를 기습적으로 침공한다. 국제법의 관점에서 보면 엄연한 불법 침략이었고, 국제사회는 분노했다. 하지만 정작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슬람 사회는 국제사회의 흥분과는 달리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고 이 교수는 증언한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전 이라크는 오랜 이란과의 전쟁으로 거의 모든 산업시설이 파괴되어 수많은 이라크 국민들이 굶주리면서 죽어갔습니다. 경제가 회생될 기미는 전혀 없었고, 이들에게 선택지는 오직 침략 뿐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쿠웨이트는 미국의 보호 아래 매우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은 생존을 위한 약탈과 침략에 대해 관대함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 사회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해할 수 있다'는 정서가 지배적일 수 있게 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 살고있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비난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문화권마다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고, 이것은 일단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미정서가 급증하는 이유**
이날 강의는 이 교수가 최근 미국 이라크 침략에 대한 이라크 현지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을 끝으로 갈음됐다.
미국이 이라크 침략을 결정하는 배경 중 하나는 이라크 국민들 사이에서 사담 후세인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다소 무리를 해서 전쟁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반발하더라도 후세인을 제거하면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라크 현지는 미국의 기대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이라크 국민들 사이에 반미 정서가 매우 강합니다. 미국이 아무리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국민들을 해방시켰다고 선전하지만, 이라크 국민들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물론 후세인이 장기간 통치를 하면서 반대세력들에게 가혹한 탄압을 해 이라크 국민들에게 원성을 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라크 국민들은 미국의 침략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라크 국민의 정서는 현재 탄핵을 반대하는 다수의 한국 시민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야당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는 입장과, 후세인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침략할 수 없다는 입장은 일맥 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날 이교수는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이슬람 인식은 지극히 왜곡되어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서구에 의해 조장된 이슬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이제는 비판적인 안목을 갖고 이슬람 바로보기를 시작해야한다는 조언이다. 이라크 추가 파병을 앞둔 우리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얼마나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무지는 때론 죄악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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