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가 격화되고 있다. 경쟁력 강화란 미명 아래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 이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 하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씨는 분신자살로 비정규직 문제를 충격적으로 고발했다.
반면에 정부는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에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최근 파견업종을 전 부문으로 확대한다는 4일 노동부 발표에서 보듯이 비정규직 양산을 조장하는 상황이다.
법적 보호 밖에서 지속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 부당노동행위에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노동자들 문제는 사회 갈등의 '잠재적 핵폭탄'이다.
프레시안은 비정규문제에 오랜 시간동안 연구와 조사를 집중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진원 소장(43)을 만나 비정규 문제의 본질과 노무현 정부의 정책평가, 그리고 앞으로 대응전망을 들었다. 조 소장은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뒤 그후 일관되게 노동운동을 해온 말 그대로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 2000년 5월 창립한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노동인권단체'이다. 비정규노동자의 권리보호, 노동자 내부의 계층간 통합, 사회적 연대를 핵심 가치로 추구하고 있다. 지금껏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를 비롯, 각종 정책 연구, 상담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조진원 소장 인터뷰**
프레시안 : 개인적인 질문부터 시작하겠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어떤 인연으로 시작했나?
조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센터에 오기 전, 건설연맹에서 일했고, 그전에 전노협(민주노총의 전신)에서 일했다. 89년에서 92년까지 3년간 전노협 산하 서노협에서 조직부장으로 일했다. 막중한 업무에 3년동안 녹초가 됐다. 물론 월급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건설연맹으로 옮겼다. 당시 건설연맹은 사무기술직 중심이었는데, 건설일용직들도 나름의 조직을 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두 조직을 통합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99년까지 두 조직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실체를 보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됐다. 99년 11월에 통합규약까지 만들고 나서 건설연맹에서 나왔다. 1달간 쉬는데, 센터(준) 박승훈 이사를 만나 함께 일할 것을 권유받았다.
건설연맹에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 센터 이사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센터에 소장일을 못했을 것 같다. 필연반 우연반이라고 할까.
프레시안 : 현장에서 비정규직 개념에 혼란이 있다. 예컨대 지난 2월14일 분신한 박일수 씨 신분을 두고, 사측은 박일수 씨는 하청회사 인터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전문가로서 비정규직의 범위를 설명해달라.
조 소장 : 어렵지 않다. 임금노동자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의 잔여범주인 셈이다. 정규직이란 한번 고용이 되면 특별한 사유 없이 해고되지 않는 사람이다. 법 중심으로 보면 근로기준법 30조에 해고제한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에 보호를 받지 않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라고 볼 수 있다. 혼란은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는 일정 기간을 상정한 기간제 노동자,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간접고용노동자, 독립사업자처럼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사용자로부터 지휘 감독을 받는 특수고용노동자, 파트타임노동자 등이 있다. 참고로 외국의 경우 비정규직의 다수는 파트타임노동자인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비율이다.
프레시안 : 그럼 박일수씨 같은 하청노동의 경우는 어디에 속하는가?
조 소장 : 간접고용이다. 따라서 박일수 씨가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현중의 주장은 알면서 거짓말하는 것이거나, 무지하기 때문이다. 또 간접고용의 경우 노동부고시는 합법 도급인지, 불법파견인지 판별하는 기준을 밝히고 있다. 하청의 경영상의 독립성, 노무관리의 독립성 여부가 그것이다. 지난 2월말 박일수 씨 진상조사차 울산에 갔을 때 박일수 씨가 근무했던 하청기업 인터기업은 명백히 불법파견업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각 종 통계조사를 보면, 비정규직 비율이 각각 상이하다. 이것도 비정규직 개념에 대한 혼란 때문인가? 예컨대, 공공부문 비정규직 비율을 두고 노동부는 17%내외로, 노동계는 최소40%라고 한다.
조 소장 : 통계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공공부문 범위에 관한 문제와, 도급화 시킨 부문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란 문제다. 정부는 공공부문으로 정부기관, 지방행정기관 에 한정한다. 반면 노동계는 이 외에도 정부직접투자기관, 정부출연기관, 정부재투자기관, 금융부문, 교육부문 등을 포괄한다.
또 97년 IMF구제금융을 전후로 정부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단행해, 많은 공공업무를 민간 도급화 했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비율을 추산할 때 이 부분을 민간부문으로 파악해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 부류 노동자는 비록 도급화 되었더라도, 실제 업무는 공공부문과 동일하기 때문에, 실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80년대 후반 이미 임금노동자 중 45%가 비정규직 노동자**
프레시안 : 비정규직이 IMF 이후로 급증했다고 한다.
조 소장 : 급증이 아니다. 80년대 말부터 이미 임금노동자 중 45%가 비정규직이었다. 다만 IMF 때 10%포인트 증가했을 뿐이다. 99년에 50%를 넘어서면서 언론 등에서 집중보도해, 사회적으로 부각되었을 따름이다. 이미 우리 노동시장은 80년대 후반부터 상당히 유연화되었다.
프레시안 : 재계나 정부는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조 소장 : 잘못된 주장이다. 비정규직 활용에서 보면 절대로 경직되어 있다고 볼 없다. OECD국가 중 비정규직 활용도가 2위다. 정규직 부문의 경우 경직화되었다는 주장은 나올 수 있다. 정규직 노동경직도는 OECD국가 중 12위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노동시장 경직성 주장은 어불성설"**
이 수치는 법률적 측면만 고려했을 뿐이다. 현장에서는 해고가 매우 쉽게 이뤄진다. 예컨대 고용보험이 시작되고 나서 2003년도 까지 해고사유를 보면 대부분 회사권유로 인한 해고가 대다수다. 법에 정해진 정리해고 절차에 따른 해고보다, 회사의 권유 혹은 강제로 인해 해고가 매우 많다. 이런 관행적 해고를 정부나 재계는 노동경직도를 추산할 때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법과 현실의 차이다. 고용보험 데이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노동 유연성 정도는 이러한 관행까지 포괄해서 파악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 회사가 권유한다고 해서 순순히 회사를 그만두는 곳은 우리 나라 밖에 없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문제는 80년 후반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조 소장 : 민주노조운동이 본격화 된 것은 87년 노동자대투쟁부터다. 당시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주된 화두는 임금인상, 노동시간축소 등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기본권 확대문제였다. 당시에는 국가가 직접 개입을 해서 노조활동을 크게 제약했다. 파업현장에 라면을 사들고 가도 제3자 개입금지조항을 빌미로 구속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를 지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노조를 지켜내고, 노동기본권을 확대하는데도 민주노조는 힘에 부친 상황이었다. 2004년 까지 노조간부가 3,700명이나 구속됐다.
***"노동법 손질 절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된 배경에는 기존 노동법이 정규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 소장 : 맞다. 일단 현 노동법은 비정규직 무한 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해서 노동법 개정 등 손질이 절실하다. 과거의 기준과 관점을 고수하다보니, 다수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입차주,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한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논쟁이 된 지입차주의 노동자성 인정문제의 경우 법원은 이들이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법원이 얼마나 협소하게 법을 해석하고 알 수 있다.
법원의 보수적 성격을 지적할 수 있다. 법관이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법을 협소하게 해석하다보니, 그 고통은 모두 노동자에게 돌아온다.
***"노무현 정권 노동정책, 신자유주의 기조 고수"**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조 소장 :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핵심내용인 노동시장의 유연성, 노동의 도급화 기조에서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은 터무니없다. 파견근로를 전 업종으로 확대하겠다는 발표는 이미 노사정위원회에서 제출된 공익위원의 안 마저도 철저히 무시한다는 의미다. 비록 노사 대표가 합의를 하지 못했지만, 성향이 다른 공익위원이 제출한 안을 노동부가 마음대로 허물고 있다. 재정경제부부터 노동부까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체제를 개선할 어떠한 의지도 없다고 판단한다.
이런 정부의 정책 때문에 비정규직은 줄지 않는다. 고용의 유연성을 통해 이윤을 극대회 시키고, 노동을 도급화 시키는 거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이다. 지금의 노동부 정책으로 비정규직 남용을 막을 수 없다. 매우 위험스럽다. 우리가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사회불안과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2000년도부터 노동관련 구속자의 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다.
프레시안 : 울산 분신대책위와 사내하청노조에게도 검거령이 떨어졌다.
조 소장 : 레미콘이나 한국통신 도 그렇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정규직 투쟁이 격화되고, 그만큼 구속자도 늘고 있다.
***"유럽,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비정규직 보호 법 마련"**
프레시안 : 외국의 정책 중 모범사례가 있나
조 소장: 유럽연합의 경우 97년, 'DIRECTIVE'란 지침을 만들어 소속 국가들의 국내법에 반영하고 있다. 차별금지를 핵심내용으로 한다. 비정규직 채용도 합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정하고, 장기 임시직이 늘지 않도록 계약기간 초과노동도 제한한다. 또 각 종 연금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재계약을 반복하는 것도 막고 있다.
영국의 경우 파트타임은 기간제가 아니다. 영구직이다. 시간은 짧게 일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해고를 못한다.
유럽이 우리와 다른 이유는 사민주의에 입각한 정권이 사회통합적 정책을 쓰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의 정책은 사회통합이 아니라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열쇄 가지고 있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철폐를 주요사업으로 잡고 있다. 최근 비정규직을 위해 노조와 사측이 각각 절반씩 부담하는 연대기금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조 소장 : 노조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노조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 10%정도 조직률을 가진 노조의 힘의 한계는 분명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열쇄는 노무현 정부가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차별해소를 위해 얼마나 의지를 갖고 대처하는가, 법과 제도 개선에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5대 차별 해소를 약속했다. 그 중 하나가 비정규직 차별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선거공약만큼 지켜달라는 거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본다.
조 소장 : 특히 간접고용의 폐해에 대해서 잘 안다. 40대 이상 노동자의 경우 용역이나 파견업체의 부당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직접경험을 통해서나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알아가고 있다. 행정부나 관계부처가 이런 현장 분위기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방치하면 투쟁이 격화되고, 계급간 적대가 심화 되는 등 사회 불안이 심각해진다.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차별에 민감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화개혁운동 시작해야"**
프레시안 : 문제는 형성된 사회적 공감대를 조직하는 방법이다. 전략이 있는가?
조 소장 : 우리사회는 이제 사회적 의제화 할 정도의 개방성은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후의 실제 행동으로 구체화 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 행정부 관료들은 끊임없이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하고, 노동계는 대응하지만, 뒷심이 딸린다. 캠페인이든, 파업 등 직접투쟁이든지 간에 정치권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야 한다. 결국은 폭넓은 운동이다. 아직 운동이 약하다.
프레시안 :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조 소장 : 파업 등 직접투쟁도 필요하지만, 문화개혁운동도 절실하다. 문화개혁이란 전 사회적으로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문화적 캠페인을 의미한다. 문화적 캠페인이 각 부문으로 흘러들어가, 정책을 바꿔가야한다. 일종의 문화운동이다.
우리는 과거 개발독재를 경험했다. 지금은 또다른 독재가 진행되고 있다. 시장독재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 우리는 시장 독재가 강요하는 차별의 속성을 간파해야 한다. 모든 독재는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 문제도 이 연장선 상에 있다. 노동자의 의지나 의사와 무관하게 비정규직으로 대량 편입하고 있다. 시장 독재가 강요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시장 독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나.
조 소장 : 시민사회가 보다 성숙해야 한다. 시장독재의 속성을 간파하고,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앞서 말한 문화개혁운동도 그런 맥락이다. 노동운동 뿐 아니라 각 종 차별에 저항하는 부문운동 전반이 더욱 활성화 되고, 뿌리가 넓어져야 한다. 부당한 차별에 민감한 시민사회가 도래할 때 시장독재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해소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나?
조 소장 : 솔직히 비관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정부를 압박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바쁘신 와중에 오랜 시간 내주셔서 고맙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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