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몽골인 바야라 씨와 함께 H건설의 하청업자인 A씨를 만난 곳은 검찰청 모 지청의 범죄피해자지원과였다. 바야라 씨는 A씨의 밑에서 공사일을 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7명의 몽골인 대표였다. 햇볕에 탄 얼굴, 후줄근한 옷차림. 30대 중반의 A씨는 길을 가다가 보았다면 영락없이 공사장 인부라고 생각했을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업자등록은 한 상태여서 사업주임은 틀림없었다. 말이 하청업자이고 사업주이지 공사장에서 일감을 따다가 아는 사람들 몇몇 데리고 페인트 도색작업을 하는, 즉 겉으로는 사업주였지만 속으로는 속칭 '오야지'나 다름없었다.
A씨는 큰 규모의 건설업체인 H사에서 일부 공사를 수주받은 B회사(여기도 실상은 오야지나 다름없는)로부터 도색작업을 다시 수주받은 것이다. 그런데 H사가 지급한 공사대금을 중간의 B회사가 가로채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체불사업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체불한 돈이 600만원이 넘었다.
처음에는 공사대금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달라더니 나중에는 몇 개월 기다려서 다른 공사를 수주하게 될 테니 그때 지급하겠다고 하였고, 그다지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던 듯 7명의 몽골인들은 기다려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A씨가 말한 기간이 지나도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고, A씨는 또다시 몇 개월을 더 기다려달라고 했고, 더 기다리기에 막막했던 몽골인들이 노동부에 진정한 것이다.
노동부에 진정은 하였지만 A씨는 끝내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노동부는 A씨를 입건하여 검찰로 송치하였고, 검찰청에서는 A씨에게 벌금을 부과하느니 일부라도 임금을 받게 조정해주는 것이 피해자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조정을 위해 A씨와 우리를 부른 것이었다.
A씨는 별로 말이 없었다. 조정위원들이나 검찰청 직원이 체불사실에 대해 훈계조로 '멀리서 돈 벌러 온 사람들에게 임금을 체불하면 안된다'느니, '이렇게 하면 한국의 이미지가 실추된다'느니, '젊은 사람이 앞날을 위해서라도 전과가 남으면 안되지 않겠느냐'느니, '돈을 빌려서라도 주어야 하지 않느냐'느니, '집을 담보로 대출이라도 받으라'느니 '자가가 아니면 보증금이 얼마냐, 그것이라도 가압류해 놓고 기다려줄테니 돈을 구해보라'느니 등등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얘기했지만 정작 A씨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조정위원들의 말에 '돈이 없어서' '빌릴 데도 없어서' '방 하나에서 사는데 보증금이 1,000만원인데' 등의 답변만 짤막짤막하게 낮은 목소리도 대꾸하고 있었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임금체불로 검찰청까지 불려가게 되는 사업주들은 독이 올라 악담을 퍼붓기 일쑤였다. '불법체류자들을 신고하겠다'느니, '몇 달만 기다려달라는데 그것을 못 기다리느냐'느니, '당신 한국인 맞느냐, 한국사람이 외국사람편을 드느냐'느니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A씨를 지켜보자니, 그런 악담들도 그나마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를 보면 도무지 어떻게 해서든 살겠다는 의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다. 그의 표정이나 답변내용으로 볼 때 그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는 쉽게 짐작이 되었다.
우리는 7명의 체불임금을 70%만 받기로 하고 한달간의 여유를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합의를 마치고 검찰청을 나오는 나에게 A씨는 이런저런 말들을 건넸다. 그는 나나 바야라 씨에게 아무런 적개심도 없어보였다. 바야라씨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몇 차례 했는데, 내게는 자기 상황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같이 보였다. 체불임금 사업주와 그것을 받아내기 위해 법적 조치를 취한 인권단체 사람이라는 불편한 관계임에도 그의 얘기를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B회사가 돈 가로챘을 때, 현장소장이 책임져주면 좋은데 현장소장은 나몰라라 하고',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로 노력해도 안되는 것 같다',
'한번 이렇게 되고 보니까 재기하기가 너무 힘들다',
'이런 일이 생기고 하니까 수주받아도 숙련공을 쓰기 힘들고, 미숙련공을 쓰게 되니까 작업에 문제가 생기고, 그러니 수주받기 힘들어지고, 이렇게 계속 악순환이 되고 있다'.
A씨로부터 들은 한탄이었다. 아마도 그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마땅치 않았던 것 아닌가 싶었다.
임금체불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마음이 불편할 때가 바로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다. 건설공사장의 경우 몇 단계의 하도급을 거치면서 문제가 생기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사장도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자신도 피해가 막심한데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부에 진정하고 때로는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다. 또는 부도난 회사를 찾아가보았더니 사업주는 집에서 김장할 때 쓴다고 마늘을 까고 있는데,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밀린 임금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채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상담을 받을 때, 사안이 무엇이든 상시 노동자가 많을수록 우리는 안도한다. 임금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더더욱 안심이 된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상시 노동자 80인 이상이라면 회사가 폐업해도 밀린 임금은 거의 다 받는다. 50인 이상이면 웬만큼은 받는다. 30인 이상이어도 어느 정도 받는다. 가장 악성인 것이 10명 이하의 소기업들이다.
고용허가제로 취업 중인 이주노동자라 해도 안심할 것은 못된다. 사업주들이 매년마다 이주노동자 1인당 가입해야 하는 임금채권보증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런 지경에 처한 사업주라면 머지않아 회사가 문 닫을 것이 뻔하다.
이런 사업주들과 얘기해보면 대부분이 '먹고 살 게 없어서 한다'고 한다. 이나마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으니 명색 회사라는 것을 차려놓고 이주노동자를 채용한다. 그러다 임금이 체불되면 대책이 없다.
이런 악순환은 이주노동자가 처음 한국사회로 유입될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해결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부르짖는 경기부양책도 이들에게는 별무신통이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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