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에서 온 M이라는 아저씨가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한국에서도 교회를 다니고 있던 M 씨는 교회 목사 소개로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다가 가구가 다리로 떨어져서 뼈를 다쳤다.
재수 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M 씨가 그랬다. 6개월 사이에 똑같은 사고를 두 번이나 당한 것이다. 우리 단체를 찾아온 때는 두 번째 사고를 당하고서였는데, 치료비는 사업주가 부담해주었지만 두 달 정도의 회복기간 동안 휴업급여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M을 회사에 소개해주었던 목사는 사고가 나자 M과 사업주의 사이에서 사고 수습을 해주었는데, 회복 후 다시 채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다. 그러나 두 번이나 같은 사고가 나자 사업주는 M 씨를 해고하고 말았다.
그런 지경에 이르자 M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을까 해서 우리 단체를 찾아왔다. 그가 처한 상황을 이것저것 듣고 확인한 결과, 우리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산재치료를 위한 휴업급여 명목으로 80만 원 정도를 더 받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2차 사고분만. M씨는 1차 사고에 대해서는 다시 재론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80여만 원의 휴업급여를 받기 위해 산재승인절차를 처음부터 진행하기보다 사업주에게 청구하는 것이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다 싶어서 사업주와 얘기해보았지만 사업주는 '치료해주었으니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산재승인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관할 근로복지공단지사에 진정서와 요양신청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진정서에는 사고경위에 처음부터 관여했었던 000목사의 이름을 참고인으로 기재하였다. M 씨의 사고를 산재로 인정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M 씨에게 잠시만 기다리면 요양승인이 될 것이고, 그러면 휴업급여를 청구하자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다른 사례와는 다르게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M 씨의 요양신청에 대한 결과통지가 오질 않았다. 상황확인을 위해서 전화라도 올 법한데 그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가 관할근로복지공단 지사에 연락해보았다. 그런데 담당공무원의 대답이 의외였다.
"지난번에 취하서 쓰고 끝났잖아요?"
"무슨 취하서요?"
"사업주와 잘 얘기되어서 합의하고 취하서에 당사자가 서명해서 제출했잖아요?"
"무슨 말씀입니까? M 씨가 서명해서 제출했다는 겁니까?""000목사님이 취하서 가지고 왔었죠."
"M 씨도 아니고 진정서를 제출한 우리 단체에게는 연락 한번 안하고 000목사와 연락했다는 겁니까?"
"진정서에 000목사를 참고인으로 했으니 연락했죠."
"아니, 참고인은 어디까지나 참고인일 뿐이죠. 엄연히 진정인이 있고 그 연락처가 우리 단체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에게 먼저 연락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상하게 그 담당자는 자꾸만 참고인과 얘기하였으니 문제가 없다며 강변했다. 그러면서 정작 당사자인 M과는 한번도 연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일단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어서 취하서를 즉시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다.
팩스로 받아본 취하서에는 M 씨의 서명이 있었다. 그 서명은 M 씨의 여권에 기재된 서명과는 전혀 다른 서명이었다. 담당공무원에게 다시 연락하여 서명이 다르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에 대한 공무원의 답변은 나를 기가 탁! 막히게 했다.
"서명은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를 수도 있죠."
담당공무원의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두 가지가 예측되었다.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무리하게 주장하고 있거나 아니면 000목사와 짜고 일을 처리했거나.
나는 일단은 업무상 실수로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그 담당자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최대의 호의였다.
"어떤 조건으로 합의했습니까?"
"휴업급여 40만 원 받기로 했지 않습니까?"
"40만 원요? 서류를 보시면 휴업급여가 그보다 더 많다는 걸 아실 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M 씨에게 연락하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사무실로 온 M 씨가 의외의 말을 하였다.
이틀 전에 000목사가 전화했는데, 돈을 20만 원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40만 원이 아니라 분명히 20만 원이었다. 000목사가 사장님에게 잘 얘기해서 돈을 받기로 했으니 돈을 받고 진정서는 취소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나자고 하였지만 M 씨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목사를 만나러 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에서 팩스로 받은, M 씨의 서명이 되어 있는 진정취하서를 보고선 펄쩍 뛰었다.
"서프라이즈(surprise)!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M 씨가 세 번이나 반복한 말이었다. 그는 정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단단히 따질 작정을 하고서 관할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갔다. 내가 머물렀던 1시간 가량, 그 사무실의 다른 공무원들은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담당 공무원의 코앞에 M의 서명이 들어있는 여권사본을 팽개치듯이 들이밀었고, 책상을 치고 소리치면서 항의해도 아무도 사태를 수습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전화통화하면서 간신히 참았던, "당신, 혹시 그 목사랑 짜고 일 처리한 것 아니야"라는 말이 금새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미 그 즈음에는 담당공무원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전화통화할 때와는 달리 '그저 죽여줍쇼!' 하는듯한 태도였다. 1시간 동안 발칵 뒤집어놓고 '당장 바로 잡아놓으라'는 내 말에 '바로 잡아놓겠다'는 담당자의 대답을 확실히 듣고 돌아왔다.
다음날, 000목사에게서 재깍 연락이 왔다. 모든 것을 인정했다. 서명은 위조한 것이고, 돈은 사업주에게서 40만 원 받았다고. 사업주가 자기 교회의 교인인데 일할 사람을 찾길래 M 씨를 소개해줬고, 사고가 났길래 좋은 게 좋다고 자기가 좋게 해결해주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그리고 잘못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에 종교계의 진출, 그 중에서도 개신교의 진출은 눈부시다고 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두드러졌다. 그 중에는 인권운동의 측면에서 활동하면서 이주노동자의 인권향상과 권익보호에 공헌하는 이들도 있고, 선량한 성직자로서 이주노동자들을 감싸주고 봉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선교적 차원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종교인이 선교하겠다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들 중에는 열의가 지나쳐 간간이 인권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을 아연하게 만드는 일이나 사고를 가끔씩 발생시키는 이들이 있어서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다. M 씨의 사례는 그리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 성격이 매우 악질적이었다.
이 파렴치한 목사를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그 목사를 경찰에 고발 혹은 고소하는 것. 또 하나는 그 목사가 속한 교단에 공문을 보내서 합당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그 교단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에는 언론에 터뜨리기. 혹은 그 두 가지를 모두 할 수도 있었다. 내 마음으로는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었는데 일단 M 씨와 상의하였다. M 씨에게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여서.
M 씨는 한참동안 말없이 생각했고, 결론을 내렸다.
'문제 삼지 말아 달라!'
나는 M 씨의 희망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임의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M이 증인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마 M 씨도 그것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두었으리라. 미등록노동자 상태여서 무엇이든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M 씨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의 사례는 그 사이 보고 들었던, 성직이 직업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몇몇 성직자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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