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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캐럴의 크레인스뷰 3부작 중 첫 작품, [벌집에 키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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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캐럴의 크레인스뷰 3부작 중 첫 작품, [벌집에 키스하기]

[북앤시네마]

조너선 캐럴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벌집에 키스하기]는 베스트셀러 스릴러 작가인 샘 베이어가 어린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사건, 즉 마을 최고의 기이한 소녀였던 폴린 오스트로바의 시체를 발견했던 사건을 떠올리고 그 살인사건을 파헤치며 소설을 써나가는 와중 겪게 되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폴린 오스트로바가 기이한 소녀였던 것은, 그녀가 당시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앞서가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예쁘고 활달하며 도전적이고, 똑똑하고 공부를 잘 하고, 일찍부터 남자를 알았고 많은 남자들과 자고 다녔던 폴린 오스트로바는 어느 날 샘이 수영하러 갔던 강에서 시체로 떠오른다. 이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샘. 폴린 오스트로바는 사춘기의 샘에겐 무조건적인 숭배와 동경의 대상이었다. 폴린 오스트로바가 샘의 개를 친 사건을 계기로 폴린이 샘의 집을 방문했던 사건이 샘의 회상을 통해 묘사되는 대목에 이르면, 일일히 감정 묘사를 하지 않고 그저 상황과 대화를 묘사하면서도 사춘기 소년의 달뜨고 흥분되면서도 수줍은 두근거림을 과연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효과적이다.
벌집에 키스하기
'어린 시절'과 '시체'라는 말에서 바로 떠오르는 건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 [사계] 중 가을편이었던 [스탠 바이 미]이고, 두 작품이 어린 시절의 어떤 중대한 사건(어른이 되고서야 깨닫게 된, 일종의 '전환기'가 된 사건)을 다룬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두 작가는 각자의 개성이 또렷하게 다르다. 그러니 [벌집에 키스하기]에서 샘 베이어가 곧 신비롭지만 어딘가 의심스러운 베로니카 레이크(<L.A. 컨피덴셜>에서 킴 베이싱어가 흉내냈던 바로 그 배우와 동명의 이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수상한 이에게 추격을 당하고, 베로니카 레이크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그를 돕던 경찰서장이자 어릴 적 친구인 프래니 맥케이브가 위험에 빠지는 등 온갖 기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작은 마을에서 더없이 평온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시작했다가 아주 조금씩 뭔가 수상하고 이상한 '작은' 것들이 조금씩 배치되고, 그러다가 큰 사건들이 뻥뻥 터지면서 앞서 제시된 '작은' 것들과 곧장 연결되고, 마지막에 무시무시한 클래이맥스 혹은 반전이 펼쳐지는 구조는 일견 작가의 전작인 [웃음의 나라]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주인공들이 모두 책을 쓰는 과정에 겪는 사건들을 다룬다는 점도. 그러나 둘은 완전히 다른 줄거리와 주제를 가진, 완전히 다른 소설이다. [웃음의 나라]가 허구의 창조자, 즉 작가를 절대자인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종교와 문학에 대한 동시적 고찰을 행한다면, [벌집에 키스하기]는 역시 허구의 힘에 집착하는 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그 신비성에 좀더 주제의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조너선 캐럴의 소설마다 반복되는 건 아닌 듯하다. 원래 [벌집에 키스하기]는 뉴욕 근교 소도시인 크레인스뷰를 배경으로 하는 일명 '크레인스뷰 3부작'의 첫 작품으로, 올해 내 출간될 예정인 나머지 두 작품은 [벌집에 키스하기]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라고 하니 말이다. 3부작의 두번째 작품인 [The Marriage of Sticks]는 크레인스뷰에 살고있는 고미술 전문가 여성이 불륜에 빠지면서 겪는 판타지의 세계를 다루고, 세번째 작품인 [The Wooden Sea]는 [벌집에 키스하기]에 등장하는 프래니 맥케이브를 주인공으로 시공간의 균열과 어그러짐을 다루는, 보다 SF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 한다.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한글 제목인 '벌집에 키스하기'는 이 책의 내용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무수한 벌들에게 얼굴을 쏘이는 고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그리고 진실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온전히 속살을 드러내는 법이다. 조너선 캐럴의 작품은, 판타지와 미스터리물, SF 등 서브 장르의 여러 가지 전형적인 문법들을 잘 알고 있고 잘 활용함으로써 쾌감을 주지만, 그 안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풀어낸다. 도대체 이런 작가가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제서야 한국에 소개되는 건지, 그리고 이미 출간된 그의 책 두 권이 왜 몇 달이 지나도록 국내의 주류 매체들에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건지 그것이야말로 미스터리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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