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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소년 '초롱이'의 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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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소년 '초롱이'의 꿈과 현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19>이주노동자의 자녀들

'초롱'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몽골아이가 우리 단체를 찾아온 때는 2004년이었다. 초롱이가 우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 아이는 단박에 우리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뽀얗고 통통한 뺨에, 여자아이보다 더 짙고 긴 속눈썹, 큰 눈, 거기에 그늘이 보이지 않는 밝은 표정이 정말 예쁜 남자아이였다.
  
  초롱이는 아버지와 함께 왔는데 우리 단체를 찾아온 이유는 어머니의 체불임금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통역을 맡은 초롱이는 아이답지 않게 의젓했고, 한국어 실력이 아주 훌륭했다. 필요한 내용에 대한 파악이 끝나고 초롱이의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았다. 서울 모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평소에도 부모님의 통역 노릇을 하고 있고, 일요일이면 서울시내 모 교회에서 격주로 여는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소'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참하고 예의도 바른 아이였다. 초롱이 아버지에게 '이런 아들을 둬서 기쁘시겠습니다'는 말을 했더니 아버지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입이 쫙 벌어졌다. 어느 나라나 자식 칭찬은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하나보다.
  
  그 이후에도 초롱이는 어머니의 체불임금 때문에 몇 번 왔었는데, 볼수록 사랑스럽고 대견한 아이였다. 나는 초롱이를 보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곤 했는데, 다른 활동가들의 마음도 그러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체불임금이 최종적으로 해결될 즈음, 초롱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주노동자의 2세들이 자칫 한국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철없는 아이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에 혹시 초롱이는 어떤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우리의 염려는 기우였다.
  
  초롱이는 친구관계도 좋은 것 같고, 학교생활도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밀한 사정이야 모르는 것이지만 겉으로만 보아서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아이 같았다. 초롱이에게 혹시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초롱이는 의외로 학과공부가 좀 떨어지니 주요과목에 대해 배우고 싶어했다.
  
  우리 단체는 아동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었는데, 초롱이가 공부를 하고 싶어하니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자원활동가들을 물색해서 주요과목을 가르치는 무료과외를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공부방은 우리 단체까지 오기 위해 차를 타고 와야 하는 불편함과 초롱이의 다른 사정들 때문에 그 학기가 끝나는 즈음까지 두 달 정도만 했었다. 그 이후 초롱이는 연락이 뚝 끊어졌다. 공부방을 그만두고 나니 초롱이가 우리 단체를 찾아올 일은 없었지만 우리 단체의 활동가들은 초롱이를 종종 화제로 삼고 그 아이를 그리워했다.
  
  그러던 다음 해.
  
  오랜만에 초롱이가 연락을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보는 초롱이가 아주 반가웠지만 초롱이에게는 우리 단체를 찾아와야 하는 것이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미등록노동자였던 어머니가 법무부의 단속에 걸려 추방된 것이다. 어머니가 추방되기 전에 일했던 공장에 받지 못한 임금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엄마가 없으니 아빠가 음식을 해주세요'라는 말을 하면서 초롱이는 우리에게 그늘을 보이지는 않았다. 불법체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을 터인데도.
  
  어머니의 임금을 해결하려고 우리가 애쓰는 사이, 이번에는 아버지의 문제로 초롱이가 다시 우리에게 연락했다. 아버지가 산재를 당해 손을 다친 것이다. 그리 큰 사고는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기간 치료가 필요했다. 연이은 불행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생각지도 못한 때에 초롱이가 전화를 했다. 부산스레 반가움을 표시하면서도 한편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초롱이도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했고, 우리는 '보고 싶으니 시간 있을 때 꼭 한번 사무실로 오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 며칠이 지나 초롱이가 정말 우리 사무실로 와주었다.
  
  초롱이는 그 사이 많이 자라 있었다. 코밑은 거뭇거뭇해졌고, 통통하고 뽀얗던 뺨은 약간 홀쭉해져 있고 무엇보다 전혀 아이스럽지 않았다. 초롱이는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였다.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 우리에게 초롱이는 체육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여전히 그늘 없이 밝은 표정으로 말하는 초롱이였지만 초롱이의 현실을 잘 아는 우리들로서는 그저 '그러냐! 잘 되면 좋겠구나!'라는 말만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학교에서 받아줄지 알 수 없고, 설사 초롱이를 받아주어 3년간 고등학생의 생활을 한다 해도 불안정한 것은 마찬가지이고, 3년의 학업을 마친다 해도 졸업이 아닌 수료에 불과한 것이 초롱이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더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는 없다.
  
  초롱이가 귀국해서 공부를 계속하면 초롱이의 현실은 좀 나아질까? 몽골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대부분이 실업자로 지낸다니, 그래서 대학교수도 의사도 교사도 기를 쓰고 한국으로 오려고 하는 상황이니 귀국해도 초롱이의 현실이 밝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이후 초롱이와는 연락이 끊어졌다. 그렇지만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자녀에 대해서나 국제결혼한 가정의 2세에 대해서 언급할 때면 초롱이가 생각난다. 궁금해지고 그리고 한편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은 했을까? 혹시 진학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까? 귀국했을까?'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초롱이가 성년을 맞기 전에 초롱이의 현실이 호전되기를, 그래서 한국에서든 몽골에서든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대를 이은 노동자'로서 여전히 한국에서 살다가 어머니처럼 임금이 체불되거나 아버지처럼 산재를 당해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게 되는 상황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만에 하나 그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아마도 나는 악몽을 꾸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초롱이의 악몽이 아니라 우리의 악몽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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