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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찰에게 필요한 건 뭐? '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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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찰에게 필요한 건 뭐? '염치'

[기자의 눈]자성의 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택순 경찰청장의 거취를 두고 경찰 내부가 소란스럽다. 이를 두고 한 법조인은 "한 마디로 아내 편을 들어도 시원찮을 남편이 부부싸움을 한 뒤 창피하게, 그것도 고부갈등이 심한 시어머니에게 일러바친 꼴"이라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의 늑장수사 및 외압 의혹에 대한 경찰 내부 감찰 내용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는데, 이 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측에서는 이를 두고 '창피한 짓'이라며 이 청장을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잘못 반성하는 모습이 우선

경찰 내부의 반발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당초 경찰이 내부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학배 전 서울경찰청 수사과장과 장희곤 전 남대문경찰서장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게다가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는 순간 한화그룹 고문으로 있는 최기문 전 청장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음을 감안하면 경찰이 전 경찰총수를 검찰에 고발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

또 '수사권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검찰과 일전을 벌였으나 신통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던 경찰로서는 이보다 비통한 일이 없을 것이다. 수사권 조정에 관해 '백기 항복'이라고 보는 경찰관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즉자적으로 이런 반응을 보이며 경찰청장의 사퇴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시민들이 보기에 잘하고 있는 일인지, 반발의 당사자들은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다름 아닌 재벌 총수의 '사적 보복'에 관한 문제였고, 이 의혹이 김 회장의 '소극적 자백'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 단계에서의 최대 관심사는 재벌의 영향력에 의해 경찰의 수사가 어떻게 무마됐었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그 늑장수사·외압의 의혹이 경찰의 내부 감찰에 의해 어느 정도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이 의혹을 명확하게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특히 이 의혹은 해당 경찰에게는 직무유기 혹은 뇌물수수, 한화 측에는 공무집행방해 혹은 뇌물공여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 혐의가 걸린 일이어서 단순하게 '감찰' 수준에서 넘어갈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해야 한다.

검찰 수사의뢰, 오히려 용기 있는 행동 아닌가?

이 청장을 비난하는 측에서는 경찰 내부 수사력만으로도 충분히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부 감찰'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게 흐지부지되곤 했는지를 무수히 봐 왔다. 그런 측면에서 경찰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 일은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강력한 수사력을 가진 두 기관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첫 걸음으로 이번 수사의뢰가 가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또 이 청장을 비난하는 측에서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을 통해 감사를 펼친 뒤 비위 사실이 드러나면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하는 방식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결국 검찰이 수사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수사권이 없는 감사원이 경찰의 비위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속 시원한 감사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나타내며 이번 파문을 지휘부의 '자질론'으로 몰고 간다면 시민들을 너무 무시한 이기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자중지란'이 아니라 과연 김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이후 경찰이 미온적인 수사를 벌인 데에 한화 측의 압력이 있었는지의 여부일 뿐이다.

이번 파문 계기로 검찰-경찰 견제의 시스템 구축해야

김 회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후 한때 검찰이 "적극 수사지휘를 하겠다"는 반응을 보여 검찰이 '불필요한 간섭'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고, 한창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내부 감찰' 얘기가 나오자 '일선 경찰의 수사의지를 꺾는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경찰이 김 회장의 혐의를 밝혀내도록 많은 응원을 했다.

그리고 늑장수사·외압 의혹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끈질긴 노력 끝에 김 회장의 혐의는 어느 정도 가려졌다. 이제는 재벌 혹은 '전관'이라는 권력에 굴한 경찰관을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이 작업에서 이택순 청장도 예외일 수는 없다. 경찰은 검찰에 피해 의식이 있는지 몰라도, 시민들에게는 검찰이나 경찰이나 마찬가지의 막강한 권력기관일 뿐이다.

더욱 간명하게 얘기하자면, 시민들은 이 외압 의혹을 경찰이 자체 조사하건 검찰이 수사하건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누가 하든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쪽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경찰에게 필요한 것은 '검찰에 우리 식구를 넘겼다'고 비통해 할 일이 아니라, 시민들 앞에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염치'가 아닐까.

더불어 이번 파문을 계기로 검찰도 비리 검사에 대해 과감하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함으로써 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세우는 동시에, 시민들로부터 '제 식구 감싸기'의 오명을 벗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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