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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축제'라고 들어는 봤나?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16>이주노동자와 함께 들어온 문화

이주노동자 지원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다른 한국인들보다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가 짧은 순간 그들의 삶의 조각들을 함께 나누게 되기도 한다. 많은 경우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분노를 함께 나누지만, 때로는 그들의 기쁨과 기원을 함께 나누는 기회가 오기도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지게 되면 커뮤니티가가 한국에서 존속하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많은 부분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국가별 혹은 민족별로 만들어지는 이주노동자 커뮤니티는 대부분 이들이 마음 편히(단속 걱정 없이), 한국인들 눈치 보지 않고 모여서 거리낌 없이 떠들고 놀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자연히 갖게 되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 내 나라 말과 내 나라 음식, 내 나라의 냄새가 그리워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서로서로 모여드는 이주노동자들의 갈망이 함께 만나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활동하는 이주노동자 커뮤니티로 네팔, 미얀마, 몽골,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커뮤니티 등이 있다. 그렇다고 국가별로 하나씩 있는 것은 아니고 민족별, 지역에 따라 한 국가라 해도 여러 커뮤니티가 있기도 하다. 이 이주노동자 커뮤니티들은 그 조직의 성숙 정도에 따라 축제, 기념행사, 스포츠대회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는데, 그 활동들이 한국인에게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과 때로는 자성거리를 주기도 한다.
▲ 미얀마 노동자들의 물축제 모습. ⓒ미얀마공동체

미얀마 커뮤니티는 매년 4월 중순경이면 물축제를 한다. '띤잔'이라고 하는 이 물축제는 그들의 달력으로 매년 새해가 시작되기 2-3일 전에 시작한다. 서로서로에게 물을 퍼부으면서 지난 해의 부정한 것, 나쁜 것들을 씻어내주는 의미가 있는데, 짐작하겠지만 젊은 청춘들에게는 '작업'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단지 물만 서로에게 퍼붓는 게 아니라 노래와 연주도 즐기는 등 가무가 함께 따르는데, 물축제가 끝나는 날이면 미얀마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절에 가서 새해를 맞는 기도를 드린다. 미얀마만이 아니라 태국에서도 '송크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물축제가 있다.

한국에서 공장에 다니면서 본국에서 하듯이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으니 미얀마 커뮤니티는 한국 책력으로는 4월 중순경 일요일에 미얀마인들 수백 명이 모여 물축제를 즐기고 노래도 부르고 연주도 하면서 즐긴다. 4월 중순이면, 찬물을 뒤집어쓰는 이 축제에 참석하여 물투성이가 되기는 사실 좀 부담스럽다. 그래서 여벌의 옷이 꼭 필요해지는데, 한국의 날씨가 나날이 아열대기후화 되어가니 몇 년 후에는 진짜 물축제를 즐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최소한 오뉴월쯤에 한국식 물축제라는 새로운 축제가 하나 탄생하여 우리도 즐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가하면, 북방민족인 몽골인들의 축제는 더운 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몽골에는 나담축제라고 전국민이 즐기는 대표적인 축제가 있다. 몽골 현지에서 나담축제는 아주 성대하게 열리는데 여기서 세 가지 스포츠 경기가 열린다. 씨름대회, 활쏘기대회, 말타기대회가 그것이다.

부흐라고 하는 몽골씨름대회는 씨름선수들이 출전하고, 활쏘기대회는 여성들도 참가할 수 있다고 하고, 말타기대회는 예닐곱 살부터 열서너 살 된 아이들이 참가하여 실력을 겨룬다고 한다. 민족적인 특성이 잘 나타나는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7월 16일 전후한 일요일이 나담축제일이 되는데, 비록 자연환경이나 스포츠 종목이 현지와 비교할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수백 명이 참여한다. 씨름대회는 씨름선수들 중 한국에 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참가하여 기량을 겨룬다. 한국에는 씨름선수 출신 몽골인들이 상당수 들어와 있는데 이주노동자 지역축제 같은 데에서 몽골 씨름대회가 열리면 출전하곤 한다.

때로 씨름선수가 아니지만 씨름을 할 줄 아는 몽골인들이 참여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자기네들끼리는 겨루지만 선수와는 겨루지 않는다고 한다. 씨름선수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렇게 구분한다고 한다. 정식 시합도 아니고 다같이 즐겁자고 하는 축제인데 굳이 그렇게 구별해야 하는가 싶어 '놀이인데 그냥 어울리면 안되는가'라고 물어보았더니 몽골에서 씨름선수는 상당한 존경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식 축제나 시합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의 권위를 손상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몽골씨름은 체급구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덩지가 큰 사람이 작은 덩지의 사람에게 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재미라고 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씨름대회를 할 때에는 출전선수들이 전통 씨름복장을 하고 시작한다. 전통복장은 양팔에 걸치는 상의와 팬츠에, 전통모자와 전통신발이다. 씨름복장은 몽골에서 선수였던 사람들은 대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몽골 노동자들의 씨름 모습.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이런 축제가 열릴 때면 말 그대로 축제스러운 분위기가 된다. 본국처럼 여러 날 즐길 수도 없고, 휴일에도 일해야 하는 동료도 있고, 본국과 비교하면 더없이 초라하겠지만 그래도 이주노동자들은 이 땅에서 1년에 한번 자기네 문화를 즐기기 위해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그런 날 전통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저들이 내 앞에서 '돈 못 받았어요', '일하다가 다쳤어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호소하던 이들인가 싶을 때가 있다.

활기차고 당당하고 아름답고 이국적인 모습들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그들을 보고, 그들과 함께 즐길 때면 '이 일도 할 만하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이들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실감도 든다.

우리 단체가 지원하고 있는 몽골공동체는 해마다 송년 기념파티를 하는데 그 파티가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을 연출한다.

몽골인들의 파티의 키워드는 샴페인과 케이크와 춤, 이 세 가지다. 샴페인과 함께 몽골인들이 최고로 꼽는 그 유명한 칭기즈칸 보드카가 등장하고, 케이크와 함께 몽골인들이 정말 좋아하는 초콜릿이 등장한다.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쌍쌍이고, 많은 사람들이 정장 혹은 정장에 준하는 차림을 입고 참석한다. 그리고 몇몇 여성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우아한 드레스(인형 옷이 아닌 진짜 드레스였다!) 차림의 성장을 하고 참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깨며 팔을 훤히 드러낸 붉은 드레스, 하얀 드레스, 금색과 은회색이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과 정장을 입은 단정한 남성들이 짝을 지어 가볍게 스텝을 밟으면서 플로어를 휘감아 돌기 시작한다. 그들 중에는 부부도 있고 연인도 있다. 이들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 짝을 바꾸지 않는다.

공간이 좁다 해도 어느 누구도 스텝을 서툴게 밟지 않고 어느 쌍도 부딪치지 않는다. 미끄러지듯 왈츠를 추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때만큼 그들은 '월급 못 받았다', '일하다 다쳤다'는 등의 근심어린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남성들은 단정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에티켓을 갖추고 있으며, 여성들은 화려하고 당당하다. 젊은이들은 활기가 넘치고, 나이든 이들은 정중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중년 여성들이다. 나이에 걸맞게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몸매의 중년여성들이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과 경륜이 쌓인 그 몸매를 흔들면서 춤을 추곤 한다. 그 여성들의 당당함 앞에서는 한국의 이른바 몸짱 기혼녀들은 아직 젖내 풀풀 풍기는 애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년 내내 섬유공장에서, 공사장에서, 쓰레기재활용공장에서, 전자회사에서 먼지 뒤집어쓰면서 하루 10-12시간씩 노동하고, 낯설고 긴장된 생활 속에서 일하다가 딱 한 번 고향에 온 듯 드레스에 정장을 갖춰 입고 외출을 준비할 때, 그들은 들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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