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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빼앗긴 술을 다시 농민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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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빼앗긴 술을 다시 농민들에게"

우리술 잃은 우리나라의 우리술 다시찾기 노력

"아따 이 맛이여. 이것이 소주제. 요즘 가게에서 파는 소주는 주정에다 물 타서 쓰게 한 것이지 소주가 아니제. 진짜 소주는 이렇게 독한 맛이 있어야 하는 거여. 그나마 요즘 도수가 계속 낮아져 영 아니랑께. 나가 중학교 댕길 적에 광에서 엄니가 담가 놓은 소주 한 병 다 나발 불고 뻗어 자다가 담날 아침까지 맞았단 거 아녀."

"어흐, 독해. 누나 '아이스 와인' 마셔봤어요?", "어, 나 아이스 와인 좋아해. 보통 와인보다 더 맛있어", "내가 괜찮은 와인바 한 군데 찾아냈는데. 언제 한 번 같이 가요."


10일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서 농림부가 주최하고 농수산물유통공사와 한국전통주연구소,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주관으로 열린 '2007 한국 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 행사장.
▲ 관서감흥로, 죽력고 등 우리 전통 가양주들을 맛보며 즐거워 하고 있는 시민들. ⓒ프레시안

'전통주 시음장'에서 선홍빛의 알콜도수 70도짜리 전통 소주 '관서감흥로'를 한 잔 걸친 60대 신사는 추억에 잠겨 같이 온 친구에게 어린 시절 집에서 빚던 술 자랑 하느라 목청을 높였다.

반면 맛은커녕 난생 처음 70도짜리 '진짜 소주'를 본 20대 청년은 화제를 와인으로 돌렸다. '우리 술'을 잃어버린 2007년 대한민국 술 문화의 현 주소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 맥주, 양주,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포도주까지 엄밀히 말해 국산은 하나도 없다. 제조법 자체가 우리 전통의 술과는 거리가 멀고 원료도 대부분 수입농산물에 의존한다. 가장 대중적인 술인 '소주'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증류를 해서 만들었지만 요즘은 주정과 물을 섞고 식재료를 첨가해 맛을 내는 희석식이다.

"우리 술 이렇게 다양한데…"

남산 한옥마을의 행사장에 가면 '우리 술'이 얼마나 다양한지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에서는 쌀이라는 공통된 주원료가 있지만 발효제인 누룩을 밀로 만드느냐, 보리로 만드느냐, 쌀로 만드느냐, 녹두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계절별 과일, 작물, 약초 등이 술과 결합해 지역별, 계절별로 다양한 술이 존재한다. 진달래꽃으로 맛을 낸 두견주, 국화꽃으로 맛을 낸 국화주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인삼 등 각종 약초와 계피 등의 감료를 술 빚는 데 이용해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빚은 술'이라는 가양주(家釀酒)의 형태로 다양한 술이 전해져 왔다. 그러던 것이 일제시대부터 수난을 당하기 시작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거의 숨이 끊어지기에 이르렀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이동필 박사에 따르면 1907년 '주세령'이 공포돼 집에서 술을 빚으려면 관청에 신고를 해야 했고 술에 비싼 세금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이 세금 부과 방식에 따라 1916년에는 다양하던 술이 약주, 탁주, 소주, 일본청주로 단순화됐다. 급기야 1917년에는 아예 집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했다. 이런 정책이 해방 이후에도 유지돼 오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밥 해먹을 쌀도 모자란다'는 이유로 1990년까지 25년간 쌀로 막걸리를 만드는 것조차 금지했다.

하지만 소득 증대에 따라 다양한 우리 술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고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고유의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전통주 제조업자가 조금씩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징세' 위주의 주류 정책으로 인해 전통주는 수많은 규제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 술 빚는 법을 재현하는 코너에서 술 빚는 방법을 묻고 있는 주부들. ⓒ프레시안

이제 술을 다시 농민에게로


특히 WTO와 FTA로 인해 농업 위기가 찾아오자, 농가 소득 증대 방안으로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전통주 생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동필 박사는 "쌀과 잡곡, 과일, 약초 등 우리 농산물로 빚은 전통주의 재현을 통해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증대해야 한다"며 "이는 국민들의 건강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주를 산업적으로 활성화할 필요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전통술뿐만 아니라, 궁중음식에서 안주류, 각종 해장국 등 전통음식까지 함께 체험할 수 있다. 행사는 11일까지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각 지역의 전통주 제조업체 및 단체, 그리고 (사)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다양한 술을 내놓고 있다.
"왜 안동, 평양, 제주의 소주가 유명한지 아십니까?"

최근 '와인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다. 수입 와인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며 와인이 또 하나의 술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그냥' 마시는 소주, 맥주, 양주에 비해 와인은 그 생산 지역, 원료 포도의 품종, 생산 방식 등에 따라 다양한 맛과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마셔야 제대로 즐길 수 있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맞춰야 하는 대기업 간부들이 뒤늦게 와인을 공부하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스트레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술은 알콜과 물의 혼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인이 어려운 것은 와인이 생산된 지방과 전통, 음식문화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 행사장에서 시음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전통 가양주들. 같은 막걸리라도 지역 특산품과 제조법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술 시장은 똑같은 맛의 맥주, 소주, 양주로 획일화 돼 있다. ⓒ프레시안

기본적으로 와인의 상표 이름은 지방 이름과 가문, 농장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와인도 일종의 가양주(家釀酒)인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전통술도 대부분 가양주다. 예부터 유명한 가문은 집 마다 비법으로 전수해 오던 술이 한 가지 씩 있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국전통주연구소 이상훈 이사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전통주가 다 있다"며 "중국은 옥수수, 멕시코는 선인장, 유목민은 말 젖, 유럽은 포도·보리 등 당분 기반이냐, 탄수화물 기반이냐의 재료만 다를 뿐 그들이 주로 접하는 농산물로 술을 빚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쌀이다.

술은 기본적으로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뉜다. 이 이사는 "증류주 제조법은 중앙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돼 세계로 퍼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증류주인 소주가 고려시대 원나라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사는 "예부터 유명한 소주로는 안동의 안동소주, 제주의 오메기 술, 평양의 관서감흥로를 꼽는데 세 지역의 공통점은 모두 원나라의 군사기지가 있던 곳"이라고 말했다. 일본 침공을 준비하던 원나라의 전초기지가 안동에 있었고, 제주에는 말을 기르고 훈련시키는 기지가 있었으며, 평양은 후방 병참기지가 있던 곳인데, 이 세 곳에서 소주가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와인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설명을 들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우리의 역사가 녹아 있는 소주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 속에 쉽게 들어온다.

다만 우리의 전통 가양주들은 '고급문화'의 일부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이사는 "우리나라 음식이나 생활양식에 대한 고문헌을 살펴보면 내용의 절반이 술 얘기"라며 "유명한 가양주들은 대부분 사대부들의 문화였다"고 말했다. 반면 민중들은 맛보다는 양을 중시해 쌀에 물을 많이 부어 빚은 술인 '농주' 정도에 만족했다는 것이다.

▲ 소주 내리는 모습. 증류된 소주가 감료 위에 떨어져 특유의 맛과 향을 지니게 된다. 본디 소주는 증류주였지만 요즘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희석식이다. ⓒ프레시안

일제와 근대화에 빼앗긴 우리의 술


그렇다면 현대적 의미에서 전통 가양주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이사는 "집에서 술을 빚어 내다 팔수 있도록 주류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농업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전통주에 세금이 낮아지는 등 규제가 상당히 완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제조업자는 일정 규모 이상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등 자유롭게 술을 빚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사는 "전통 가양주의 단점으로 품질의 균일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가가호호 다 술 맛이 다른 것이 가양주인데 단일한 균주로 술 맛을 통일하는 것은 맛의 다양성이라는 전통 가양주의 특성을 무시한 행정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사는 또 "언제까지 나라에서 주세로 재정을 채우고 있을 거냐"며 "농산물시장 개방시대에 농민들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양조 정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를테면 고창에 사는 농민 박 아무개 씨가 자기가 재배한 쌀과 감료로 맛 좋은 술을 빚어 서울 청운동의 한 음식점에 내다 팔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통 음식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술이라는 것이 '안주와의 궁합'이 중요한데, 우리 술이 단일화 되며 음식문화도 그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전통 가양주의 복원을 통해 음주문화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와인을 '원샷'하거나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가격 차이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소주 맥주는 '그냥 마시는 술', 와인은 '맛과 향을 즐기는 술'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술 찾기 힘들게 하는 주류산업구조 개편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점은 남는다. 그동안 많은 업체들이 전통주를 대중화 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다. 전통주가 일반 소주, 맥주에 비해 값이 비싼데다, 일부 독과점 상태의 주류유통 구조로 인해 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장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류 제조 규제 완화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 전통주 제조의 산업화다. 농촌경제연구원 이동필 박사는 "우리 술 좋은 것은 모두 알지만 왜 소비자들이 우리 술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구조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분석하고 개선해야 한다"며 "명실상부하게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이 규제 위주에서 지원 육성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획일적인 소주, 맥주, 양주 문화에서 벗어나 일반 술집에서 담양 오 씨네 집에서 빚은 '죽력고'나 양평 김 씨네 '삼해주' 같은 술을 맛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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