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이 사실상 타결 국면으로 돌입하면서 정치권의 찬반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29일부터 이틀 동안 열릴 예정인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쟁점인 한미 FTA 문제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를 비롯해 구여권 의원들이 잇따라 한미 FTA 협상 중단 단식 농성을 벌이는 등 정치권에 비판론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와 총리 인준안 표결은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등 거대 양당이 한미 FTA 찬성론자들을 청문특위에 대거 포진시켰고, 한미 FTA에 비판적인 의원들 사이에서도 총리 인준을 거부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저울추' 기울어진 청문특위
우선 첫 번째 관문인 총리 후보자 청문회가 유명무실하게 끝날 전망이다. 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특위 위원은 13명. 이 가운데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의원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열린우리당 홍미영, 민주당 신중식 의원 등 3명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소속의 고흥길, 윤건영, 주성영 의원과 열린우리당 소속의 박병석, 송영길, 김명자, 정의용 의원, 통합신당모임 우제창 의원 등 8명은 한미 FTA 찬성론자다. 한나라당 박승환, 진수희 의원도 쌀과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으나 사실상 찬성론에 가깝다. 특위 위원 면면만 봐서는 10대3의 싸움인 셈.
한나라-우리 "한덕수 검증과 한미FTA는 별개"
게다가 한미 FTA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막론하고 "청문회와 한미 FTA는 별개"라는 입장에서 동일하다.
열린우리당 측 특위 간사를 맡은 송영길 의원은 "전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한미 FTA 협상이 논의는 되겠지만 한미 FTA 협상과 한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별개"라고 말했다. 같은 당 소속 정의용 의원도 "국정운영을 해나갈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중심으로 물어야 한다"고 말했고, 김명자 의원도 "한미 FTA 청문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체로 한 후보자의 업무수행능력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김명자 의원은 "33년간 경제 관료로 일했고 총리 권한 대행도 하는 등 국정 전반을 관리할 총리로서의 자질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고흥길 의원은 "한미 FTA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기본입장은 찬성"이라면서 "협상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한덕수 후보자 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전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지난 2002년 한 후보자가 관여한 '마늘협상 빅딜 파동'과 관련해서도 고 의원은 "그 일로 책임을 지고 한 후보자가 사퇴를 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주성영 의원도 "사실상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총리인 만큼 국정수행 능력과 자질 등 전반적인 부분을 검증할 것"이라면서도 "한 후보자가 과연 적합한 총리인지는 청문회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문제 삼을 게 없다"고 말했다.
윤건영 의원은 "한나라당은 협상이 타결되는 경우 협상의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할 것"이라면서 "국가의 이익이 한나라당의 입장을 결정하는 최우선 기준"이라고 밝혔다.
다만 진수희 의원은 "FTA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국익을 위한 협상이 돼야 한다"면서 "한덕수 후보자 청문회도 FTA 문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청문회를 통한 검증과정을 좀 더 지켜보겠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소수의 비판론
이에 반해 한미 FTA에 비판적인 홍미영 의원은 "정부에서 보낸 총리 임명동의 요청서에는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대목이 있다"며 "정부가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책임을 한 후보자에게 부여하고 있는 만큼 한미 FTA 협상에 대한 후보자의 판단을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 2002년 마늘협상은 국익이나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데 미흡했던 협상이었다"며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한 후보자는 그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들추기도 했다. 그는 "한 후보자가 규제 완화에 역점을 두어온 신자유주의자, 신경제주의자라는 점에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고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한 후보자의 청문회를 별러온 강기갑 의원은 이날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쌀과 쇠고기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맹공하며 청문회에서 한미 FTA 협상 전반, 마늘파동 등을 주요 의제로 한 후보자에 대한 파상공세를 예고했다.
민주당 신중식 의원도 한미 FTA에 대해선 "별다른 실익도 대비책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협상 성적표도 알려지기 전에 표결 진행될 듯
이처럼 사실상 한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사실상 '거수기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내달 2일로 예정된 총리 인준안 표결이 보다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송영길 의원은 "별다른 난관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반대한다면 비준안 동의 표결에 반대해야지 총리 인준에 반대한다는 것은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의 압도적 찬성표가 예상되는 가운데 한미 FTA에 대해 찬성-반대-유보 입장이 3분된 열린우리당에서도 한 후보자에 대한 인준표결에선 찬성론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단식 중인 김근태 의원이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한미 FTA 체결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갖고 있다"고 밝혔으나, 의원들이 이에 동조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비판론에 선 홍미영 의원조차 한 후보자에 대한 분명한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총리 후보로 온 것도 아니고 한 후보자가 한미FTA협상의 전적인 책임자가 아닌 이상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한 책임 여부를 단지 한 후보자의 총리 인준동의에 대한 가부 여부로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중식 의원도 한 후보자의 총리로서의 자질에 대해서는 "총리로서는 적임자라고 본다. 능력 있고 정부 내에서 인정받는 인사"라며 높게 평가했다.
이에 따라 각 당이 표결에 대한 입장은 청문회를 지켜본 뒤 판단할 일이라고 미뤄둔 상태이지만, 한 후보자에 대한 반대표는 열린우리당 소속의원 소수와 민노당 소속 의원 9명, 천정배 의원 등 민생정치모임 소속 의원 10명 선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한덕수 후보자는 졸속적인 한미 FTA 체결을 위한 '영업 총책임자'가 아니냐"면서 "이밖에도 경제부총리로서 노무현 정부의 민생경제 파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노당은 명확한 반대 입장"이라고 분명히 했다.
민생정치모임 정성호 대변인도 "청문회를 보지 않고 찬반을 정하는 것은 성급하지만 만약 한 후보자가 청문회에서도 한미 FTA 협상이 잘 됐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면 좌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선 소속 의원들의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결과가 뻔히 보이는 표결의 거의 유일한 변수는 여론의 압박이다. 협상 타결 시점이 오는 31일로 예상됨에 따라 총리 인준안 표결이 이뤄지는 내달 2일까지 사흘간의 시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말과 휴일이 끼어있어 한 후보자 인준안 표결은 협상의 성적표가 제대로 나오기도 전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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