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지원활동 중에 활동가를 가장 많이 골탕 먹이는 일이 체불임금 상담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체불된 임금을 사업주가 지급하도록 하는 것인데, 돈을 못 준 (혹은 주지 않으려는) 사람과 받으려는 사람 간의 다툼이니 해결이 쉬울 리 없다. 그런데 그 해결보다 더 힘든 것은 '돈'을 둘러싸고 드러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지켜보는 것이다. 특히 상식을 아주 간단하고도 당당하게 뒤집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세상이 잘못 되어도 이렇게 잘못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한 달 치 급여 120만 원을 받지 못한 25살의 몽골인 밧다 씨가 상담소를 찾아 왔다. 밧다 씨의 체불임금에 대해 사업주는 무성의로 일관해 노동부에 진정했다. 며칠이 지나 담당 근로감독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업주가 본인 명의의 통장으로 보내겠다고 하니 통장사본을 사업주에게 보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밧다 씨는 본인 명의의 통장을 만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여권을 첫 번째 일했던 공장에서 압류당했기 때문.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여권은 본인이 소지하고 있어야 하지만 공장의 사업주들이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을 압류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됐어도 마찬가지다. 본인에게 돌려주라고 요구하면 회사는 오히려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데 회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심지어는 "도망가 버리면 누가 책임 질 거냐"고 따지기도 한다.
자신 명의의 계좌를 개설할 수 없는 밧다 씨는 우리 단체 명의의 계좌로 체불임금을 받기를 희망해 회사로 전화했다. 경리 담당자에게 본인이 자기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없어 우리 단체 명의의 계좌로 보내주기를 원하니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단칼에 "안돼요"라는 단호한 거절이 돌아왔다. "그랬다가 잘못하면 본인이 안 받았다고 우기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말씀은 맞는데 본인 명의로 된 통장이 없어요."
"알고 있어요."
"그리고 여권을 먼저 회사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장을 만들 수도 없어요."
"그것도 알고 있어요."
아주 당연하게 대꾸하는 그 말에 순간 화가 솟구쳤다. 이건 안 주겠다는 뜻이다.
"아니, 본인 명의로 통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 통장으로만 보내겠다는 거예요?"
발끈해서 뾰족하게 따졌더니 경리 담당자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상의해보고 연락드리지요."
며칠간 연락이 없더니 상담소로 전화가 왔다. 경리담당자였다. 단체 명의의 통장으로 보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냐"고 물었더니 지난 번에는 하지 않던 딴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있을 때 뭐가 문제였고, 뭐가 문제였고…. 그래서 안 주고 싶고…. 하여튼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예 돈을 못 주겠다는 식인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많은 회사가 체불임금을 받으려면 회사로 오라고 요구한다.
체불임금 상담을 하면서 많은 회사들이 체불임금을 계좌로 송금하기를 거절하는 것을 보는데, 그 이유가 본인에게 정확하게 전달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일처리를 하는 회사들은 인권단체의 계좌로 송금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인권단체를 임금지급에 대한 보증인으로 삼아버리면 일이 간단하게 끝난다. 혹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단체에 책임을 추궁하면 되니까.
그런데 반드시 찾아올 것을 요구하는 회사들을 가만히 보노라면 그 의중들이 참 다양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깎을 만큼 깎자.' : 찾아간 이주노동자의 급여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깎아서 준다.
- '너 죽고 나 죽자.' : 어떤 회사는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자)라는 신분상의 약점을 악용해 경찰에 신고해버린다. 불법체류자를 채용한 회사도 벌금을 물게 되는데 말이다.
- '골탕 먹이기.' : 분명히 오라고 한 날짜에 가면 사업주는 사라지고 다음에 오라고 한다.
- '감정배설.' : 어차피 줘야 할 돈, 감정이나 배설하자는 것이다. 임금은 주는데 미주알고주알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춰내서 일장 연설을 하면서 훈계를 한다. 혹은 인권단체를 찾아간 데 대한 불만을 유감없이 쏟아 부으면서 모욕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냥 찾아가서 월급 받으면 되지 그게 무슨 문제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회사의 그 요구에 따르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일하고 있는 회사에 하루 결근하고(당연히 하루치 임금을 손해 본다), 왕복 차비를 지출해야 한다. 밧다 씨 역시 그 회사가 있던 지역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체불임금에 대해 노동자가 자신이 받고 싶은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일일까? 본인에게 지급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라면 체불임금으로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배려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고, 실제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임금을 체불한 많은 회사들이 참 도도하게 군다. 마치 이주노동자들이 채무자이고 자신들은 채권자인 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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