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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본이 예술과 철학으로 무장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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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본이 예술과 철학으로 무장할 때"

[창비 주간논평]디지털 음악의 정치경제학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소리를 가두는 축음장치를 개발하면서 음악은 20세기 개막과 함께 음반으로 표상되는 산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 격렬한 전진의 세기가 거의 저물 무렵 음반의 형태는 마술처럼 사라지고 MP3라는 디지털 포맷의 음원(音原)이 SP 레코드에서 CD까지 진화해 온 음반의 시대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디지털 음원은 인터넷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통해 음악의 생산과 수용, 그리고 유통의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재편하는 중이다.
  
  문화산업의 총아로 꼽히는 영화와 제반 영상콘텐츠가 여전히 오프라인을 핵심 교두보로 삼는 것과 달리 음악은 온라인과 모바일 쪽으로 급격하게 헤게모니가 이전되었고, 십년도 채 걸리지 않아 PC와 핸드폰, 그리고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은 우리 일상에 동행하는 이른바 유비쿼터스 체제로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음악시장의 몰락과 독점체제의 시작
  
  혁명은 시대를 따라잡는 데 실패한 모든 반혁명 세력을 일거에 하관시켰다. 공중파 TV의 스타 시스템에 의존했던 기존의 영세한 음반산업은 순식간에 괴멸했으며 도소매상 체제의 음반유통 또한 단숨에 붕괴되는 비극을 피할 순 없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개시와 더불어 한국의 기존 음악시장은 어이없이 무너졌고, 이 땅의 음악 수용자들은 불법과 공짜에 길들여졌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음악산업 선진국에서처럼 기존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조화로운 공존은 도저히 불가능했던가? 음반의 소멸이 불가피했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IMF 환난사태를 전후해 밀어닥친 IT산업에 대한 전국가적 환상? 전근대적인 천민 음반자본에 대한 혐오? 담 밖에선 한류라는 돌개바람이 일었지만 탈일국주의(脫一國主義)의 천재일우의 기회는 빈곤한 내부의 인프라로 인해 무산되고 만다.
  
  이렇게 음반산업에서 음원산업으로 재편되는 와중에 중원의 패권은 선대 회장 시절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한 전력 말고는 음악과 별로 상관 없던 SK텔레콤으로 넘어간다. SKT의 음악시장 장악은 온라인상의 불법복제로 인해 유일한 유료화 모델이 모바일상의 음악 판매였다는 것, 그리고 국내의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단말기의 판매보다는 그 속에서 구현되는 콘텐츠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만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SKT는 원활한 음악콘텐츠의 수급을 위해 서울음반을 인수했고, 국내 음원 중 60% 이상에 대한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모바일뿐 아니라 온오프라인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손쉽게 확보했다. 더군다나 2005년부터 온라인상의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의 보호가 정책적으로 추동되면서 SKT는 온라인 음악서비스 싸이트 '멜론'을 개설하여 모든 유통과정을 일원화했다. 이는 오랫동안 중소기업보호법의 우산 아래 있던 한국의 음악산업을 이동통신 대기업이 원천 콘텐츠부터 유통 네트워크까지, 그것도 독점적으로 장악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보호를 명목삼은 배타적 독점
  
  하지만 한국의 SKT뿐 아니라 세계 디지털 음악산업의 선도기업인 미국의 애플도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DRM(디지털저작관리체제)의 배타적 독점에 관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저작권 보호를 명분으로 자사의 음원 데이터베이스는 오로지 자사의 단말기에서만 운용되도록 해서 다른 회사의 단말기와는 호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애플의 온라인 음악스토어 '아이튠스'의 음원은 같은 회사의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에서만 유효하지 다른 회사 제품에선 작동되지 않는다. SKT는 한술 더 떠서, 자신들이 확보한 인기신곡은 발매 후 일정 기간은 자사 사이트와 모바일로만 유통시키는 독점권을 거리낌없이 행사하고 있다.
  
  이를 아날로그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대입해보면 어느 인기가수의 새 음반이 특정한 회사의 앰프와 스피커축에서만 흘러나오는 이치와 같고, 나아가 그 음반을 특정한 음반 가게체인에서만 파는 셈이다.
  
  이는 명백히 소비자의 자유로운 향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가장 자유로운 쌍방향 소통 매체가 대자본에 의해 얼마든지 배타적으로 제어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애플은 반독점법으로 기소되었고, SKT는 공정거래위로부터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을 받고 유료로 구입한 MP3 음원의 이동성을 보장하는 호환체제에 합의한 상태다.
  
  그러자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예 DRM을 모두 폐기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자고 메이저 음반사들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자사 제품 사용자들의 단말기 사용실태를 분석해보니 아이튠스에서 구입하는 음원이 전체 사용량의 3%를 넘지 않더란 얘기다. 제일 먼저 배타적인 DRM으로 열매를 독식한 쪽이 시장을 장악하고 난 뒤 그것을 폐기하자고 하니 음반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다. 하지만 EMI 같은 굴지의 레이블이 잡스의 의견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저작과 제작의 권리는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가 대자본의 배타적 독점 논리 속에 갇히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향기를 잃는다.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정책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음악 패러다임을 위해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회원수 최대의 온라인 음악사이트 '벅스'가 DRM을 해제하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인터넷의 이상이 음악에서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 언어와 유통의 장벽을 넘어 어느 지역의 음악이 언제 어디서건 원하는 이의 가슴에 즉시 도달하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글로컬리즘(glocalism)이야말로 새로운 음악 패러다임에 적절한 용어다. 온라인과 모바일, 그리고 위성체제에 의해 구축된 새로운 미디어 네크워크는 강대국의 일방주의가 아닌 다국적 다원주의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고양시킨다.
  
  자본은 시장을 통해 성장했으며 테크놀로지를 통해 진보해 왔다. 이제 자본은 예술적 감수성과 철학적 성찰로 무장하여 자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때가 되었다. 그것이 이윤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더욱 효율적이며 인간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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