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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드시죠…안아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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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드시죠…안아줄 게요"

[현장] 프리 허그(Free Hug) 운동의 '빛'과 '그늘'

쌀쌀한 날씨가 이미 두터운 옷깃마저 움켜쥐게 만들던 지난 주말 저녁,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홍익대학교 앞 거리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즐거운 표정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 속에 우뚝 선 그의 손에는 '무료로 안아드립니다(Free Hug)'라고 쓰인 피켓이 들려 있었다.

추운 날씨 탓이었을까, 아니면 팍팍한 생활 속에 얼어붙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가 머리 위로 들어올린 피켓을 한동안 바라보던 기자는 '정말 안아달라고 해볼까'라는 '유혹'을 느꼈다. 그 순간, 길을 걷던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정말 자신에게 다가 온 사람을 와락 껴안아 줬다.

"고맙습니다." 짧은 인사말이 오간 뒤 피켓을 든 사람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다시 섰고, 길을 가던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날 기자는 홍대 앞 거리에서 프리 허그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을 3명이나 만났다.

'공짜'로 낯 모르는 행인을 안아주려는 사람과 그에게 안기려는 사람, 그들은 왜 안고 안기려는 것일까?

"나는 낯선 사람과 포옹을 통해 소통한다"
▲ 최근 시내를 걷다 보면 프리 허그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무료'로 낯 모르는 행인을 안아주려는 사람과 그에게 안기려는 사람, 그들은 왜 안고 안기려는 것일까? ⓒ연합뉴스

홍대 앞에서 만난 이색적인 장면의 두 주인공은 모두 이 어색한 포옹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프리 허그 운동을 직접 벌이고 있는 대학생 김모 씨. 그는 "사실 포옹이라는 행위는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고 말했다. 포옹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그에게 안겼던 직장인 백모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포옹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방법일까? 김 씨는 이 물음에 "세상이 팍팍하잖아요"라고 서슴치 않고 얘기했다.

"팍팍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자는 것이죠. 그리고 저 역시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마음의 위로를 받는 걸 보면 포옹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안아달라'고 했던 백모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 때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개개인으로 찢어진 도시 생활이 참 답답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프리 허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흥미롭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안겨보니 마음이 정말 따뜻해지는 것 같아 좋네요."

낯선 사람과의 포옹을 통해 인간 사이의 따뜻함을 나누자는 '프리 허그' 운동은 호주의 한 청년에 의해 시작됐다. 후안 만이라는 청년이 지난 2004년 '나홀로'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그의 친구를 통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전세계에서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 허그 운동가들이 모이는 홈페이지(www.free-hugs.com)에 따르면, 프리 허그 운동은 처음 시작된 호주를 비롯해 미국, 브라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남아프리카, 아일랜드, 그리스 등 유럽, 그리고 타이,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고루 퍼져 있다.

종교적 특성상 낯선 사람과의 포옹이 어려운 이슬람권을 제외하고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이같은 나라들의 공통점은 어느 정도 '서구화된 사회'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운동이 낯선 사람과의 포옹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적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따뜻함"

하지만 그저 해외토픽 거리로만 머물 수도 있었던 한 청년의 운동이 지구촌 전체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서구적인 문화'라는 배경을 넘어 안아주는 행위, 즉 포옹이 갖고 있는 힘에 있다.

임신 중인 둘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했던 하버드 학생인 마사 베크는 그의 책 <아담을 기다리며>(녹색평론사)에서 남편의 품에 안기는 '행위'를 통해 받았던 위로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존은 다른 팔을 둘러서 나를 가슴에 안았다. 그는 그때까지 두터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베개처럼 느껴졌다. 나는 옷 아래서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동안 나는 내 가슴 속의 조바심을 놓아버리고, 그날 해야 할 일들도 잊고, 아주 안전하다는 느낌만을 느꼈다. (…)

'바로 이거야'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짧고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손을 뻗쳐 서로에게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힘과 위안과 온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고립된 나를 벗어나 상대방의 온기를 통해 짧고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 프리 허그 운동은 포옹이 가진 그런 힘에 착안하고 있다.

김현수 정신과 전문의는 "어린 아이에게 스킨십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성인의 스킨십이 성적 친밀감이 아닌 정서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다"면서도 "그러나 껴안는 행위는 돌봄(care)의 의미이면서 환대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만큼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프리 허그 운동, 신자유주의에 치인 인간 영혼의 대반격"
▲ 결국 포옹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늘려보자는 프리 허그 운동의 취지는 '인간애의 복원'이라는 따뜻함을 담고 있으나, 이 운동의 확산 자체가 우리 사회의 삭막함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로이터=뉴시스

결국 프리 허그 운동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단절되어 가는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탈출구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갈증이 포옹이라는 행위가 갖는 정서적 치유의 힘을 만나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인 홍기빈 씨가 "프리 허그 운동의 전세계적인 확산은 올해의 가장 큰 뉴스"라며 이 운동을 극찬하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다.

홍기빈 씨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프리 허그 운동은 지난 15년 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치일대로 치인 인간 영혼의 반격"이라고까지 말했다.

"전세계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로 전환한 것은 15년 남짓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짜로 주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 모든 '거래'에는 돈과 같은 조건이 붙어 있다. 그야말로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손익분석을 통해 행동을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인 행동 방식이다.

관계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비롯해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 시대 속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모든 관계에 대가가 필요한 세상에 대한 인간 영혼의 반격"이라는 홍기빈 씨의 말은 그대로 프리 허그 운동이 보여주고 있는 '빛과 그늘'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이 메마른 관계에 대해 '반격'에 나섰다"는 이 운동이 뿜어내는 '빛'은 꼭 그만큼 "현대인이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그늘'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관계로부터 위로받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여성이면서 기혼자인 최희정 씨는 "프리 허그 운동을 벌이는 사람을 만나면 흥미로워 관심이 가기는 하지만 직접 안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매일 안아주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안길 필요는 없잖아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최 씨와 같이 '흥미롭긴 했지만 프리 허그를 경험해보고 싶은 유혹은 전혀 없었다'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대개 "낯선 사람과의 포옹이 특별히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옆 사람에게 안아달라고 하면 되는데 왜 굳이…" 등을 꼽았다.

이같은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프리 허그 운동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데는 주변의 가까운 관계로부터 위로 받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소통과 관계에 메마른 현대인의 피로감과 우울함이 낯선 사람과의 '조건 없는 포옹'을 통해 위안을 받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김현수 정신과 전문의 역시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싱글족이 많아지고 있어 정서적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는 행위 자체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현실"이라며 "포옹 조차도 잃어버린 사회에서 낯선 사람을 껴안으면서 친밀감을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돌봄이 부족한 사회(careless society)일수록 그런 운동이 더 호응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가 더 팍팍해질수록 낯선 사람을 통해서라도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갈증은 깊이를 더할 것이고, 프리 허그 운동과 같은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프리 허그 운동을 바라보면서 '인간애의 복원'을 생각해도 좋고 그저 '마음의 위안'을 느껴도 좋다. 다만 이 운동의 확산 자체가 우리 사회의 '그늘'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 '그늘'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길에서 만난 사람과의 포옹은 말 그대로 '일회적인 위로'일 뿐 근본적인 치유와는 거리가 먼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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