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의, 풀꽃평화연구소, 교보문고가 주최하는 '2006 환경 책 큰 잔치'는 지난 17일 개막돼 24일까지 계속된다. 이 행사는 시민들이 환경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2002년에 시작됐다.
<프레시안>은 '환경 책 큰 잔치' 실행위원회와 공동으로 11월 한 달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이번에 선정된 환경 책 29권에 대한 서평을 싣고 있다. <편집자>
<성장을 멈춰라!>, 이반 일리치 지음, 이한 옮김, 미토, 2004년.
어떤 기성의 학문적·사상적 틀도 단호히 거부하고 독창적인 통찰력과 혜안으로 산업사회의 모순구조를 파헤쳐 온 이반 일리치의 정신적 토대와 기본철학을 잘 보여주는 책. 지은이는 이 책 외에도 <학교 없는 사회>, <병원이 병을 만든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을 통해 학교, 병원, 에너지 등 이른바 '근대화'와 '성장'을 상징하는 여러 제도에 반기를 들고 근대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과 분석 작업을 한 바 있는데, 지난 2002년 사망한 지은이를 두고 가디언, 르몽드, 뉴욕타임스 등은 사후 특집기사를 통해 '20세기 최고 지성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책은 묻는다. 일반적인 주류 상식대로 '성장'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선(善)인가? 이에 대해 지은이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무한 성장하는 산업사회의 생산방식을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대신 자율, 공동의 도구 사용, 자율적인 인간행위의 상호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공생의 사회'를 주창한다.
특히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균형'이라고 강조한다. 삶의 '균형'을 통해서만 사람, 도구, 집단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공생적(convivial)'인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생적' 사회란 정치적으로 상호 연결된 개인에게 현대기술이 봉사하는 사회, 책임 있게 도구를 제한하는 사회를 뜻한다. 저자가 '성장을 멈춰라'라고 하는 이유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른 사람들을 최소한도로만 통제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가장 자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공생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유럽 여러 곳에서 교육을 받고 가톨릭 사제가 되었던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푸에르토리코와 멕시코 등 제3세계 민중사회에서의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와 산업주의라는 서구식 개발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폭력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제3세계 사회의 토착적 삶의 지혜와 민중의 생활조건을 파괴하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증언하였다.
그에 따르면, 산업주의 체제가 배격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빈곤이나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다운 위엄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조건을 갈수록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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