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의원들의 엉터리 해외세미나가 언론의 질타를 받은 일이 있었다. 필자는 의정활동을 시작한 지 5개월밖에 안된 초짜이지만, 지방의원들의 세미나라는 것이 대략 어떤 것인지를 간파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진행했다. 예산의 효율적 심사요령 및 기법 청취, 2007년 서울시와 교육청 예산안 사전설명회, 토론, 간담회(예결특위 합리적 운영방안) 등이 세미나 목적이었다.
예결특위 위원인 필자는 세미나에 참석해 12월에 있을 2007년 본예산 심의를 준비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세미나 개최 계획서 중 소요예산을 살펴보는 순간 참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의원 33명, 수행공무원 6명 등 전체 39명이 2박3일간 하는 세미나 예산이 무려 1650만 원이라니. 국내여비 1360만 원(의원여비 1160만 원, 직원여비 200만 원), 간담회 경비 290만 원 등이었다. 이 중 여비에 대해선 '개인별로 현금 지급'이라는 이상한 옵션도 달려 있었다.
비싼 경비가 소요된다 해도 타당한 사유가 있었다면 필자의 생각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부일정표를 들여다보니 더더욱 실망스러웠다.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세미나 및 간담회 일정은 첫 날 3시간, 둘째 날 5시간 등 총 8시간이 고작이었다. 제주도 관광과 저녁식사 후에 이뤄지는 소위 '2차'를 공식 경비와 일정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필자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지난 9월에 있었던 상임위의 세미나도 불참했었다. 당시 1박2일 일정으로 제주도(칼 호텔 숙박)에서 진행된 세미나는 첫날 간담회 2시간, 다음날 서귀포 관광이 일정의 전부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어떻게 가벼운 마음으로 세미나에 동참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 8월 필자를 포함한 비교섭단체(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 4명이 진행한 세미나는 분명히 이와 달랐다. 한나라당 소속 102명 의원들이 세미나를 하는 동안 우리도 향후 의정활동 준비를 위해 경기도 양평의 남한강 수련원으로 1박2일 일정의 세미나를 떠났다.
4명 중 3명은 예결위원이어서 하반기 추가경정예산 심의를 앞두고 사전준비가 매우 필요했었다.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3시부터 9시까지 강행군했다. 저녁식사도 수련원 식당에서 간단하게 때웠다. 뒤풀이는 방에서 했다. 서울에서 싸들고 온 맥주와 과일로 단출한 상을 차리고 서로를 알아가는 담소의 시간으로 보냈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강연과 토론, 수련회에 비교적 익숙한 필자로선 솔직히 남한강 세미나도 그다지 밀도 높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요한 비용만 가지고, 정말로 공부하려는 자세로 진행됐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예결위 세미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자 한 동료 의원이 핀잔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매일 일만 해야 하는가. 의원들끼리 단합도 도모하고 바람도 쐬어야 더 좋은 의정활동이 나오지 않겠는가."
속으로 되물었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소양을 쌓는 일인지, 아니면 친목 도모인지를 먼저 분명히 하자고. 친목 도모라면 갹출해서 가자. 회기 중이 아니거나 조금 한가할 때 자기 돈 들여서 가는 여행이라면 제주도뿐만 아니라 해외로 나가도 좋다.
하지만 공부와 의정활동이 목적이라면 내용을 충실히 하자. 흉내만 대충 내고 공부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 않은가. 또한 그 역시 서울시민들의 혈세로 충당되는 만큼 멀리 갈 생각 말고 가까운 곳에서, 가장 저렴한 장소에서 하자.
여담 한마디. 제주도 세미나 계획이 나올 때마다 언젠가 남편과 함께 했던 제주도 여행길에 묵었던 1박에 3만2000원 짜리 나무숲 울창한 휴양림 숙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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