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9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등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여권 일각의 'DJ 대북 특사'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 자격의 방북에는 의욕을 보였다.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야"
우상호 대변인의 비공개 면담 브리핑에 따르면 예상대로 김근태 의장은 "최근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이 특사로 북을 방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우리당 내에 많이 있다"며 특사 자격의 방북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특사로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특사는 대통령 생각을 잘 읽는 정부 사람이 가서 대통령을 만나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개인 자격으로 가서 이야기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은 다만 "남북문제를 푸는 데는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미국 네오콘들은 북한을 더 압박해서 궁극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을 더 큰 목적으로 삼고 있다"며 "미국에서도 네오콘들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네오콘과 부시 행정부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나가야 한다"면서 "어떤 경우에든 한반도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입장을 미국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을 좋아하지만 정책을 반대한다고 말할 때 미국 사람들도 수용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6.15 없었으면 지금 공황상태 됐을 것"
김 전 대통령은 한편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조언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 지지자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주로 남북 문제와 경제 문제를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있어 평화가 제일 중요하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평화가 없으면 지켜질 수 없는 것"이라며 "6.15 공동선언 이후에 얼마나 긴장이 완화됐나. 만약 6.15가 없었다면 최근 북핵문제가 발생했을 때 거의 공황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경제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데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빈부격차 문제가 나타나게 돼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복지가 없으면 세계화 시대에 약자들이 피해를 많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경제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산층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한미 FTA와 관련해 지지층의 이탈을 우려하는 원혜영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선 "장사꾼 시각에서 장사판이 더 넓어지는 것은 좋은 것"이라며 "미국은 제일 부자나라이며 장사하기 제일 좋은 나라이므로 장사 한 번 잘 해보자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조선과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세계와 경쟁하며 1위를 차지하는 업종이 많다"며 "우리의 저력으로 볼 때 겁을 낼 필요가 없다. 그것이 장사의 계산이다"고 말했다.
한편 면담 모두에서 김근태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의 최근 부산대 강연에서의 목소리는 1971년 장충단 공원 연설과 비슷했다"고 치켜세웠고, 김한길 원내대표도 "르몽드 디플로마띠끄 인터뷰와 부산대 강연은 시력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면 좋아지듯이 많은 것이 선명하게 이해됐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그런 정도는 얘기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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