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공원 조성을 둘러싼 서울시와 건교부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과의 회동 이후 예고한 대로 2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 불참했다. 건교부가 서울시의 반대를 무시한 채 '용산 민족-역사 공원 조성 및 주변지역 정비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강행하는 데 대한 항의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야당 소속인 상황에서 역시 야당 소속인 서울시장이 중앙정부에 강력하게 맞서는 모습은 단순한 정책적 이견을 넘어서는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건교부의 대립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시 "건교부는 용산공원 녹지화를 원치 않는다"
서울시 최항도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반환되는 용산미군기지 부지 일부를 개발하여 상업지역으로 매각함으로써 기지이전 비용을 충당하려는 정부의 의도에 대해 반대하고 부지 전체를 온전하게 공원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정부에 전달했지만 "정부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원부지 일부를 주상복합아파트 등 주거시설과 상업시설 등으로 용도변경·매각·개발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조항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강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특히 문제 삼고 있는 조항은 건교부 장관에게 용도 변경 권한을 부여한 특별법 14조다. 현재 용산공원 부지는 공원 조성이 가능한 '자연녹지지역'으로 설정돼 있다. 용산 미군기지가 있던 자리에 자연 공원을 만들 생각이라면 굳이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건교부가 굳이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용산기지 부지를 자연공원으로 조성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서울의 요충지인 용산 일대의 개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시 요구는 거절하며 비용만 전가하는 중앙정부의 횡포"
게다가 건교부는 23일 특별법 제47조 비용부담 항목에 애초 '국가'로 돼 있던 공원의 설치, 관리 비용 부담의 주체를 '국가와 서울시'로 바꾼 수정안을 공개했다. 서울시가 발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는 이날 '건교부 수정법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해 "서울시의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서울시에 비용을 부담시키는 조항을 추가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며 "건교부의 이런 태도는 법안 발의권을 가진 정부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또 "서울시는 용산공원 부지 전체를 온전히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입장 변화가 법안에 반영될 경우 공원 조성비용의 일부를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교부 "서울시, 왜곡된 선전으로 여론 호도 말라"
한편 서울시의 이런 태도에 대해 건교부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서울시가 정부의 의도를 무시한 채 사태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기지 공원화는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완성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그 역사성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할 뿐이라는 것이다.
23일 발표한 특별법 수정안에서도 서울시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했다는 게 건교부의 입장이다.
수정안에서는 14조에 "용도지역의 지정 또는 변경은 용산공원의 효용 증진과 기존 시설의 합리적 활용을 위한 시설에 한한다"는 규정을 첨부하여 공원의 무분별한 개발 가능성을 막았다는 것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서울시와 협의 과정에서 용산 기지 부지 81만 평을 모두 공원화하되 문화, 여가시설 조성 등을 위해 제한적인 용도지역 조정이 불가피함을 강조했는데도, 서울시가 마치 정부가 몰래 이를 개발할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 "시민들은 용산공원에서 빌딩이 아닌 숲을 보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건교부보다 서울시의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녹색연합, 문화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건교부의 용산공원 개발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한 데 이어 24일에도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열린 장소에서 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용산공원은 상업적 개발이 배제된 순수한 녹지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서울시의 입장에 가세한 셈이다.
서울시는 시민들 역시 용산공원이 상업적으로 개발되기 보다 '서울의 허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원한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가 건교부가 마련한 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여 이를 철회시키겠다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뉴타운 개발 공약 내건 오 시장, 건교부와 언제까지 맞설까?
하지만 건교부와 맞서는 오 시장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일종의 정치적 제스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방선거 당시 강북 뉴타운을 50곳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처럼 강력한 개발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던 오 시장이 용산공원 문제에 대해서만 유독 환경친화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오 시장의 진정성이 종종 의심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 시장은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각종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면 중앙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오 시장은 강북 뉴타운 개발 공약 이행의 어려움을 무릅쓰면서 계속 건교부와 맞설 수 있을 것인가. 건교부와 서울시의 대립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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