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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 현대 누아르의 수작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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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 현대 누아르의 수작을 만들다

[특집] 다시 만나는 마이클 만의 세계 <마이애미 바이스>

마이클 만은 범죄의 세계에 뛰어든 남자들을 즐겨 다뤄왔다. 장편 데뷔작 <도둑Thief>(1981)은 물론, 한니발 렉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매력적으로 세공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맨헌터 Manhunter>(1986), 그리고 '마이클 만 스타일'을 응축한 <히트>(1995) <인사이더>(1999) <콜래트럴>(2004) 등이 모두 그랬다. 마이클 만은 위기에 빠진 남자들이 비정한 도시를 무대로 생존 다툼을 하는 치열한 이야기를 묵직한 스타일로 그려냈다. 하지만 마이클 만은 그 흔한 아카데미 상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으며, 데뷔작 <도둑>을 제외하고는 칸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은 적도 없다(오직 <인사이더>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단 한 번 올랐을 뿐이다). 1943년 생인 그는 TV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이자 연출자로 세월을 보내느라 자신과 동세대의 감독들보다 약 10여 년 늦게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처럼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박스오피스 흥행작을 만든 것도 아니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나 마틴 스콜세지처럼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오가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품을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이클 만은 그가 가장 흥미를 느끼며 잘 만들 수 있는 장르인 현대적 범죄-누아르-스릴러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거장이다.
마이애미 바이스 현장의 마이클 만 ⓒ프레시안무비
. 버디무비의 거장 마이클 만 영화의 정수는 <히트><인사이더><콜래트럴>이라는 세 편의 영화에 농축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데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거의 없는 두 남자가 도덕적 딜레마에 질문을 던지고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묘한 이야기를 그린 '버디 스릴러 삼부작'이다. 이 영화의 남자들은 모두 자기 일에 철저한 프로페셔널이다. <히트>의 프로 범죄자(로버트 드 니로)와 LA 경찰국 강력계 수사반장(알 파치노), <인사이더>의 재벌 담배 회사의 연구원(러셀 크로)과 CBS의 베테랑 프로듀서(알 파치노), <콜래트럴>의 냉혹한 살인청부업자(톰 크루즈)와 10여 년 경력의 택시 운전사(제이미 폭스)가 바로 그들이다. 물론 이 주인공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친구(buddy)'는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서로의 '전문성(professionalism)'을 인정하고 자신들이 처한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질문을 던지며, 결국은 평행선 상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이 영화들을 변형된 '버디 무비'라 해도 무방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위의 스릴러 삼부작에서 돋보였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캐릭터에 대한 탐구다. 마이클 만은 남자들의 고독과 절망을 깊숙이 파고드는 데 일가견을 보였다. <히트>에서 범죄자 닐은 동료 부하들의 가족을 지키는 데 힘을 쏟지만 정작 자신은 인생을 함께 할 반려자가 없어 외로워 하는 인물이다. 또한 강력계 형사 빈센트는 결혼에 몇 번씩이나 실패했지만 가정을 돌보기에는 지나치게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인사이더>에서 거대 기업의 일급 비밀을 알게 된 연구자 제프리 와이갠드와 시사 프로그램 연출자 로웰 버그먼은 각각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거대 조직에 맞서면서 실존에 위협을 느끼는 인물들이다. <콜래트럴>의 두 주인공 역시 다르지 않다. 택시 운전사 맥스는 언젠가 고급 자동차 매장을 운영하리라는 꿈을 간직하고 있으나 10여 년 넘게 제자리에서 맴도는 인물이다. 살인청부업자 빈센트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킬러의 길에 들어서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이클 만은 보통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언제나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어른 남자들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격렬한 범죄 세계에 대한 피상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마이클 만의 집요한 캐릭터 구축 덕분이다. 평범하고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낭패감이 호소력 짙게 전달되는 것이다.
마이클 만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그가 들려주려는 이야기와 그가 보여주려는 인간의 유형이 지극히 '영화적인(cinematic)' 요소를 통해 표현된다는 데 있다. 마이클 만은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TV 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1984~1989) 시절에도 일종의 '트렌드세터'로 이름을 날렸다. 돈 존슨과 필립 마이클 토머스를 스타덤에 등극시킨 이 TV 시리즈는 뮤직비디오에 버금갈 정도로 스타일리쉬한 음악과 영상으로 명성을 떨쳤다.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 바이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1980년대를 풍미한 트렌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시각과 청각에 최고의 쾌감을 선사하는 마이클 만의 장기는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발휘된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던 마이클 만은 장편 데뷔작 <도둑>에서 전설적인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밴드 탠저린 드림을 음악감독으로 영입했으며, <알리>(2001)에서는 1960년대의 주옥 같은 흑인 음악과 아프리카 민속 음악으로 스크린을 수놓았다. 트레버 존스가 작곡한 <라스트 모히칸>(1992)의 주제음악은 1990년대 최고의 사운드트랙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콜래트럴>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곡과 요한 세바스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멕시코풍의 라틴 음악을 종횡무진 선곡했으며, 이번 극장판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는 린킨 파크의 명곡 'Numb'을 샘플링한 오프닝 곡을 선사할 정도로 광범위한 음악적 취향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마이클 만 영화의 음악과 사운드는 단순한 전시 효과가 아니라 그가 하려는 이야기와 주제, 형식과 스타일을 철저히 고려해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 만은 현장에서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그가 영화의 비주얼을 창조해내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까다로운 취향과 감식안을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둑>에서 시작된 밤과 도시에 대한 마이클 만의 관심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맨헌터>는 그에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이후로 건축물을 스크린에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감독'이라는 찬사를 안겨주었다. <히트>는 또 어떤가. 로버트 드 니로가 하룻밤 연인과 함께 LA의 야경을 내다보며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대책 없이 낭만적인 장면, 또는 대낮의 전장터를 방불케 하는 도심 한복판의 격렬한 총격전에서 마이클 만은 할리우드의 다른 어떤 감독과도 다른 장중한 시각미를 선사했다. 그의 미학적인 실험은 <콜래트럴>에서 다시 한번 다른 차원으로 도약했다. <게이샤의 추억>으로 올해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디온 비비가 카메라를 잡은 <콜래트럴>은 'HD 카메라의 미학을 필름 영화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첫 번째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HD 카메라의 고감도 촬영 덕분에 우리는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도시의 스펙터클을 체험할 수 있었다. 기술의 진화에 따른 영화 미학의 진화가 <콜래트럴>에서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 만은 디온 비비와 다시 한번 파트너쉽을 이뤄 <마이애미 바이스>에 뛰어들었다. . 버디 스릴러 삼부작에서 한발 나아가다
마이애미 바이스 ⓒ프레시안무비
<마이애미 바이스>는 마이클 만이 창안한 TV 시리즈에서 소재를 가져왔을 뿐, 영화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포장된 작품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마이애미는 1984년의 그곳과는 전혀 다르다. 마이클 만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의 마이애미는 "작은 마을보다는 컸지만, 작은 도시보다는 작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중앙 아메리카라기보다는 남아메리카에 더 가까운, 거대한 코스모폴리탄으로 변해버린" 도시이다. 따라서 이렇듯 변화한 마이애미를 담아내기 위해서 마이클 만은 훨씬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것은 바로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와 쿠바의 아바나, 파라과이와 콜롬비아, 그리고 남미 대륙의 끝인 이과수 폭포를 아우르는 거대한 범죄 조직의 커넥션을 파헤치는 작업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플로리다의 비밀경찰 리코(제이미 폭스)와 소니(콜린 패럴). 마이애미의 나이트 클럽을 돌며 범죄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던 이들은 비밀리에 연락해온 정보원이 노출된 뒤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바로 마약 운반책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범죄 조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기밀이 어떻게 누설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코와 소니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마약 커넥션이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조직의 우두머리인 헤수스 몬토야에게 접근한 두 사람은 조금씩 마약 커넥션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고, 그 가운데 조직의 자금책인 아시아 여성 이사벨라(공리)를 알게 된다. 소니를 눈여겨본 이사벨라는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리코의 여자친구이자 경찰 요원인 트루디(나오미 해리스)가 조직에 노출되면서 이들의 작전은 위기에 처한다.
마이애미 바이스 ⓒ프레시안무비
일단 <마이애미 바이스>는 두 남자가 주인공인 범죄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 앞서 말한 '버디 스릴러 삼부작'과 형태가 유사하다.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는 마이클 만의 전작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길을 향해 간다. 이 영화에서 리코와 소니라는 두 주인공은 서로 대립하는 인물이 아니라 함께 비밀 수사에 나서는 파트너이다. 따라서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마이클 만의 관심은 위기에 빠진 두 남자가 서로 대립하다 동화되는 과정을 그리는 게 아니다. 마이클 만의 전작들에 비해서 리코와 소니라는 캐릭터는 디테일이 훨씬 부족한 편이다. 그들의 개인적인 관심과 취향, 과거사와 현재 겪고 있는 삶의 고통 따위는 이 영화의 표적이 아니다. 소니는 자유분방하고 터프한 인물이며, 리코는 그와 반대로 치밀하고 지능적인 형사로 설정돼 있을 뿐이다. 오히려 <마이애미 바이스>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캐릭터는 공리가 연기하는 이사벨라다. 이사벨라는 마이클 만의 전작들에서 우리가 봐왔던 프로페셔널한 여성이다. 누아르 영화의 팜므 파탈 같은 이사벨라는 열일곱 살 때부터 마약 커넥션에서 일을 해왔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헤수스 몬토야의 정부이기도 한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갖추고 있으며, 사랑에 빠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다 어딘지 비극적인 정조까지 풍긴다. 마이클 만이 전작들에서 여성 캐릭터에 이토록 큰 비중을 둔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마이애미 바이스>는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는 셈이다. 또한 <마이애미 바이스>는 마이클 만이 오랜만에 시나리오 크레딧에 단독으로 이름을 올린 영화다. <히트> 이후 거의 10년 만에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연출을 한 것이다. 더구나 <마이애미 바이스>가 다루고 있는 세계는 과거 마이클 만의 영화들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깊다. 그는 실제 특수 경찰과 마약 조직원들을 충실히 취재했으며, 이를 토대로 콜럼비아에서 마이애미에 이르는 마약과 돈의 유통 경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비밀 경찰들의 조직 잠입 방법과 수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우여곡절, 조직 내부의 역학 관계까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비록 캐릭터 묘사에 있어서는 이사벨라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는 소니와 리코가 뛰어든 위험한 남자들의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는 전작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역시 이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뜬금없는 낭만성과 감정에 호소하는 대사들이 포함돼 있다. 역시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도 범죄와 폭력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들을 통해서 인간 삶의 어떤 정수를 포착하고자 한다. . HD로 빚어진 누아르 풍경
배우들과 촬영 상의 중인 마이클 만 ⓒ프레시안무비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디온 비비와 마이클 만의 파트너쉽은 더욱 견고해진 듯하다. 마이클 만은 이 영화에서도 디온 비비 특유의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매혹적인 색채 감각을 십분 살려내고 있다. 영화의 서두를 장식하는 클럽 장면은 <콜래트럴>의 코리아타운 클럽 신에 버금가는 숨 막힐 듯한 관능성으로 채워져 있다. HD 카메라가 포착하는 밤 풍경 역시 더욱 과감하다. 초반부 리코와 소니가 정보원과 연락하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마이애미의 밤은 대단히 시야가 넓고 깊게 잡히기는 하지만, 감도를 너무 높인 나머지 입자가 거칠게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다시 한번 스펙터클로 승화된 HD 촬영의 파워는 상당히 위력적이다. 마이클 만은 LA 도심을 누볐던 <콜래트럴>보다 훨씬 더 박력 있는 비주얼을 과시한다. 새벽녘 카리브해를 질주하는 스피드 보트의 현란한 움직임과 웅장한 스케일은 바로 HD 카메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클라이맥스의 총격전 역시 HD 촬영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명장면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마약 조직과 경찰의 일대 격전을 담은 이 장면은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총을 든 사내들의 어깨 너머에서 함께 움직이는 카메라는 관객의 시선을 극중 인물들의 시선과 같은 높이에 둠으로써 더욱 리얼한 자극을 선사한다. HD 촬영이 살려낸 극대화된 리얼리티 덕분에, <마이애미 바이스>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히트>의 마지막 공항 총격전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을 스크린 위에 정교하게 되살려낸다. 또한 귀청을 울리는 총기음은 <히트>의 LA 도심 총격전 못지않게 정교하게 계산된 사운드 효과로 무장했다. 비록 <콜래트럴>만큼 매혹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마이애미 바이스>의 거침없고 과감한 영상미와 치밀한 이야기는 다른 미국영화들이 흉내낼 수 없는 어떤 높은 지점에 도달해 있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마이클 만이 다시 한번 거장의 노련한 손길로 빚어낸 현대 누아르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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