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란의 핵심은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의 공동 주관으로 25일 열린 '한국형 임금피크제의 성공적인 정착방안 토론회'의 논란도 결국은 이 문제에 집중됐다.
"고용연장의 측면 강조하는 일본과 달리 국내에선 인력비 절감 목적 커"
임금피크제란 근속연수에 따라서 일정한 시기에 이르면 임금을 점차 줄여나가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거나 정년을 연장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일본의 시니어사원 제도를 본따 국내에 도입된 이 제도는 IMF 사태 이후 몇몇 기업에서도 이미 도입해 시행 중이다. 또 최근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대비책으로 고령인구의 고용 보장 차원에서 이를 적극 검토하고 지원방안을 내놓으면서 이와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시니어사원 제도의 취지가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양질의 노동력 부족현상에 대비하고 고령인력에 대한 고용 보장에 있는 반면 국내의 경우 본래 목적에서 다소 벗어나 인력비 절감의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날 토론회에 나온 전문가들 역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임금피크제에는 정년연장형과 정년보장형의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정년연장형의 경우 일정 시기부터 삭감된 임금을 정년이 연장된 기간 동안의 고용을 보장하는데 쓰겠다는 취지이며, 정년보장형은 기업의 인력비용 부담을 줄여 조기퇴직 등을 막고 불안정한 고용을 정년까지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정년연장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일부 정년연장형을 실시하는 기업의 경우에도 정년연장 기간을 5년간 보장하는 일본과 달리 국내 기업은 대부분 1년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국내에 도입되고 있는 임금피크제의 목적이 고령인력의 활용 및 고용이라는 일본 기업들의 목적과 달리 인력비 절감의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지만 교수도 "국내기업의 임금피크제는 고령화에 대비한 제도라는 의미보다는 기업 구조조정의 대안으로서 제시되고 활용되고 있는 듯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를 2003년에 도입한 대한전선의 경우 정리해고의 대안으로 노조가 이 제도의 도입을 제의한 것이었으며, 서울신문(2005)은 '어려운 기업사정'이 도입 배경이 됐다. 대한전선은 노조가 주도해 이 제도를 도입한 특이한 경우지만 이 역시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 해소 차원이었기 때문에 같은 취지로 설명될 수 있다고 이지만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청년실업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함께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특이성을 지적했다. 고령인력의 고용기회를 보장해줄 경우 청년인력의 실업난이 가중될 수 있는 탓이다. 이 교수는 이같은 상황에서 "임금피크제가 순수하게 고령인력의 활용 차원인지, 그리고 임금피크제의 효과가 고령인력 활용을 강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내 기업경영자의 경우 비용부담 절감 차원에서 임금피크제를 인식하고 있는 반면 종업원은 정년보장 및 연장의 관점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어 "바라보는 관점이 상충되어 있다"는 점도 국내 도입 시 우려되는 사항이다. 상충된 관점에서 비롯된 노사간의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 '우려'…경총 "기업의 임금부담 해결 위해 임금체계 개선 필요"
이날 종합토론에서도 이같은 인식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정년보장형이란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의 변형된 형태이며 정년연장형의 경우도 사용자인 기업 쪽에 유리하게 설계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경은 민주노총 정책부장도 50대 이후에도 사교육비나 주거비 등의 지출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같은 제도가 여러 면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경은 부장은 "유럽연합 기준으로 26.6%가 저임금 노동자인 우리 현실에서 저임금에 대한 해결책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부장용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정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는 이와 상반되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김정태 상무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현행 임금체계 하에서는 기업의 임금부담이 크다"며 "이 때문에 명예퇴직이나 비정규직화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임금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목적이 인력비 절감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본과의 차이점으로 부각되는 정년연장형 사례의 부족에 대해서도 김 상무는 "정년연장형의 경우 우리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사치"라며 "이제 노조도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유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관점에서 '불이익' 판단해야…불이익한 경우 과반수 동의 필요"
이같은 인식의 차이는 이 제도의 도입과정에서 갈등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 박종희 고려대 교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해 이 제도가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라면 관계없지만 만약 이 제도가 노동자의 노동조건 등을 악화시키는 불리한 변경이라고 판단될 경우 과반수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종희 교수는 정년보장형의 경우는 노동자에게 명백히 불이익한 변경이 되므로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정년까지 보장받을 수 있던 임금이 원래 보장받던 정년을 대가로 삭감되기 때문이다. 또 박 교수는 "일정 연차가 됐을 때 임금피크제의 수용과 명예퇴직 중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경우 이는 정리해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에는 이것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의 변경으로 판단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삭감되는 임금의 정도와 연장되는 고용기간이 적절히 상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불이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역시 논란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박 교수는 "불이익 여부의 판단은 사용자의 관점이 아니라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며 개별 노동자의 주관적 관점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라는 객관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사회로의 길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의 해결사처럼 취급되고 있는 임금피크제. 이날 토론회는 임금피크제의 확대 도입에 앞서 도입 초기부터 이미 발생하고 있는 각종 부작용 및 우려 사항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포괄적 고민이 절실함을 재확인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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