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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동 수재와 닮은 꼴, '망원동 수문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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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동 수재와 닮은 꼴, '망원동 수문 붕괴 사고'

84년 이재민들 집단소송으로 54억여원 배상 받아

지난 주말 집중호우로 인해 서울 한강 안양천 제방이 붕괴돼 양평동 일대에 물난리가 났다. 특히 제방 붕괴의 시작 지점이 지하철 9호선 공사구간인 것으로 알려져 주민들이 지하철 시공사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 준비에 나섰다. 안양천을 가로질러 지하철을 놓기 위해 제방을 허물었다가 다시 지었고, 그 과정에서 제방이 부실하게 지어졌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22년 전인 1984년 9월 일어난 망원동 유수지 수문 붕괴 사건을 주목할 만하다. 당시 사흘 동안 3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자 수문이 붕괴돼 수천 가구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사건이다.

당시 망원동 주민들은 서울시가 수문의 위치를 변경해 다시 짓는 과정에서 부실시공을 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원이 '인재(人災)'임을 인정해 서울시로 하여금 피해 주민들에게 54억 원가량을 보상하도록 결정했다.

현재 수해 피해를 입은 양평동 주민들도 이번 수해를 일찌감치 '인재'로 규정하고 집단소송을 낼 채비를 하고 있다. 망원동 사건에 대해 살펴보고, 당시 사건을 통해 이번 사건을 전망해본다.

▲ 1984년 망원동 유수지 수문붕괴 사고 당시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망원동 수문 붕괴 사건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일부는 한강에 인접한 저지대로 상습 홍수피해 지역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평소에는 모인 물을 모아 한강으로 흘려보내고 호우 등으로 인해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수문을 닫아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는 유수지를 1974년에 설치했다.

그러던 중 1979년 성산대교 인터체인지 공사로 인해 배수관로 및 수문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다시 짓게됐다. 그러나 새로 지은 수문이 5년 뒤 집중호우에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면서 한강 물이 범람하고 만 것이다.

과거 물난리가 나면 '하늘 탓' 하는 게 전부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망원동 주민 한정자(당시 29세. 여) 씨의 주도로 마을 주민들이 서울시와 시공사인 현대건설 등을 상대로 "수문을 잘못 지어 붕괴했다"며 집단소송을 냈고, 이들은 5년10개월의 법적 다툼 끝에 결국 승소했다. 당시 소송을 맡은 변호사는 <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였다. 이후 다른 피해 주민들의 소송이 이어졌고, 이는 재해에 대한 집단소송의 효시가 됐다.

■ 인재인가 천재인가: 이번 양평동 사건도 제방이 붕괴되자 마자 '인재냐, 천재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교롭게도 제방 붕괴 시작 지점이 지난 5월 지하철 공사로 인해 제방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제방을 다시 쌓는 과정에서 흙 다지기나 외벽 공사에 부실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망원동 수문 붕괴 사건과 마찬가지로 '인재'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양평동의 한 주민은 "수십 년을 살았어도 수해를 한 번도 입지 않았고, 나름대로 수해라고 하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살아왔다"며 "더 큰 비에도 견디던 제방이 이렇게 무너진 것은 아무리 봐도 지하철 공사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 집단소송 전망은: 양평동 주민들은 발빠르게 소송 준비를 하고 있다. 일부 아파트 상가 상인들은 이미 대책위를 구성해 소송을 위한 피해감정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일부 변호사들도 양평동 수재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급한 수해 복구를 마친 인근 아파트와 주택, 공장 지역의 주민들도 소송에 동참할 태세다.

문제는 이번 제방 붕괴가 '인재'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해마다 일어나는 수해 사고에 대해 매번 소송이 제기되지만, 모두 피해 주민이 이긴 것은 아니다. 법원은 제방 등의 설치와 관리에 대해 "예상 가능한 정도를 넘어서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공무원 등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천재(天災)'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호우의 수준과 하천의 흐름이 제방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는지, 제방을 다시 쌓는 과정에서 부실시공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 게다가 관리·감독의 적절성 여부에 따라 서울시까지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 또한 전문적인 영역인데다,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양측이 '인재냐, 천재냐'를 두고 팽팽하게 맞선다면 예상 외로 소송이 길어질 수도 있다.

망원동 수문 붕괴 사건 소송의 경우 서울시는 책임을 져야 했지만, 시공사인 현대건설 측은 서울시의 설계서를 따랐다는 주장이 인정돼 책임을 벗어날 수 있었다.

■ 대응속도는 어땠나: 피해보상 소송에서 '수해 대응 속도'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제방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 것을 안 시점부터 이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했는지도 소송 액수를 결정짓는 변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방에 균열이 생겨 물이 새기 시작한 시점은 17일 새벽 5시 30분경. 삼성건설 등 현장 공사관계자들은 구멍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본격적인 물막이는 9시경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그것도 속수무책이었다. 12시가 넘어서는 지하철 공사장 터널을 가득 메운 물이 동네 골목길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홍수에 주의하라는 방송은 9시가 넘어서 시작됐다. 10시쯤에는 '대피령'이 떨어졌다. 서울시 측은 "이 정도면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균열이 생겼을 때부터 주민들에게 주의를 줬더라면 가재도구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1984년 망원동 수문 붕괴 사건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수문이 붕괴되기 3시간 전부터 주민들이 수문이 새는 것을 발견하고 서울시에 신고했으나 서울시의 대응은 늦었다. 주민들은 이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도 받아냈다.

▲ 문제의 지하철 9호선 구간 공사를 맡았던 삼성건설과 대림산업의 사과 플래카드. ⓒ 프레시안

■ 소송 속도가 관건:
피해 주민들 입장에서는 '소송 속도'도 중요한 문제다. 당장 보상을 받아 생업을 꾸려나갈 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원동 수재 당시에는 서울시가 책임을 회피해 사고 원인에 대한 감정 보고서가 해를 넘겨 8개월만에 제출됐고, 감정 결과 서울시의 책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재감정의 재감정을 요구하는 바람에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5년이 넘게 걸렸다.

한 법조계 인사는 "지금은 여론이 안 좋아 기업들이 몸을 사리겠지만, 시간이 지나 여론이 잠잠해지는 것이 소송을 당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송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또한 막상 집단소송이 진행되면 소송 액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방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와 같은 사건의 경우에는 전문적인 사안이 쟁점이기 때문에 공사 기록과 현장 상태 등 부실 공사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의 확보가 중요하다"며 "빠른 시일 내에 본안 소송을 위한 증거보전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이 피해 주민 입장에서는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망원동 수문 붕괴 사건 당시에는 소송이 제기되자 서울시가 유수지 수문상자를 파괴해 증거를 인멸하려 하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었다.

■ 人災는 철저히 가려내야: 해마다 여름에는 장마나 태풍으로 인한 수해, 겨울에는 설해가 거듭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연재해 앞에 사람들은 '하늘 탓'을 해왔다. 하지만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재해나 인력으로 인해 생겨나는 재해는 그 원인과 책임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84년 망원동 유수지 수문 붕괴 사건 집단 소송은 우리 사회에 큰 교훈을 안겨줬다.

이번 여름에도 양평동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수해가 일어났다. 비가 많이 내린 것이야 하늘 탓을 할 수밖에 없지만, 막을 수 있는 재해는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살펴야 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양평동 수해가 어떻게 결론 내려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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