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에 대해 느끼는 공포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나라가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면 전 세계가 모두 발칵 뒤집힌다. 최근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나라는 이란. 이란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적 핵활동을 위한 핵개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제재와 협상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이를 중단시키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오랫동안 핵활동을 둘러싸고 미국과 협상과 대립을 거듭했던 나라는 북한이다. 지난해 핵보유선언 이후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북한의 핵 문제는 한반도를 비롯해 동북아시아 전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북핵위기와 한반도 평화의 길>(조재길 지음, 한울 아카데미 펴냄)의 저자 조재길 씨는 한반도의 핵문제는 '총성 없는 한국전쟁의 막바지 대결'이라고 정의했다. 50여 년 전에 한반도에서 총성은 멈췄지만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그 전쟁은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북핵문제, '핵확산금지'라는 단선적 시각으로는 설명 안돼"
저자는 "북한의 핵개발은 핵무기의 확산을 막으려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로 약속한 만큼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핵문제는 "핵확산금지라는 단선적인 시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북미관계 정상화 추진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했던 북핵문제가 다시 좌초하게 것은 2001년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였다. 핵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북미 양국이 극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이뤘지만 이것이 한반도의 영구적인 비핵화로 이어지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우선 미국 내에서 제네바 합의를 미국이 북한에 굴복한 것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형성되면서 이 합의의 실천과정에 장애물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북한 핵문제가 지난 반세기 이상 계속돼 온 한국전쟁의 휴전이라는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네바 합의는 그 같은 본질보다는 '핵 동결'과 '중수로 폐기'라는 지엽 문제에 치중해 임기응변적인 해결책을 마련한 데 불과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북한 핵문제는 단순히 '핵' 그 자체만을 둘러싼 논란이 아니라 "반세기 이상 계속돼 온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의 한 단면으로서 북한이 핵패권국인 미국과 적대관계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얘기다.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던 1994년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얻어 독일식으로 흡수통일 당하지 않기 위해 핵카드를 이용하고 있으며 미국은 NPT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별 것도 아닌 북한 핵을 전 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과장하고 있다고 분석해 이같은 설명을 뒷받침한 바 있다.
북한의 핵개발 '위협' 소리치며 뒤로 핵실험 하는 미국은?
1994년이나 2006년 오늘이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체제 보장'이다. 지난 2003년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4가지를 요구하고 4가지를 약속하는 이른바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제시했다. 북한이 요구한 4가지는 △미국의 대북 불가침조약 체결 및 북미관계 정상화 △한국 및 일본과의 경제협력 방해 중단 △경수로 제공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조속한 경수로 제공이었다.
냉전은 끝났지만 오히려 냉전의 종결이 만들어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국제기구나 어떤 국가도 유일 패권국이 된 미국의 지배체제에 제동을 걸 힘을 갖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북한이 느끼고 있는 불안함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냉전체제 하의 방어적 핵정책에서 탈냉전 이후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으며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나 그들이 원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북한도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더욱이 미국은 이미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임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2004년 5월, 1997년 이래 21번 째, 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8번 째로 임계전 핵실험을 진행했다. 이것은 사실상 새로운 핵무기개발을 위한 핵실험으로서 1992년 이래 10년 동안 중지해 온 핵무기 연구를 재개한 것이며 2004년 회계년도에는 그 전 회계년도보다 3억300만 달러나 더 많은 63억 달러를 핵무기 계획에 할당했다.
미 의회가 2005년 11월 냉전 때 만들어진 것보다 더 강하고 믿을 만한 핵무기를 연구하기 위한 예산 2500만 달러를 승인함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만들기도 쉽고 유지비도 싸고 보관도 더 안전할 뿐 아니라 실험도 필요 없는 차세대 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겉으로는 북핵 문제로 한창 핏대를 세우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또 다른 핵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 미국만은 아니다. 일본 역시 핵보유국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세계 3위의 원전보유국으로 핵개발의 핵심인 핵연료 재처리 시설도 가지고 있어 세계 정상급의 기술과 시설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다. 더욱이 2007년에는 연간 800t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이 완공된다. 일본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불평등 구조'의 NPT가 문제?
여기까지 알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북한의 핵개발이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논리,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이라는 것이 과연 미국과 일본의 핵활동은 규제할 수 없는 것일까? 지구상에서 더 이상 핵무기의 확산을 막겠다는 기본 취지와 달리 정작 이란이나 북한과 같은 국가에만 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NPT 체제 자체가 기본적으로 '불평등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NPT는 핵보유국들의 의무적인 핵군축 노력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권고사항에 불과해 어떤 구속력도 갖고 있지 않다. NPT는 또 비핵보유국들로 하여금 핵개발을 포기하게 하면서도 핵보유국들은 비핵보유국을 핵공격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려는 보장은 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NPT는 비핵보유국의 핵무기 제조를 금지하는 대신 평화적 핵 이용권을 보장하고 그를 위한 장비, 물질, 과학 기술 정보교환에 상호협력하고 핵폭발의 평화적 이용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차별 없이 비핵국에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들은 핵개발의 우려를 내세워 핵기술 이전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으로 특정 국가들의 핵의 평화적인 이용마저 제한해 비핵보유국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NPT 체제의 규정에 의하면 핵보유국은 NPT에 가입하지 않는 국가에게는 그러한 기술의 이전을 제한하고 있으나 실제로 핵보유국들은 NPT에 가입하기 이전에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핵기술을 제공했다."
'6개국 정상 공동성명'-'한미 동맹 재정비'로 北-美 양측 우려 풀어야
이런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라면 그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미국이 대북 정책을 버리고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너무나 '뻔한' 얘기는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얘기하는 '한반도 평화의 길'은 어디 있을까?
"미국이 북한의 국가안보를 보장하면 북한을 핵을 포기하겠다고 거듭 천명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이 정말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것인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진정 안심하고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제네바 합의 같은 정치적 합의로는 충분하지 않고 6자회담에서 '포괄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6개국 정상의 공동성명 등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핵 폐기의 각 단계에 맞춰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이 안심하고 핵을 폐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미국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미국의 동북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이해를 위해 한반도에 미군을 남겨두고 한미동맹이 계속 유지되기를 원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모순되는 주한미군, 핵우산, 그리고 한미동맹을 조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 핵문제는 북한 핵문제만이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합의의사록을 개정하여 한국이 '국방주권', 즉 한국군 지휘통제권과 주한미군과 주한미군의 시설, 무기, 장비의 반입, 배치, 사용에 관해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의·결정하는 권리를 회복하는 문제와 함께 해결해야 한다. (…)
한반도 비핵화는 동북아 비핵지대와 연계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미국의 국제 전략에 맞춰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한반도의 비핵화와 함께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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