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황현주 부장판사)의 심리로 30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일부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만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횡령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를 선고하고 이와 같이 중형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근대 경제발전사의 주역"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의 양형 부분에서 처음에는 김 전 회장의 경제적 업적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반세기 동안 근대 경제 발전사의 주역"이라는 내용의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가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대우그룹을 재계서열 2위로 끌어올렸으며,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수출 증대만이 살길이라는 신념 하에 세계를 무대로 광범위하게 시장을 개척했다"며 "동유럽 등 당시 미수교국과 무역을 통해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는 등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희망을 심어준 기업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한평생 근면함으로 대우그룹을 이끌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점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한 "대우그룹 붕괴로 직원들의 경제적·심적 고통이 심했고, 피고인도 모든 자산을 잃었으며 5년간 해외에 체류하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귀국해 법정에 섰다"며 "워크아웃된 계열사들이 현재는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우량회사로 거듭나 투입된 공적자금도 대부분 초과회수가 예상되며, 피고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 등이 유리한 정상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망각하고 불법·편법 일삼아"
재판부는 그러나 이러한 유리한 정상에도 불구하고 대우그룹이 개인만의 기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각종 불법과 편법으로 경영해 온 점, 김 전 회장이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 점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대우그룹은 대기업으로 피고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자산"이라며 "개인의 이익이 아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경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부도에 이르기까지 내실보다 외형을 키우는 데만 집착해 무분별한 사업확장에 급급했고, 그 결과 수많은 부채를 지었으면서도 자산상태를 속인 채 또 다른 부채를 끌어들여 적자 규모만 키우는 등 부실을 야기했다"며 "합리적 구조조정과 투명성 확보, 정당한 수익 추구를 위해 그동안의 경영방식을 시정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특히 "해외에 자금관리부서인 BFC를 만들어 대우그룹의 재무제표에 반영시키지도 않았고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는 등 임의적으로 운영했으며, 금융기관을 속여 대출을 받는 등 기업 윤리를 망각하고 편법을 일삼았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재판부는 이어 "대우그룹의 도산으로 금융기관들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회사채는 액면가의 18%의 헐값에 팔려나갔으며, 이러한 피해는 일반 투자자뿐만 아니라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온 국민에게 부담이 됐다"고 지적하는 한편, "수많은 대우그룹 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직장을 잃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총 책임자 불구하고 변명·정당화·책임회피"
재판부는 "피고인은 총책임자로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외부에 책임을 돌리고 '관행이었다', '경영판단이었다'는 등 변명을 하며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과연 참회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신뢰는 가장 큰 가치 중 하나이며 기본 전제"라며 "피고인은 사기대출 등 편법과 부정행위로 다수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었고, 기본적인 신뢰가 붕괴돼 사회적 피해가 크다"며 "경제 구성원 사이의 신뢰의 중요성을 일반 사회에 일깨워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실형 선고에 따라 법정구속을 해야 하지만, 피고인의 질환을 고려해 구속집행 정지를 취소하지는 않겠다"며 김 전 회장을 배려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협심증, 심근경색 등의 질환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입원 중이며, 일단 7월 28일까지는 병원에 계속 입원해 있을 수 있게 됐다.
김 전 회장은 이날 선고에도 환자복을 입고 링겔을 맞으며 법정에 나왔으며,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취재진과 전직 '대우맨' 등으로 200여 좌석이 가득 찼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계열사 등을 통해 20조 원 안팎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9조8000억 원의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 해외금융 조직인 BFC(British Finance Center) 등을 통해 19조 원 가량을 해외에 송금하고 이중 일부를 개인적으로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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