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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일에 배신당했다"…통일 15년, 독일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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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일에 배신당했다"…통일 15년, 독일의 고통

[화제의 책] <통일 독일을 말한다> 시리즈

"우리는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지기를 원한다. 그것도 그전보다 더 높은 벽을!"
"잘난 척하는 베씨(Wessie·동독 사람들이 서독사람들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 '돈 좀 있다고 뻐기는 서독 사람' 정도의 뉘앙스)들은 정말 짜증난다."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5년이 지난 독일에서 나오고 있는 얘기다.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베를린 장벽을 뛰어 넘었던 구(舊)동독 지역 사람들이 "통일 독일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한탄하고 있다. 통일 독일 15년은 독일인의 삶에 무엇을 변화시킨 것일까? 그리고 통일 독일의 모습은 아직도 분단 국가로 남아있는 이 땅 한반도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등 통일 독일의 현실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논문을 모으고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사들, 그리고 평범한 동독 출신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해 만든 '통일 독일을 말한다' 시리즈 <머릿속의 장벽>, <변화를 통합 접근>, <나의 통일 이야기>(김누리 등, 한울 아카데미)에서 그 구체적 실상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이 되고 뭐가 좋아졌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오토 더펜호이어 독일 쾰른대 교수는 지난 19일 국내 사회단체가 초청한 강연에서 "독일의 통일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독 출신인 더펜호이어 교수에게 독일의 통일은 '급작스런' 것이었을 수 있지만 동독인들에게는 오랜 싸움의 결과로 이뤄낸 통일이었다. 그들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구동독의 거리에서 수도 없이 "우리는 한 민족"을 외쳤다. 그렇게 얻어낸 감격스런 통일이었다.
▲ <통일 독일을 말한다 1 - 머릿속의 장벽> (김누리 등, 한울 아카데미) ⓒ프레시안

그러나 통일 이후 15년이 흐른 오늘날 독일인들이 내리는 통일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아 보인다. 지난 2000년 국내에서 출판된 연구서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이해영 저, 푸른숲 간)는 정치경제 '체제'의 통합은 이뤄졌지만,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독일은 여전히 분단 상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책의 대표저자 김누리 교수도 "실제로 외적 통합이 내적 분열을 봉합하고 있는 것이 통일 독일의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통일 독일은 "분단 상태 그대로 하나가 된"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만난 평범한 독일인들의 얘기도 이같은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통일이 되고 뭐가 좋아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쩔 땐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조차도 기억할 수 없게 팍팍하게 산 것 같아요." - 브리타(37)

"나는 통일에 배신당하고 내 자신이 헐값에 팔린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 통일이 되면서 어떤 직업들은 아예 경력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는데, 내가 딱 그 꼴이야. 아무리 오랫동안 죽어라 열심히 일했다고 하더라도 다 소용 없어." - 마르쿠스(40)

"직장은 동독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나의 절친한 친구들은 늘 직장 동료였다. 그러나 오늘의 직장 동료는 단지 경쟁 상대일 뿐이다. 난 지난 10여 년 동안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 안나(40)


독일의 통일이 '한 민족 두 국가'에서 '한 국가 두 사회'로 변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욱이 통일 이전의 독일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어린 세대에서도 이같은 박탈감과 상처가 발견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통일 1세대'라 칭할 수 있는 데니스(16), 로미(17), 르네(18), 라스(19)는 하나같이 통일 후 자신들의 가정이 부모의 갑작스런 실업으로 고통 받았다고 했다. 통일은 이들에게 부모 세대와는 다른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었지만 이들은 높아지는 청년 실업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아이들은 통일로 인해 좋아진 것으로 '물질적 풍요'를 꼽았지만 취미 생활마저도 돈이 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풍요는 없다.

"잘난 척하는 베씨들은 정말 짜증난다"는 동독 출신 통일 1세대들의 말에서 독일이 얼마나 큰 사회적 분열로 고통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통일이 세계화와 함게 찾아왔기에 나타난 현상"

물론 통일 이후 동독의 경제는 적어도 객관적인 수치상으로는 나아졌다. 1998년 구동독 지역의 실질임금은 1991년 대비 26% 상승했고 1인당 국내총생산도 75% 상승했다. 동서독의 소득격차도 빠른 속도로 해소되고 있다.

정치체제의 통합도 서독의 체제가 불과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빠르게 동독의 체제를 흡수했다느 점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동독 주민의 67%는 "장벽은 사라졌으나 머릿속의 장벽은 더 높아지고 있다"(<슈피겔> 1995년 여론조사 결과)고 대답하는 것일까? 또 독일에서는 왜 동쪽(Ost)과 향수(Nostalgie)의 합성어인 '오스탤지어(Ostalgie)'가 동독인들의 구동독에 대해 느끼는 향수를 지칭하는 말로 유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대표저자 김누리 교수는 독일 통일의 본질을 서독에 의한 동독의 식민화 과정으로 보는 "식민화 테제"를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한 "세계화 테제"가 오늘 독일의 극심한 분열을 설명해준다고 얘기한다.

"독일 통일은 자본의 영역 확장을 본질로 하는 세계화 과정의 한 국면이었고, 동·서독 사회문화 갈등도 이러한 세계화가 몰고온 제 문제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 통일은 한편으로는 동독으로부터 서독으로의 재분배 과정(식민화)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층 계급으로부터 상층 계급으로의 재분배 과정(세계화)이었다."

독일의 통일은 이같은 과정으로 진행되었기에 현재 독일이 겪고 있는 극심한 사회분열과 동·서독 갈등의 궁극적인 원인은 어느 한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더 이상 체제 경쟁이 필요없어짐으로써 구서독의 사회복지 체제도 통일 이후 극심하게 흔들리게 되었으며 결국 동독인들의 혁명은 자기 나라뿐 아니라 옛 서독도 없애버렸다는 얘기다.

"통일에 대한 열정 갖되 환상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통일의 길 열기를"

동독 지역 출신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로 인한 소외감과 통일과 동시에 불어 닥친 세계화로 기존의 복지도 다 빼앗겨야 했던 서독인들의 피해. 통일의 과정에서 이들 중 누구도 딱히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통일의 후유증을 절실하게 겪고 있다.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과정을 먼저 겪었던 독일의 오늘 모습은 이 땅 한반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여러 사람들이 얘기하는 독일 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교훈을 들어보자.

"독일의 사례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통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넓혀갈 수 있는 일관성 있는 통일 정책'이 요구된다.

둘째, 동태적인 사회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통일 논의를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40여 년 동안 분단되었던 두 개의 상이한 정서가 하나가 되기까지는 제도적, 사회적, 인간적 차원 등 여러 영역의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상이한 두 정치 체제와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이해, 삶의 다름에 대한 인정 등과 같은 성찰적 자세가 통일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이영란 중앙대 강사

"오늘날 통일독일이 겪고 있는 극심한 문화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은 우리에게 통일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진정한 통일은 단순히 이질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통합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 체제 속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의 문제, 즉 그들의 의식과 정서와 심리가 갈등하고 소통하는 과정의 문제임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통일을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로,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파악하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 - 김누리 중앙대 교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릇된 희망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은 아주 천천히 실현되어야 합니다. 독일이 저지른 잘못에서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릇된 희망과 허황된 약속이 아닌 이성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

독일의 예에서 통일은 아주 길고도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북한 주민들의 정서와 사고, 생활양식과 문화가 서로 동화되는 상호 이해의 과정은 정치경제적인 통일만큼이나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통일에 대한 열정을 갖되 환상을 가지 말고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통일의 길을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 - 볼프강 티어제 동독 출신 독일 국회의장


이미 15년 이상이나 되었다는 시간적 거리 때문일까? 독일 통일에서 얻는 교훈과 시사점을 다루는 방식이 종래 나온 책자들에 비해 한결 깊은 맛을 더한다. 통일이 세계화와 함께 찾아온 데에 따른 상승효과를 분석하는 대목이 그렇고, 정치경제 체제의 통합뿐 아니라 정서와 생활양식의 수렴까지 통일 문제의 자장 안에 넣어서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렇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통일을 그렇게 살펴보고, 그런 토대 위에서 통일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만드는 역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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