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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소와 병상의 정치' 속 대중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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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읍소와 병상의 정치' 속 대중의 선택은?

<기고> "이제 '그들'에게 돌아가는 死票를 줄이자"

5.31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각 정치세력들은 정치를 그들만의 게임으로 더욱 희화화 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피습사건은 그나마 공유되고 있던 이번 지자체 선거의 공적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켜 버렸다.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앞서 있던 지지율이 더욱 상승하자 막판 굳히기를 위해 표정관리에 들어간 듯하다.
  
  반대로 열린우리당은 지지율이 급락해 막다른 길에 몰리자 '제발 한나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어찌됐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금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과 논의는 모두 수면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과거 '대통령 탄핵정국'과 마찬가지로 이 예기치 않은 피습사건 또한 이성을 마비시키는 블랙홀로 기능하고 있다.
  
  '읍소'와 '병상'의 정치는 대중 무시의 결정판
  
  애초 이번 5.31지자체 선거에 나서면서 집권 열린우리당과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각각 '지방정부 심판론'과 '중앙권력 심판론'을 내세우며 서로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이런 주장은 양식 있는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지니지 못했다. 왜냐면 이런 담론은 결국 이들 양자가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고발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중앙권력이라고 말하는 노무현 정권과 집권 열린우리당은 신자유주의의 신봉자가 되어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 강행, 경찰과 군사력을 동원한 평택미군기지 건설 강제, 새만금 방조제 마무리 등 '역사에 길이 남을 굵직굵직한 사업'을 추진하여 대중의 비판과 저항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한나라당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모두가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이들 문제에 대해 더욱 완고한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이들 문제를 가지고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집권당과 의미 있는 논쟁과 공방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쉽게도 그 기록과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이런 사안들에 대해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너무 유약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정도다.
  
  다른 한편 지방권력으로 상징되며, 현재 지방정부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지역의 토호들과 결탁하여 부정과 부패를 조장하는 세력으로 지목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러한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4년 동안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가운데 발생한 지역의 난개발과 이로 인한 환경·생태의 악화, 열악한 교육 및 주거환경, 노인복지, 일하는 여성 등 소수자의 권리문제, 학교급식 등 아이들의 먹거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이 발 벗고 나선 적이 있는가.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정치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것이라곤 도로정비라는 이름 아래 수십억 이상을 보도블록 교체에 쏟아 부은 것이 전부일 정도로 빈곤하다.
  
  이렇게 볼 때, 이들 양자에 대해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에서 환상의 콤비가 돼 대중의 삶을 고통에 빠뜨리는 '구악'과 '신악'을 대표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결코 과도하지 않다. 사실이 이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서로 엄청난 정치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이들의 이중적인 태도, 한 발 더 나아가 서로 상대를 심판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을 접하면서 양식 있는 대중들이 난감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인가. 거기에서는 그들이 입만 열면 존경해마지 않는다는 주권자, 진정 그들을 심판할 주체로서 대중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정치를 공학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대중은 의식을 지닌 주권자가 아니라 조작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거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주권자로서의 대중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태가 증폭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른바 '읍소정치'와 '병상정치'는 그 결정판이다.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열린우리당과 대중에게 희망을 준 것도 없으면서 피습사건 이후 압승을 기정사실화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주권자인 대중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국사회의 정당정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싹쓸이' 운운하는 우리당, 다수당일 땐 무얼 했나
  
  열린우리당은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하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호소를 발표하면서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는 표를 달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참 어이가 없다. 이미 지난 총선에서 표를 줘 다수당을 만들어 주었더니 대연정 운운하며 아무 일도 안하고 책임회피만 하다가, 또 다시 표를 달라고 몽니를 부린다. 이들은 대중을 때가 되면 알을 낳는 부화장의 닭처럼, 자신들이 요구하면 언제나 표를 찍어주는 로봇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설령 표를 준다고 하더라도 지금 열린우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들이 그토록 역설했던 민주주의란 선거에서 투표를 해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는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합법적 선거를 통해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하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 아닌가. 대중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언제 열린우리당이 민주주의의 실현은 단지 선거를 통해 대행자(agent)를 뽑는 것과 동일시될 수 없는,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관계들을 지속적으로 해소.극복하는 과정이며, 선거를 통해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이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미 있는 수단 가운데 하나를 작동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아쉽지만 열린우리당 소속의 어떤 정치인들로부터도 이런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탄핵정국을 경과하며 의회의 다수당을 만들어주었는데도, 이 사회에 상존하는 온갖 왜곡된 사회관계들을 나 몰라라 방치하거나 오히려 더욱 조장했던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비정규직 문제, 대학등록금 문제, 일하는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탁아문제, 새만금으로 상징되는 환경·생태 문제, 대추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는 농민들의 처절한 울부짖음 등 이 모든 것이 선거, 나아가 민주주의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야 할 핵심 사안임을 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만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읍소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책임방기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개혁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이런 문제들을 자기문제로 삼지 않고 어떻게 '풀뿌리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대중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가.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면 이해할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다면, 한나라당의 싹쓸이 운운하기 이전에, 대중의 저항 속에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들 문제에 대해 지금이라도 양식 있는 대중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고민해 생산적인 대안을 내놓는 게 순서다.
  
  피습사건으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뒤바뀐 한나라당
  
  다른 한편 지난 대통령 탄핵정국의 후폭풍 속에 치른 국회의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던 한나라당은 그 때와는 반대의 입장에서 유유자적하며 열린우리당의 읍소가 그 동안 자신들의 실정을 가리기 위한 정략적 술수, 나아가 '대국민협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피습사건 이후 병상에서 자신을 염려하는 지지자들에 고마움의 메시지를 보내며 이 지지열기를 관리하는 가운데 5.31지방선거가 완승으로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속내는 한나라당 광역단체장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유세장에서 "대표님 고맙습니다"를 외치는 즉흥극을 연출함으로써 확인된 바 있다. 너무 좋아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것이다.
  
  바로 이런 행태들은 이번 피습사건을 통해 '가해자의 딸'에서 '피해자'로 처지가 뒤바뀐 그 당 대표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피해자의 아픔'이 무엇인지 보다 큰 시각에서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바라는 희망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들이 이번 5.31선거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항상 그래 왔듯이 수단으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권력 그 자체다. 과연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거기에서 '약자를 위한 정치'라는 오랜 동안 공유되어 온 의미 있는 발상을 찾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그들'에게 던지는 '다수의 표'가 '死票' 아닌가
  
  그런데 이 모두가 그들만의 탓인가. 분명 그렇지 않다.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려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 온 이런 행태를 설명하기엔 무언가 불충분하다. '선거 때에만 주인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하인이 된다'는 유명한 학자의 통찰은 이제 모든 대중이 되뇌는 자조 섞인 언술이 되었지만, 이른바 주권자인 대중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측면 또한 없지 않다. 대중 또한 자신의 삶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그렇기에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자신의 주권을 너무 가벼이 여겨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많은 대중은 그 주권이 자신의 존재, 그리고 삶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주권을 선거에서 행사하는 한 표 정도로 협소하게 간주해 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읍소의 정치', '병상의 정치'가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중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주권이 수없이 침해 받고 있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대추리의 농민들처럼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선거와 동일시하는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발상들과 작별해야 한다. 대중을 자신들이 언제나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생각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이 표를 달라고 울든, 병상에서 메시지를 보내든, 그것은 우리가 맺고 있는 일상적 사회관계들, 삶 속에서 작동하는 고통과 억압의 해소, 극복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왜 그들의 그런 행태에 일희일비해야 하는가. 왜 그런 그들이 선거공영제란 이름으로 우리가 낸 세금을 마치 주인 없는 공돈쯤으로 간주하며 허비하도록 만들어야 하는가. 왜 그들에게 표를 주고 나서 주인 노릇을 하는 그들의 행태에 신물을 느끼며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허무주의에 빠지는가. 왜 그들을 계속 짝사랑해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우리의 삶을 스스로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가.
  
  이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던지는 '다수의 표' 가운데 상당한 표는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사표(死票)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그들에게 돌아가는 사표를 축소시켜야 할 시점이다. 진정 '죽은 표'를 '생동하는 표'로 만들어야 한다. 선거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요원할지라도 더 이상 그들에게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
  
  진정 살아 있는 표는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전가의 보도로 신봉하는 정치세력, 개발과 성장만이 풍요한 삶을 보장한다고 믿는 정치세력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정말 이 사회에 현존하는 삶 자체를 파괴하는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관계들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하는 정치세력, 사회세력들에 대한 믿음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의 귀중함, 소수자들의 고통, 환경·생태의 존귀함을 아는, 진정 한 사회를 구성하며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진정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값지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풀은 바람에 먼저 눕지만, 저 발목 끝까지 눕지만, 가장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이제 우리 스스로 입증해 나가야 한다. 비록 이렇게 살아 있는 표가 소수라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선거가 끝난 후에 또 다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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