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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와 '힘 겨루기' 시작한 여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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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와 '힘 겨루기' 시작한 여성 대통령

김영길의 '남미리포트'〈155〉 시험대 오른 칠레의 베첼렛

잔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의 철권통치와 인권유린에 대한 과거청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칠레의 바첼렛 정부가 그동안 군부와 미국정부의 반대에 부딪쳐 지지부진했던 국제형사법원(ICC) 협약 비준을 밀어붙일 태세여서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미국과의 외교적인 마찰을 피할 수 없으며 군부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고조되고 있어 취임 후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칠레의 국제형사법원협약 비준은 미국정부가 해외에 파견돼 있는 자국 군인들의 범죄에 대한 면책특권을 위해 클린턴 정부 때부터 비준을 거부해 온 터라 부시 행정부 역시 칠레 정부를 향해 비준거부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칠레는 공무원들과 군인들에 대한 상호보호협약(ASPA) 을 체결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 최근 과거청산문제로 군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바첼렛 대통령이 칠레 군 최고 수뇌부의 안내를 받고 있다. ⓒ 칠레대통령궁

그렇지만 남미국가 중 유일하게 국제형사법원협약의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칠레 정부는 바첼렛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군정의 과거사청산을 위해 이 협약을 반드시 비준해야 한다는 여권 정치인들과 인권단체들의 압력을 받고 있다. 더욱이 바첼렛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진정한 과거청산을 위해서는 ICC협약 비준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남미 군정 과거청산의 선두주자 격인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브라질은 2002년, 볼리비아는 2002년, 파라과이는 2001년, 베네수엘라는 2000년, 우루과이는 2002년에 각각 이 법안을 비준했다.

칠레 상원의 법사위가 금년 연말까지 이 법안의 비준을 목표로 정치적인 합의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가운데 군 수뇌부는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칠레 군 수뇌부는 이 법안이 비준되면 미국과의 상호 보호협정(ASPA)을 위반하는 것이며 최악의 경우 베네수엘라처럼 최신예 군 장비에 대한 부품 금수조치로 이어져 군 전력상의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국제형사법원 협약을 비준한 11개 국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해 군사지원을 전면적으로 중지한 적도 있다.

칠레 군부가 국제형사법원 협약을 한사코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협약이 세계평화와 안전, 인류의 안녕을 위협한 범죄행위와 반인륜적인 범죄는 시효에 관계없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예에서 보듯이 아르헨 정부는 지난 2001년 이 협약을 비준함과 동시에 '반인륜적인 범죄는 시효가 없다'고 선언하고 전 정권들이 내린 군정 관계자들의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사면령을 무효화시켜 재판 중이거나 가택연금중인 군정 관련 지도부 전원을 재수감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칠레 군부도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칠레 군부로서는 마냥 이 법의 비준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1978년 제정된 칠레의 사면법은 계엄 하의 모든 범죄 행위는 형사처벌을 면한다고 규정하고 군정관련 사법적인 판단을 군법회의가 처리하도록 했다.

또한 군 수뇌부의 해임권을 최고통치자인 대통령이 행사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4년 임기를 보장했다. 피노체트 추종자들인 군 수뇌부는 이어 개헌을 쉽게 할 수 없도록 종신 상원의원 제도를 신설, 정치권까지 장악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칠레 군부는 최고통치권자를 능가하는 권위를 지속적으로 누리면서 어두웠던 과거사를 묻어두기 위해 바첼렛 정부와 정치인들을 향해 강력한 경고의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군정피해자들 과거청산 미흡했다

과거청산을 외쳤던 라고스 정부도 관련피해자 보상 등 나름대로 노력의 흔적은 보였지만 군부의 강력한 반발과 사면법 등의 장애물로 인해 실질적이고도 진정한 과거청산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군정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이들 피해가족들과 인권단체들은 이웃인 아르헨티나를 예로 들면서 "정부의 보상 역시 지극히 형식적이었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아르헨 정부는 군정피해자 가족 1인당 23만 달러를 보상금으로 지급했으나 칠레는 연 5000달러 정도를 매달 연금 형식으로 나누어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73년 9월11일 살바도르 아옌데를 쿠데타를 통해 몰아낸 피노체트 정권이 아르헨티나-브라질-우루과이-파라과이 등 군부와 협조하면서 1990년까지 17년 동 안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휘둘러 칠레 전체가 공포에 떨게 하며 3000여 명의 사망. 실종자를 내는 등 극심한 인권유린 사태를 계속해 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진실규명과 과거청산을 외쳤던 엘윈-프레이-라고스 등 민간 출신 대통령들은 막강한 군부의 견제에 막혀 피해자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과거청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실질적인 군정피해자이자 여성인 바첼렛 대통령이 그 바통을 이어받은 셈인데, 바첼렛 대통령은 군부의 견제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제형사법원 협약 비준을 밀어붙일 태세다. 또한 바첼렛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막강한 군부 세력을 약화시키고 더 늦기 전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진정한 과거 청산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 안의 또 다른 권력인 군부를 향해 과거청산이라는 큰 칼을 빼든 바첼렛 대통령이 미국과의 외교마찰을 이겨내고 국정의 첫 번째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인지 남미 정치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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