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로비가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대중동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학자나 제도언론에서는 이같은 지적이나 비판을 접하기가 매우 힘들다. 미국의 정계, 재계, 언론계 등에 포진하고 있는 막강한 유대인 세력의 보복이 두려워 '바른 말'을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주류 정치학자 2명이 유대인 로비가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익에 미치는 악영향을 정면으로 비판한 장문의 보고서를 펴내 워싱턴 정가가 시끌시끌하다.
87쪽에 이르는 문제의 보고서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http://ksgnotes1.harvard.edu/Research/wpaper.nsf/rwp/RWP06-011)'은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시카고대학의 국제정치학자 존 메어샤이머 교수와 하버드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의 스티븐 월트 교수가 함께 쓴 것으로 지난 13일 케네디 행정대학원을 통해 발표됐다. 또한 이 보고서의 축약본(http://www.lrb.co.uk/v28/n06/mear01_.html)이 23일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게재됐다.
저자들은 이 보고서에서 "미국 정치사를 보면 모든 상황이 늘 공평하지는 않았다"면서 "왜 미국은 다른 나라(이스라엘)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자국의 안보와 다른 많은 동맹국들의 안보를 외면하려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친이스라엘 조직뿐 아니라 기독교 근본주의자ㆍ네오콘까지 이스라엘에 '충성'**
이 보고서가 지적된 이스라엘 로비 집단들에는 '미국-이스라엘 공익위원회(AIPAC)', '주요 유대인 조직 대표자 회의', '유대인 국가안보협회', '워싱턴 근동정책협회'를 비롯해 최근에는 '기독교 시온주의자 조직'까지 들어가 있다.
소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이스라엘 로비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팻 로버트슨 목사, 미국기독교연맹 전 지도자인 랄프 리드, 제리 폴웰 목사 그리고 전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딕 아미, 톰 딜레이 의원들이 그 핵심이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재(再)건국은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이행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뿐 아니다. 비유대인인 네오콘들도 이스라엘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다. 존 볼튼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월스트리트저널〉의 전 편집장 로버트 바틀레이, 전 교육부 장관인 윌리엄 바넷, 또 전 유엔 대사인 진 커크패트릭 등이 그들이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 조지 윌 또한 이스라엘의 후원자다.
***미국, 이스라엘 보호 위해 82년 이후에만 무려 32차례나 거부권 행사**
보고서에 따르먄 "미국의 적이 바로 이스라엘의 적이므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생각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에 '각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무려 14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미국은 또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보호자'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1982년 이래,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내용의 결의안을 봉쇄하기 위해 무려 32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숫자는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경우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또한 미국은 아랍권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다루려는 시도도 철저히 막아줬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돌봐주기가 이 정도였으니 미국 본토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 얘기는 반유대주의'라는 주장 앞에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저자들은 이같은 행동이 현재 아랍권의 자유 증진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미국에게 특히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시선을 원천봉쇄하는 이같은 태도는 "민주주의의 근본인 공개된 토론과 논쟁의 원칙을 훼손했다"고 이들은 비판했다.
***"이득보는 것은 이스라엘뿐 미국은 손해가 막심하다"**
음지와 양지를 망라해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로비는 많은 성과를 거뒀다. 미국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벌어지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 등 이스라엘의 확장주의적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지원은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같은 아랍권 국가들이나 팔레스타인과 중동의 평화를 위해 굳이 마주 앉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1993년 체결한 오슬로 협정의 이행을 거부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덕분이다.
이스라엘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 미국이 그 장사를 돕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막대하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로비의 영향력이 매우 다양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보호자 역할을 하다 보니 유럽의 동맹국들을 포함해 모든 국가들과 군사적 위험의 가능성까지 높아지고 있다는 것. 나아가 이스라엘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동맹국이라기보다는 바로 이스라엘의 이같은 태도 때문에 미국에 대한 테러의 위험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도 이스라엘의 로비탓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란과 시리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스라엘이 로비를 통해 이들 나라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은 알카에다나 이라크 저항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이들 국가와의 협력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로비로 결과적으로는 상당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언론과 싱크탱크들, 그리고 학계가 이같은 로비에 의해 거짓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친이스라엘 로비 집단은 주요 언론이 이스라엘에 대한 세간의 동정심을 자극하도록 유도했다.
물론 실제 중동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자극하는 선전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을 이해시키기에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反이스라엘 법안은 아예 상정조차 안 되게"…낯뜨거운 '충성서약'도**
이같은 보고서의 지적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국 정치인들의 이스라엘을 향한 낯뜨거운 '세레나데'는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달 초 열린 '미국-이스라엘 공익위원회'의 연례회의에서 공화당의 존 보너 공화당 신임 하원 원내대표는 반(反)이스라엘 법안이 절대 회의장에 나오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충성서약을 했다.
보너 원내대표는 "신임 원내대표 직을 걸고 나는 분명히 장담한다"며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에 피해가 가는 법안은 미 하원에서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적극적인 '구애'였던 셈이다.
***친이스라엘계 즉각 반발…필자, "공격 당할 줄 알고 있었다"**
한편 이 보고서가 나오자 미국 내의 수많은 친이스라엘계 조직들 및 인사들은 즉각 반발하서 반이스라엘 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제3세계 전문 통신매체인 〈인터프레스서비스(IPS)〉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친이스라엘 단체인 '미국 언론의 중동문제 보도의 정확성을 위한 위원회'는 이 보고서에 대해 "오류가 너무 많다며 "만일 대학생이 이같은 리포트를 냈다면 당연히 낙제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이스라엘계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들도 보고서의 흠집 잡기에 열을 올렸다. 친이스라엘 신문인 〈뉴욕 선〉은 이 보고서의 내용이 극단적인 백인지상주의자들이나 '이슬람형제단'의 구미에 딱 맞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이스라엘 인사들도 이 보고서에 대한 공격에 가담했다. 유대인으로 뉴욕 공화당 의원인 엘리옷 엔젤은 이 보고서가 "실제로 미국인들을 경멸하고 있다"며 "오래된 반유대인과 반시오니즘의 허튼소리와 같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비난에 대해 보고서의 저자인 메어샤이머 교수는 〈IPS〉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반발이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스라엘의) 로비가 우리에게 보복을 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우리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과 공저자인 월트 교수는 지난 수 년간 미국의 대중동정책에 대해 연구해 왔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보고서에서 밝힌 문제점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이들은 보복이 두려워 그것을 말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메어샤이머 교수 등의 모처럼만의 지적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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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외정책의 근본 목적은 당연히 미국의 국익증진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특히 1967년의 6일전쟁 이후 미 대중동정책의 핵심은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차지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조건적인 지원과 중동지역에 대한 민주주의 확산정책이 겹쳐지면서 아랍과 이슬람권의 여론은 지극히 악화됐고 이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사에서 이러한 상황은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 어찌하여 미국은 다른 나라의 국익을 돕기 위해 스스로의 안보를 도외시하고 있는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든가, 아니면 동일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보여주듯이 이러한 설명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베풀고 있는 엄청난 물질적, 외교적 지원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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