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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정무특보, 盧의 '배려'인가 '정치포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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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정무특보, 盧의 '배려'인가 '정치포석'인가

지방선거 앞두고 두번째 영남출신 정무특보 임명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대통령 정무특보로 위촉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 특보에게 지고 있는 마음의 '빚' 때문이다. 이 특보는 20년 가까이 정치적 고락을 함께 해 온 최측근 인사다. 그런 그가 작년 10.26 재보선에서 대구 동을 지역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고 생계를 위해 청와대 근처에 횟집을 열겠다고 나섰다. 이미 두 번이나 선거에서 떨어져 혼자 힘으로 정치적 재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이번에 노 대통령이 정치적 활동공간을 만들어준 셈이다.

또 정치적으로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과 대통령 간 공식 채널을 만들어 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청관계가 그다지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이 이 역할을 맡은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정무특보는 청와대 비서실에 정무수석이 없는 상황에서 과거 정무수석이 해왔던 역할을 일정 정도 맡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무특보는 선거 국면에서 당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취사선택해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을 만한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노 대통령은 이런 자리에 자신의 최측근인 이강철 특보를 앉혔다. 이는 노 대통령의 '협소한 인력풀'을 보여주는 일이다.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희상 의원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정치특보로 활동할 때 당 내에서 "특보가 아니라 '총독'"이라는 반발이 일기도 했었다.

***이강철, 노무현 정권에서도 지역주의 '벽' 앞에 번번이 좌절**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경험도 있는 이 특보는 1987년 '양김 후보단일화' 활동을 같이하며 노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이 특보는 1990년대 초반 '꼬마 민주당'과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활동을 함께 하고 노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면서 정치적 '동지' 사이가 됐다. 두 사람 다 영남지역에서 '호남당'인 민주당 정치인으로 고초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특보는 2002년 대선 당시 후보 조직특보를 맡아 최일선에서 노 대통령을 도왔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그를 청와대로 불러 "그동안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겠다"며 고마움을 표시했을 정도로 이 특보의 역할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의 '당선'으로 지역에서 이 특보의 영향력을 막강해졌지만 한나라당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특보는 2004년 총선 때 대구 동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또 지난해 10.26 재보선에서 재도전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그는 당시 노 대통령을 등에 업고 "힘 있는 여권 인사가 돼야 지역개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후광에 기댄 유승민 의원에게 졌다.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 중 한 명이지만 번번이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야인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노 대통령은 여러 번 '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했지만 이 또한 야당의 반발로 뜻대로 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이 특보가 총선에서 낙선한 직후인 2004년 5월 그를 정치특보로 기용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이어 국정원 차장에도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5년 1월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파문'으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이 동시에 물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노 대통령은 이때 문재인 당시 시민사회수석을 민정수석으로 복귀시키면서 공석이 된 시민사회수석 자리에 이 특보를 앉혔다. 이 특보는 당시 인사수석 자리를 원했지만 '호남 인사수석, 영남 민정수석'이라는 지역안배 때문에 밀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렵게 입성한 청와대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해 10월 재보선에 출마하기 위해 8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나야만 했다.

선거에서 또 떨어진 뒤 그는 지난 2일 단행된 개각에서 문화관광부 장관 또는 환경부 장관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정치인 배제' 원칙에 따라 입각에 실패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태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장관 자리에 그를 임명하기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노 대통령은 23일 무보수 명예직인 대통령 특보로 그를 임명했다.

***김두관에 이어 두 번째 '영남 낙선자 정무특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정무특보로 임명하면서 청와대는 당과 대통령 간 가교 역할을 주문했다. 이 특보는 시민사회수석으로 있으면서도 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물밑에서 사실상 '정무수석' 역할도 해 왔었다. 한 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여당 의원들이 유일하게 말을 듣는 청와대 수석이 이강철 수석"이라고 그의 비중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른바 당청 간의 가교 역할을 기대한다는 얘기다.

또 두 번의 낙선으로 노 대통령의 임기 내에 자생적 정치력을 만들어내기 힘들어진 이 특보의 '정치생명'을 연장시켜 주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정무특보는 대통령과 언제든 독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게다가 지역구도 극복을 필생의 정치과업으로 삼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선 영남 지역의 인물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이 특보의 전임자도 2004년 총선에서 경남 남해ㆍ하동 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두관 전 특보였다. 김두관 전 특보는 이번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최근 정무특보를 그만 뒀다.

이렇게 청와대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된 이 특보가 5월 지방선거와 연관된 복잡미묘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특히 아직 정돈되지 않아 무수히 복병이 나타날 수 있는 여권 내부의 기류는 그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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