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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도청 사실' 앞에 겸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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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도청 사실' 앞에 겸손해야

<기자의 눈> DJ의 음모론을 보는 시각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 신건 씨가 불법도청 혐의로 구속된 것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16일 한화갑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였다.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만든 것"이라며 '대통령 친인척 및 정치인 등 국내 주요 인사 1800여 명에 대해 상시적으로 도청 활동을 벌였다'는 검찰 조사 결과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DJ의 '초강경' 발언, 여당의 위기 상황에서 거는 배팅?**

자신이 과거 정권의 불법도청에 의한 가장 큰 피해자로서 누누이 '불법도청 근절'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십분 이해가 된다. 또 불법도청 사실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권 지도자'라는 자신의 정치적 업적에 결정적인 상채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구속된 임동원 전 원장은 '햇볕정책의 전도사'로서 줄곧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두 전직 원장은 '내가 절대로 도청을 하지 말라'고 했더니 '도저히 할 수 없고 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마시라'고 했다. 대통령이 못하게 하는 것을 국정원장이 어떻게 하냐"며 두 전직 원장의 말을 믿고 싶어 하는 김 전 대통령의 심정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 처음으로 자신의 재임 시 국정원의 불법도청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참담하다"며 불법도청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석 달 전에 비해 불법도청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 상황이다. 국정원 자체 조사에 그친 게 아니라 검찰 조사에서도 불법도청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김대중 정부 시절 상시도청 대상이었다지 않는가.

물론 석 달 전과 아주 다른 상황도 있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등 이런저런 정치적 구상이 좌초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반년 가까이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당은 10월 재보선 참패로 지도부가 일괄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있다. 여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그야말로 '바닥'에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초강경' 발언은 이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던져졌다. 지난 8월 비서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했던 '불편한 심기'를 이번엔 직접 쏟아 놓았다. 그것도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하는 민주당 지도부와의 회동 자리에서였다.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당 내에선 민주당과 통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갖는 정치적 파급력은 어느 때보다 크다. 김 전 대통령은 아마 이런 정치적 변수들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DJ, 불법도청 사실 자체를 뒤집으려 해**

두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을 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의도한 것인지 여부는 누구도 모른다. 민주당 쪽에서 주로 얘기하는 것처럼 현재의 여권이 절벽 끝까지 몰린 입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희생양 삼아 다시 도약하려는 그야말로 '음모'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날 김 전 대통령이 제기한 '음모론'은 이제껏 정치권에서 제기한 '불만'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지금까지 민주당, 열린우리당, 심지어 청와대 일각에서 제기한 문제는 '두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 수사가 적합하냐'는 것이었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 두산 총수 일가도 불구속 수사를 하는데 왜 유독 이들만 구속하냐"는 불만이었다. "1800명을 대상으로 도청활동을 벌였다"는 검찰 수사결과 자체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만든 것"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언급은 그런 수사결과 자체를 부인한 것이고, 나아가 그리 객관적인 자세로 보이지도 않는다. 국민들은 직접 자기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김영삼, 김대중 양 정부를 거치며 안기부와 국정원이 R2니 CAS니 하는 첨단 도청장비들을 외국에서 들여와 국민들을 사실상 무차별로 도청했다는 것이 '사실'로 이미 확정됐다고 믿고 있다. 정치적 음모 이전에 이미 그것이 사실이었음이 실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정원과 검찰이, 나아가 현 노무현 정부가 이 도청 문제와 관련해 어떤 복선을 갖고 있든 아니든 과거의 두 정부가 도청장비를 운용했다는 사실만은 사실로서 확정된 것이다.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를 뒤집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은 그런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 인생의 상당 기간을 정치적 피해자로 살아 온 그의 전력이 모든 것을 그런 음모론의 시각에서 보도록 부추겼는지 모르겠다. 혹은 그의 정치9단 이력이 그렇게 남달리 사물을 이면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실이 갖는 힘이다. 음모는 그 다음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확인된 사실 앞에 겸손해지는 일이다. 김 전 대통령 본인이 그런 도청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았든 몰랐든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 그런 일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는 얘기다. 설사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고 난 뒤 제기하는 것이 순서다.

국민들은 지금도 혹시 '내가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도청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 살고 있다. 그런 원죄가 앞의 두 정부, 측히 김대중 정부 시절에 배태된 것이라면 그런 사실만으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의 16일 발언을 두고 정치권 주변에서는 'DJ가 여권의 최근 어려운 정치 상황을 활용해 자신의 재임중 업적을 구출하려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말 김 전 대통령의 계산이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나아가 '정치9단'의 쓸쓸한 몰락일 뿐이다.

문제를 직시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전직 대통령을 우리는 보고 싶다. 그래야 국민들이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을 요청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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