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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노 대통령이 섭섭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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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 노 대통령이 섭섭한가"

<기자의 눈> "국민들은 '겸손한 권력자'를 보고 싶어 한다"

지난 5일 국가정보원의 과거 불법도청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중간발표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최경환 공보비서관을 통해 전달된 김 전 대통령의 심경은 "참담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일면으로는 고문, 도청, 정치사찰 등 국가정보기관의 불법행위의 최대 피해자 중 한 사람인 김 전 대통령이 사실상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평생을 고문, 정치사찰 등 반인권적 행위에 맞서 온 나를 이렇게 모욕할 수 있느냐"는, 현 정부에 대한 원망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언론은 후자에 무게를 두고 이를 더욱 확대ㆍ증폭시키고 있다.

***'생환 32주년' 맞은 DJ 심정 십분 이해되지만...**

물론 김 전 대통령의 그런 '참담한 심정'은 십분 이해된다. 더군다나 이맘 때는 김 전 대통령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간이다. 그는 지난 1973년 8월 8일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 도쿄에서 납치됐다가 닷새 만에 생환했다.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맞서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뒤 김 전 대통령이 겪어야 했던 숱한 고초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런 경험 때문에 김 전대통령은 고문, 정치사찰, 도청 등 반인권 행위 근절에 앞장 서 왔다. 그런 김 전대통령에게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에도 불법 도.감청이 행해져 왔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정작 사건의 발단이 됐던 김영삼 정권 때의 '미림팀' 등 불법도청 관계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사법 처리될 가능성이 적다. 반면 김대중 전대통령 재임 기간의 국정원장 중 임동원, 신건 전 원장 등 일부에 대해서는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 노 대통령이 지난 2003년 3월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여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핵심 측근이 줄줄이 사법처리 됐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2의 대북송금 특검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대통령 측근들의 억울한 심경 토로는 좀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연정'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과 맞물린 '정치적 음모론'은 가뜩이나 어지러운 현 정국을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도청과 정-경-언 유착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

불법도청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음모론'은 '노 대통령이 언제 불법도청 테이프의 존재를 알았나' '노 대통령이 불법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나' 등 몇 가지 의혹을 중심으로 현재 진행 중인 논란이다. 대개의 정치적 음모론이 그렇듯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논란들이다.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모로 지목된 시나리오의 성공 여부를 떠나 대중의 관심을 음모론으로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음모론은 '역(逆)음모론'을 낳고 대개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따라서 김대중 전대통령을 중심으로 계속 증폭되고 있는 '음모론'의 고리를 누군가 끊어줘야 한다. 그게 전직이든 현직이든 최고 권력자가 해줘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그 자신이 불법도청의 최대 피해자인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정-경-언 검은 유착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국민에게 해야 할 도리가 아닐까. 불법도청과 정-경-언 유착 모두에 분노하고 있는 국민들이 이 시점에 요구하는 것은 '겸손한 권력'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 김 전 대통령과 그의 주변 인사들이 해야 할 일은 아주 분명하다. 겸손하게 사실관계의 규명을 기다리는 일이다. 그것이 규명된 뒤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그 단계쯤 가면 국민들이 '인권 대통령' '통일의 길을 연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당연히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국민에게 맡겨두면 된다. 지금 스스로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의연한 정권', '겸손한 권력자'를 보고 싶다"**

사실 관계로 보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YS 시절의 원시적인 도청에서 한 발짝 나아가 DJ 재임시절에 국정원이 CDMA 휴대전화에 대한 불법 감청 기기를 개발하고 외국에서 들여와 전 국민을 도감청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의혹이 이번에 사실로 밝혀진 것 아닌가. 그런 사실을 당시의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알았느냐는 문제는 그 다음에 확인할 일일 뿐이다.

이런 마당에 "미림팀의 불법도청은 흐지부지되고…" 운운은 전직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로선 해야 할 말이 아니다. 누가 미림팀의 문제를 흐지부지 했으며 누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씌웠나. 직전의 두 정권에 모두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졌는데, 순서상 김대중 정부의 문제가 나중에 나온 것뿐이다. 그리고 인권을 강조하던 정권에서 그렇지 않은 면모가 있었음이 밝혀졌기에 더욱 뉴스가 되고 부각되는 것뿐이다. 먼저 나온 문제가 흐지부지 되고 나중에 부각된 문제만 국민의 관심 또는 수사의 핵심으로 남으리라고 예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아가 현 정부가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의 불법도청 문제를 공개한 데에 무슨 의도가 개입했는지 우리는 당장 알지 못한다. 혹시 무슨 의도가 있었다면 그것은 앞으로 밝혀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전직 대통령으로서 할 말은 아니다. 그런 사실을 공개한 현 정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내듯 자신의 재임기간 중의 4명의 국정원장들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아직도 확실하게 믿고 있다"거나 "본말이 뒤집혔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부주의한 언사거나 의도적으로 계산된 위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다려야 한다. 억울해도 사실로 제시된 위법 행위들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어쩌면 김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중간발표 직후 비서관을 통해 밝혔던대로 "이번 발표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게 생각한다. 일부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조사를 지켜보겠다"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좋았다.

***"남의 탓은 이제 제발 그만"**

그렇지 않고 자신의 후계정권을 겨냥해 불만을 터뜨리고 음모론이나 제기하는 김 전 대통령 측을 보면서 국민들은 아마도 "남의 탓 하기는 현 정권이나 전 정권이나 꼭 닮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의연한 정권, 객관적인 사실 앞에 겸손한 권력자를 보고 싶다.

이에 덧붙여, 김 전 대통령의 '적자'라고 자처하는 민주당도 음모론을 확대시키는 것이 자신들에겐 정치적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김 전 대통령에겐 오히려 짐이 되고 그의 명예에 불필요한 상채기를 보태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아가 언론도 무리한 '싸움 붙이기'는 그만했으면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0% 이상이 지지정당이 없다고 밝히는 등 국민들의 '정치 혐오'는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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